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의 나쁜 놈 되는 건 한 순간”… 롯데 여대생 파울볼 사고의 전말

“천하의 나쁜 놈 되는 건 한 순간”… 롯데 여대생 파울볼 사고의 전말

기사승인 2014-08-03 17:57:55

문득 예전에 즐겨봤던 KBS 1TV ‘가족오락관’이라는 프로그램이 떠오릅니다. 그 중 ‘고요 속의 외침’이라는 코너가 참 재미있었죠. 시끄러운 음악이 나오는 헤드폰을 낀 상태에서 앞사람의 말을 뒷사람에게 전달하는 게임입니다. 직접 듣지 않은 말은 언제든 와전될 수 있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준 코너였습니다.

이런 일은 현실에서도 비일비재합니다. 이번 ‘롯데 자이언츠 여대생 파울볼’ 사건도 그렇습니다. 지난달 24일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의 홈구장인 부산 사직구장을 찾은 여대생 A양(19)은 한 선수가 친 파울볼에 머리를 맞았습니다. A양은 두개골 골절과 함께 뇌출혈 증상까지 보이는 중상을 입었습니다. 소식은 1주일쯤 뒤인 지난 1일에서야 알려졌습니다. 노컷뉴스가 해당 학생의 병원을 찾아 보도하면서부터였죠.

이 매체는 수술 부위의 머리카락을 깎고 갈라진 상처에 40여개의 핀을 박은 A양의 참담한 모습을 대중에게 알렸습니다. 이와 함께 “사고 발생 이후 수차례 롯데 측에 경위와 항의 했지만 진정성 있는 사과 한 번도 없었다… 롯데 측이 이 같은 사태에 대해 아무런 책임이 없는 듯 대응하는 모습에 분노를 넘어서 허탈함을 느낀다”는 A양 아버지의 말도 실었습니다. 네티즌은 순식간에 들끓었습니다. 야구장 안에서 파울볼 등으로 발생한 사고에 대해 구단 측이 배상할 법적인 책임은 없을 지는 몰라도 무책임한 태도에는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쏟아졌습니다.

그런데 보도 과정에서 한 가지 문제가 나왔습니다. 파울볼을 친 선수가 롯데의 외야수 손아섭(26)이라고 콕 집어 언급된 겁니다. 손아섭은 공적으로 몰렸습니다. 배상을 요구하는 여론까지 불거졌죠. 하지만 사고의 목격자를 자처한 몇몇 네티즌들이 나서면서 상황은 뒤집어졌습니다. “당시 손아섭은 초구에 아웃됐다. 파울볼을 친 건 손아섭이 아니다”라고 증언이 나온 겁니다.

이런 와중에 “환자를 의무실로 이동시키고 앰뷸런스에 태워 보낸 경호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최모씨는 페이스북에 해명글을 남겼습니다. 그는 “당시 충분히 구단약관을 설명 드리고 ‘원칙상 사고 책임은 없으나 치료받을 수 있는 만큼 받으시고 영수증을 모아놓으시면 구단에서 처리할 수 있게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말씀드렸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이어 “A양 부모님과도 새벽 늦게까지 문자 연락하고 충분히 설명 드렸는데 이런 기사로 (손아섭이) 나쁜 사람으로 몰렸다”며 억울함을 토로했죠.

노컷뉴스는 보도 시점으로부터 6시간쯤 지난 뒤 손아섭을 언급한 부분을 기사에서 지웠습니다. 인터넷에서는 “얘기가 전해지며 각자의 입장이 첨가되니 역시나 오해가 생긴다” “역시 사람 말은 양쪽 다 들어봐야 한다”는 목소리로 채워졌습니다.

롯데는 3일 보도자료를 통해 “부상자의 후유증과 사후 대책에 대해서는 진료 상황을 지켜보면서 부상자 가족과 상의할 예정”이라며 “부상자가 아직 대학생인 점을 고려해 치료비는 물론 향후 진로에 대해서도 어려움이 없도록 대처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손아섭과 관련한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도 못 박았습니다.

오해는 순식간에 생깁니다. 아주 작은 오해의 씨앗이 어느 순간 커다랗게 자라있을 수도 있죠. 정확하지 않은 말과 글이 무서운 이유입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권남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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