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의 고장 경북 영주
녹색 터널 속으로 가만히 걷다보면 타박타박 걸음 소리까지 경쾌해 진다. 개척자가 기력이 다해 숨질 만큼, 소백산 허리에 자리해 구름도 쉬어간다는 악명에 비해 길은 순하고 소박했다. 소백산 자락길의 하나로 다시금 사람들의 발길을 이끄는 ‘죽령 옛길’.
◇개척 연대가 기록에 남은 천년 옛길
문경새재와 추풍령과 더불어 영남에서 서울로 드나드는 3대 관문 중 하나인 죽령(689m). 높이로만 친다면야 죽령이 단연 으뜸이다. 개척 연대가 역사서에 남은 것도 죽령이 유일하다. 삼국사기에 ‘신라 아달라왕 5년(158년)에 비로소 죽령길이 열리다’고 기록되어 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아달라왕 5년에 신라의 죽죽이 왕명을 받아 죽령 길을 만들고 기력이 다해 숨졌다’고 나와 있다. 이와 함께 죽죽을 기리기 위해 이 길을 죽령이라 부르게 됐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죽령 옛길은 2.5km 남짓한 길이다. 죽령재에서 시작한다면 소백산역까지 완만한 내리막이 이어지기 때문에 1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5번국도가 지나는 죽령재에 서면 영남제일문이라 쓰인 누각에서부터 죽령옛길이 시작된다. 죽령주막을 등 뒤로 하고 누각 돌계단 아래로 내려선다. 건설교통부 지정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됐다는 길답게 호젓한 오솔길이 이어진다.
과거길에 오른 선비들과 산을 넘나드는 보부상, 그리고 나그네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을 길이다. 삼국시대부터 켜켜이 발걸음이 쌓여 다져진 길이니 천년의 세월이 고스란히 담긴 셈이다. 내딛는 발걸음마다 역사의 흔적을 더듬는 행위다. 곳곳에 마려된 안내판은 길과 관련된 이야기를 설명해 준다. 덕분에 스쳐지나가는 울창한 나무 한 그루, 돌무더기 하나 예사롭지 않게 눈여겨보게 된다.
오가는 이들이 많았으니 길 곳곳에는 주막이 자리했고 경관 수려한 곳은 정자가 있어 다리 쉼터 역할을 했으리라. 권화자 영주시 문화해설사는 숲 한 편의 돌무지를 가리키며 주막거리라고 알려준다. 수풀이 우거져 있어 잘 안 보이지만 담장 돌무더기도 남아 있고 평평하게 다진 터가 제법 너르다. 권 문화해설사는 “1900년대 초까지도 장사를 한 주막으로 그때까지도 사람들이 이 길을 지나다니고 이곳에서 나그네들은 고단함을 달래며 허기를 채웠다”고 설명했다.
쭉쭉 뻗은 나무들이 시원시원하고, 그 나무들을 타고 담쟁이덩굴이 하늘에 닿을 듯 하다. 후덥지근한 날씨에도 숲 속은 쾌적하기만 하다. 숲의 끝에서 사과밭을 만나고 조금 더 나아가면 종착지인 소백산역에 닿는다.
◇볼거리와 먹거리… 소수서원·약선당·풍기인삼·풍기인견
영주시에 와서 소수서원을 보지 않고 간다면 앙꼬 없는 찐빵을 먹는 셈. ‘선비의 고장’인 영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꼭 들러봐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소수서원은 선비들의 인격함양과 학문탐구를 실현했던 곳으로 오늘날로 따지면 지방사립대학이다.
영주시에서는 소수박물관과 한국선비문화수련원과 함께 양반 고택과 서민가옥, 저자거리로 꾸민 선비촌을 조성해 놓았다. 한국선비문화수련원에서는 강학과 다양한 체험을 진행하고 있어 선비들의 삶 전반을 직접 경험해 볼 수도 있다. 특히 소수서원은 주변 경관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도록 지어 형식과 건물 배치가 자유롭다. 덕분에 전각들을 이리저리 한가롭게 거니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영주에는 보신이 되는 한 끼 식사를 내놓는 식당이 있다. 경북 전통음식 지정업소로 선정된 식당인 약선당이다. 약이 되는 음식을 만드는 집이란 뜻으로 몸에 이로우면서도 맛까지 겸비한 바른 먹거리를 제공한다. 복분자샐러드, 한우떡갈비, 표고버섯탕수육, 인삼튀김, 약초짱아치, 삼색 나물 등 소백산과 그 일대 지역 농산물을 재료로 자연 발효한 양념으로 간을 한 자연식이 입맛을 돋운다. 다양한 정식 세트가 마련되어 있다.
영주 풍기읍은 전란을 피할 수 있는 피병지로 이름난 곳이다. 주세붕에 의하여 재배가 장려되었다는 풍기인삼과 나무에서 추출한 식물성 섬유로 만든 풍기인견이 유명하다. 인삼 중에서도 최고로 쳐주는 풍기 인삼을 사려거든 풍기역 앞에 자리한 풍기인삼시장을 들르면 된다. 의류부터 침구류까지 인견으로 만든 제품들을 다채롭게 갖춘 풍기인견백화점도 들러볼만 하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 난 기자 nan@kuk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