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지난달 31일 미국이 한·미 합동군사연습 기간 전략폭격기를 출격시켰기 때문에 킹 특사 방북 초청을 취소했다고 주장했다. 대변인은 조선중앙통신 기자와의 문답에서 미국이 최근 한·미군사연습 기간 “전례 없이 연속적으로 B-52H 전략폭격기를 조선반도 상공에 들이밀어 핵폭격 훈련을 벌이는 엄중한 군사적 도발을 감행했다”며 “미국은 모처럼 마련됐던 인도주의 대화 분위기를 한순간에 망쳐놓았다”고 비난했다.
대변인은 또 북한이 “(합동군사연습에도 불구하고) 긴장격화의 악순환을 막기 위해 최대한 자제력을 발휘해왔다”며 “(미국이) 연속적으로 전략폭격기를 진입시킨 것은 우리에 대한 가장 명백한 핵 공갈이며 군사적 위협행위”라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는 인도주의적 견지에서 출발해 미국이 제기한 국무성 특사의 방문을 수락하고 미국인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하려고 했다”고 밝혔다.
북한이 킹 특사 방북 초청 철회 이유로 폭격기 훈련을 들었지만 실제 속내는 배씨 석방과 북·미 회담 혹은 6자회담을 연계하지 않는다는 미국의 분명한 입장을 확인한 이상 배씨 석방으로 얻을 정치적·경제적 실익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킹 특사 방북을 통해 북·미 대화의 실마리를 푸는 계기를 만들고 싶었지만 북한 뜻대로 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식량지원 등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뜻이다.
북한은 지난 5월부터 대화국면 조성을 위해 남북관계 복원을 앞세우면서 다자회담 개최에 총력전을 펴는 상황이다. 북한이 킹 특사의 방북 초청 이후에도 미국의 태도 변화를 촉구한 것은 이런 입장을 반영한다. 북한 국방위원회는 지난달 29일 이례적으로 담화를 통해 “우리는 건설적이고 과감한 평화적 조치들을 실천해 나가기 위한 문제들을 심중히 검토하고 있다”며 미 정부에 대화와 평화적 환경 조성을 위한 결단을 촉구했었다.
미국 정부의 배씨 석방 시도 역시 이른 시일 내에 다시 추진되긴 쉽지 않아 보인다. 지난해 11월 함경북도 나진항을 통해 북한에 들어갔다가 억류된 배씨는 북한 최고재판소에서 반공화국 적대범죄 혐의로 15년의 노동교화형을 선고받았다. 배씨는 구금생활 중 건강이 악화돼 북한의 외국인 전용병원에 입원 중이다.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