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측의 최영철(61)씨는 1974년 2월 15일 백령도 서쪽에서 홍어잡이 어선 수원33호에서 조업을 하다 북한의 함포 사격을 받고 경비정에 의해 끌려가 납북된 것으로 알려졌다. 함께 조업을 하던 수원32호는 침몰했다. 당시 납북된 어부는 14명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측의 박양수(58)씨도 납북어부다. 1972년 12월 당시 오대양61호 선원이던 그는 쌍끌이 어선 오대양62호와 함께 서해 상에서 조업을 하던 중 북한 경비정에 의해 나포됐다. 당시 선원 25명이 납북된 것으로 전해졌다. 함께 납북됐던 오대양호 선원 전욱표(69)씨는 북한을 탈출해 지난해 9월 국내에 들어오기도 했다.
당시 서해상에서 조업하던 우리 어선이 연달아 납북되자 서울과 인천 전역에선 북한을 규탄하는 궐기대회가 잇따라 열렸다. 그러나 이후에도 납북어부들은 제대로 귀환하지 못했다. 2008년 납북자가족모임의 최성용 대표가 ‘납북어부 사진’이라며 31명의 사진을 공개한 적은 있다. 정부와 한국적십자사는 이산가족 상봉 행사시 전시 및 전후 납북자 가족을 상봉 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을 추진해왔지만 북측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
남측에 살고 있는 납북자 가족들은 1970년대 공안당국의 감시 아닌 감시를 받아야 했다. 납북자 가족들은 “가족들이 학교에 마음 편하게 다닐 수가 없었고, 외국으로 출국하는 것도 안됐다”고 회상한다. 형 박양수씨를 만난 동생 양곤씨는 앞서 사전 인터뷰에서 “형은 생업에 도움이 될까 하고 어린 나이에 떼밀려서 배를 타러 간 것”이라고 말했다. 납북 이후 가족 생활에 대해서는 “우리 국민들은 정치의 영향을 안 받을 수는 없는 것이고 (형이 납북되고 나서) 좀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금강산=공동취재단, 국민일보 쿠키뉴스 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