[인터뷰] 섬광처럼 빛나는 날카로운 눈매. 때로는 장난기 가득한 눈웃음이 된다. 천진난만 하다가도, 뜻 모를 미소는 어쩐지 가볍지 않은 에너지가 느껴진다. “솔직히 시청률 15%는 가볍게 넘을 줄 알았다”며 멋쩍게 웃어넘긴 그의 표정에는 내심 아쉬움이 가득했다.
드라마 ‘아랑사또전’이 이준기(30)에게 각별했던 것은 시기적인 배경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 군 제대 후의 첫 복귀작. 그래서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망설임도 수없이 많았다. 하지만 시청률 수치를 논하기 앞서 “얻은 것이 너무 많았다”며 다시금 해맑은 표정을 지었다.
“군 제대 후 복귀작이라 부담이 없을 수 없었어요. 개인적으로 힘들었고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출연해서 무방비 상태로 나가는 것은 아닌가 싶었죠. 부끄럽게도 많이 좋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대작이다보니 조금 아쉬움은 있지만 현장에서 최선을 다해 아쉬움은 크지 않아요.”
이준기와 신민아가 호흡을 맞춘 ‘아랑사또전’은 자신의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 천방지축 처녀귀신 아랑과 귀신 보는 능력을 갖고 있는 사또 은오가 만나 펼치는 모험 판타지 멜로 사극이다. 억울하게 죽은 처녀의 원혼이 고을 사또에게 나타나 원한을 풀어줄 것을 간청했다는 아랑 전설에서 모티프를 딴 작품.
이준기는 지체 높은 양반집에서 얼자로 태어난 사또 은오 역을 맡아 신민아와 호흡을 맞췄다. 은오는 자신의 실수로 갑자기 실종된 어머니를 찾아 세상을 떠돌지만, 귀신을 보는 능력 때문에 온갖 잡귀들의 시달림을 받아 웬만한 귀신에는 꿈쩍도 않는 캐릭터다.
“신민아 씨가 핫한 여배우다 보니 잘 맞출 수 있을까, 굉장히 도도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컸어요.(웃음) 처음에는 부담이 있었죠. 그런데 첫 미팅 때부터 촬영 때까지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보고 같이 하는 배우 입장에서 힘이 되고 도움이 됐습니다. 본인의 단점들을 채워가려고 하고, 현장에서는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CF의 화려한 이미지가 컸는데 몸을 사리거나 예쁘게 나오려고 하지 않아 놀랐어요. 연기자적인 자존심이 강하다는 걸 느꼈죠.”
2010년 5월 입대한 이준기는 국방홍보원 소속 연예 사병으로 훈련과 연말 행사에 성실히 임하며 지난 2월 군 복무를 마쳤다. “조급함을 가지고 복귀작을 골랐다”는 그는 “촬영 현장에 적응하지 못하는 악몽도 자주 꿨다”라며 제대 후의 복귀에 부담이 컸음을 내비쳤다.
“군대 가기 전과 연기가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지만, 이전과 똑같은 자기 비판은 여전했어요. 단점만 보이니까요. 그래도 감독님과 스태프들과 많이 친하게 즐겁게 지냈던 기억은 작품이 끝나도 오래 남네요. 제가 회식하자고 조르고 현장을 막 뛰어다니니까 주위에서 ‘몸 좀 사리라’는 말을 할 정도였어요. 걱정도 있었지만, 현장을 가지 물 만난 물고기가 된 것 같았죠.”
15%의 시청률 벽을 넘진 못했지만, 한번도 10%대 이하의 한 자리수로 내려간 적은 없었다. 그만큼 고정 시청자가 두터웠다는 반증이다. 그는 “꾸준히 믿고 지켜봐주신 분들께 너무 감사하다”라며 “많이 사랑해주신 덕분에 너무 행복하고 현장에서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이번 작품은 2년 여간 작품을 쉬었던 이준기에게 하나하나의 감각을 깨워준 작품이기도 하다. 로맨스나 음모, 판타지 등 다양한 장르를 한 작품에서 만날 수 있었던 시간이기도 했다.
스스로를 전형적인 경상도의 무뚝뚝한 남자라고 설명하는 그는, 이번 작품을 통해 ‘허당’ 연기의 매력을 느끼기도 했다. 그는 “허당 연기는 다양한 표현을 할 수 있어 재미있다”라며 “말투나 행동들도 기존 연기와는 조금 다른 모습을 선보였던 것 같다”고 전했다.
“최근 사극이 워낙 많이 쏟아져나오다보니까 시청자분들이 지치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극의 흐름이나 분위기가 비슷비슷하게 흘러가니까요. 하지만 사극은 다양한 표현도 할 수 있고 대사를 갖고 노는 맛이 커서 큰 매력을 갖고 있어요. 나중에 내적으로 다듬어지고 농익었을 때 ‘뿌리같은 나무’ 같은 사극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요. 당대 최고의 선배님들이 거쳐간 연산군 역도 욕심이 나고요.”
올해 ‘도둑들’과 ‘광해 왕이 된 남자’ 등 한국영화가 1000만 관객을 잇따라 돌파하며 화제를 모았다. 데뷔작인 ‘왕의 남자’가 1000만 관객을 돌파해 화려한 데뷔를 했던 이준기에게도 왠지 모를 반가운 소식이다. 그는 “너무 연기를 잘하시는 배우들이 포진된 영화였지만 그만큼 한국영화를 신뢰하신다는 증거인 것 같다”라며 “지금이 한국영화의 전성기가 아닐까 싶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에게 ‘왕의 남자’는 축복이지었지만 항상 넘어야할 산으로 존재한다. 그는 “고마워 해야하지만 때로는 동전의 양면 같은 존재”라며 “초반에 ‘왕의 남자’의 공길이와 비슷한 캐릭터의 시나리오만 들어와서 고민이 많았던 기억이 있다. 행복했지만 때로는 독이 됐다. 너무 고민하고 의식하기보다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 해나갔고 드라마 ‘개와 늑대의 시간’을 통해 나의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연기적인 능력이나 깊이감은 더 채워가고 싶어요. 결국 어느 것에도 정답은 없어요. 진지한 자세로 겸손하게 계속 배워가려고 해요. 군대 다녀와서 욕심을 많이 내려놓았지만 어느 때보다 사람의 가치에 대한 생각을 하게 돼요. 대단한 배우보다는 항상 가능성을 보여주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믿고 보는 배우’. 요즘 그 말 되게 좋은 것 같아요.”
국민일보 쿠키뉴스 두정아 기자 violin80@kukimedia.co.kr 사진 이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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