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이번 만남은 치밀하게 계획되고 사전에 조율된 양자 정상회담이 아니고, 북핵 등 안보 이슈를 주요 의제로 한 한·미·일 3국 정상회담의 틀 속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회동이 곧바로 양국 관계 개선의 전환점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박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이번 만남을 통해 서로 대화를 할 만한 상대라는 인식을 상대방에게 심어주고, 양국 외교당국 간 현안 협의가 원만하게 뒷받침될 경우 한·일 정상이 향후 다시 한번 만날 가능성은 높아진다. 한·일 양국 간에 이번 만남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것이 이 때문이다. 일각에선 두 정상이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안보 이슈를 주로 논의하겠지만 고노담화 등 한·일 양국 간 과거사 현안에 대한 의견 교환도 짧게나마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사실 박 대통령과 아베 총리의 이번 만남은 재임 중 첫 회동이지만, 두 사람은 과거에 몇 차례 만난 적이 있다. 박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각각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표와 자민당 간사장이던 2004년 9월 처음으로 만났다. 아베 총리는 당시 한국을 방문해 야당 대표인 박 대통령을 찾았다. 이 때도 두 사람의 주요 대화 소재는 한·일 관계와 역사인식 문제였다. 박 대통령은 당시 “역사교과서 문제는 양국 간에 해결해야 할 큰 문제”라며 “미래세대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까 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역사를 직시해야 한다는 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검정된 교과서를 합리적으로 선택하도록 하겠다”고 답변했다.
두 번째 만남은 2년 뒤인 2006년 3월 이뤄졌다.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 대통령은 일본 방문 길에 당시 관방장관이었던 아베 총리와 재회했다. 박 대통령은 그 때에도 두 나라의 미래지향적 관계를 강조하면서 “일본은 가해자고, 한국은 피해자라는 것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진실”이라며 “그 바탕 위에서 (과거사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두 달 뒤 박 대통령은 지방선거 유세 중 이른바 ‘커터칼 피습’ 사건으로 신촌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했다. 아베 총리는 박 대통령 병실에 난과 일본산 쇠고기를 보내 쾌유를 기원했다.
박 대통령의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과 아베 총리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총리도 가까운 사이로 알려져 있다. 아베 총리는 지난해 2월 미국 워싱턴에서 한 강연을 통해 “나의 조부는 박근혜 당선인의 부친인 박 전 대통령과 ‘좋은 친구(best friend)’였다. 그리고 박 전 대통령은 일본과 매우 친밀했던 분”이라며 두 사람의 인연을 강조한 적이 있다. 박 전 대통령은 1961년 방일 당시 기시 전 총리를 만났고, 기시 전 총리는 이후 박정희정부의 한·일 교류에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 전 대통령은 기시 전 총리에게 1970년 일등수교 훈장을 수여하기도 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