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문화] 드라마 ‘아들 녀석들’은 전형적 홈드라마다. 주말극이라는 걸 감안해도 시시콜콜 보통의 가정에서 다반사로 일어나는 일들을 소재로 삼고, 가족 관계의 소소한 감정들이 중대사가 된다. 짜릿한 자극 없는 우리네 이야기여서 그런지 시청률이 7%대에 불과하다.
모든 걸 시청률로 말할 수 있을까. 당연히 아니다. 특히나 위로는 나문희, 박인환, 김형자 등 중견배우들의 감칠맛 나는 연기를 시작으로 아래로는 골칫덩이 막내아들 서인국과 그를 좋아하는 신다은의 신인답지 않은 자연스러운 생활 연기까지 출연진의 기본기 탄탄한 연기는 시청률에 15배는 곱하고도 남음직한 점수를 줄 만하다.
그 중에서도 이성재의 연기는 단연 돋보인다. 극중 현기가 세 아들의 믿음직한 장남으로서 대가족의 중추 역할을 하듯, 드라마의 중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드라마 초반, 술 한 잔 못해 속 끓일 때 오렌지주스를 마시고, 저녁마다 7년 전 죽은 부인의 사진을 붙들고 하루 일과를 보고하고, 어떠한 순간에도 거짓말 않고 부모님 말씀 거역 않고 충실하게 살아온 치과의사 유현기의 고지식하고도 답답한 모습을 실감나게 연기한 것은 전초전에 불과했다.
남편 없이 7년을 꿋꿋하게 아들을 키우다 보니 뭐든지 분명해야 하고 석연찮은 건 못 견뎌 따지고 넘어가야 하는 성격이 된 인옥(명세빈)에게 서서히 호감을 느껴가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표현했다. 또 자신의 마음을 깨달은 순간부터는 어떠한 고난이 닥쳐도 인옥의 손을 놓지 않는 건 기본이고 생에 다시 찾아온 인연에 감사하며 뜨거운 사랑을 표현하는 모습은 사뭇 감동적이다.
이성재의 뛰어난 사랑 연기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세상이 허락하지 않는 사랑마저 공감하게 한 드라마 ‘거짓말’이나 ‘아내의 자격’도 있었지만, 이번 ‘아들 녀석들’에서의 연기가 더욱 편안하고 따뜻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다시는 사랑할 수 없을 것 같던 사람이 다시 사랑을 시작하면서 보여주는 급격한 변화, 안 하던 거짓말을 하고 부모님 말씀을 거스르는 모습이나 우유부단한 것 같기만 하던 사람이 저돌적으로 행동하는 변화를 매끄럽게 표현해 냄으로써 시청자를 현기의 감정 안으로 무리 없이 초대했다는 것이다,
또 그 급격한 변화 속에서도 입을 삐죽 내미는 어눌한 말투와 다소 소심하고 못나 보이는 미소, 어정쩡한 몸짓을 유지함으로써 이 모든 일들이 진정 인간 유현기에게 일어나는 일인 것 같은 리얼함을 부여한다. 흔히 많은 배우들이 스토리상에서 달라진 입장과 태도의 변화에 충실 하느라 캐릭터 자체의 변화로 표현하곤 하고, 시청자들은 그 캐릭터 단절에 당황한다. 두 번째 이유는 단순한데, 현기와 인옥의 사랑이 불륜도 아니고 또 누구보다 성실하게 오늘을 살아온 두 사람이기에 따뜻한 축복의 박수를 부른다.
이성재의 이번 호연을 두고 기존 연기와 평면 비교를 할 수는 없고 해서도 안 되겠지만, 분명 다른 점은 있다. 애절한 불륜 연기가 세상의 잣대, 시청자 마음에 놓여 있는 벽을 허물어 공감을 끌어내는 데 무게를 두어야 했다면, 이번에는 이미 열려 있는 공감의 관계 속에서 세밀한 감성들을 마음껏 펼쳐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드라마 안팎에서 반대하는 불륜, 드라마 속 부모는 반대하지만 시청자는 찬성해 마땅한 사별남녀의 사랑에서 오는 차이를 정확히 인지하고 자신의 운신의 폭을 충분히 확보해 놓고 표현하는 영민한 배우랄까. 강렬했던 영화 ‘홀리데이’의 연기에 못잖게, 잔잔한 호수에 던져진 작은 돌이 일으키는 고운 결의 파문과도 같은 ‘아들 녀석들’ 연기에서 눈을 뗄 수 없는 이유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홍종선 기자 dunasta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