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명량’의 열풍이 거세다. 잇따르는 참사와 어려운 경제상황 등 현대판 ‘난세’에 찾아든 성웅 이순신의 이야기에 사람들이 열광하고 있다.
명량은 연일 신기록을 갈아 치우고 있다. 3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영화는 전날 1494개관에서 122만 9016명을 모았다. 한국영화 사상 처음 일일 관객 100만명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한 것이다. 뿐만 아니다. 개봉 나흘 만에 관객 350만명을 넘으며 역대 최단기간에 300만명 관객을 동원하기도 했다. 천만 관객 돌파는 시간문제라는 관측까지 나온다.
영화에는 분명한 흥행요소가 존재한다. 소재가 첫 번째다. 이순신 장군은 우리 국민이라면 누구나 존경하고 경외하는 위인이다. 광화문 앞 동상으로만 접해도 가슴 깊이 뜨거운 무언가를 끌어 오르게 하는 그가 스크린 속에서 살아 돌아온다니. 관객들의 발길을 끌어 모으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영화 자체의 완성도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흥행은 어렵다. 명량은 이 점도 충족한다.
이순신 역의 최민식을 필두로 해 왜군으로 등장하는 류승룡(구루지마)과 조진웅(와키자카) 등이 강렬한 연기를 선보인다. 탐망꾼 진구(임준영)와 그의 아내로 등장하는 이정현(정씨부인)은 짧은 장면에서도 진한 감동을 남긴다. 권율과 고경표, 박보검, 노민우 등 신예들의 활약도 눈부시다.
배우들 연기만이 아니라 전체적인 연출 역시 유려하다. 특히 이순신 장군의 심리묘사와 해상 전투신에 공을 들였다. 전반에는 전쟁 중 인물 개개인의 심리를 잘 짜여진 시나리오로 담아냈고, 후반에는 박진감 넘치는 전투 장면으로 볼거리를 제공한다.
하지만 세세하게 본다면 완벽한 영화라는 평을 내리긴 어렵다. 초반 여러 척의 배가 바닷물위에 떠있는 장면에서의 어색한 CG는 집중도를 다소 떨어뜨린다. 몇몇 장면 전환에서는 매끄럽지 않은 연결이 보인다. 장면과 장면 사이가 뚝뚝 끊기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무엇보다 조연들의 역할 설명이 부족했던 점이 가장 아쉽다. 이정현이 연기한 정씨부인은 시나리오 상에서는 왜군에 의해 가족을 잃고 벙어리가 된 후 몇 번이나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던 사연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영화엔 이런 설명이 전부 편집됐다.
일본배우 오타니 료헤이가 연기한 왜군 병사 준사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왜군이지만 이순신의 무도를 흠모해 투항하고 조선에 편에 선 인물이다. 하지만 영화에선 이런 언급이 없다. 첩지를 통해 일본군의 동태를 이순신에게 몰래 알리다가 전투가 시작되자 어느 샌가 조선군 사이에서 싸우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영화엔 이런 ‘흠’들을 무색케 하는 힘이 있다. 바로 최민식이다. 최민식의 카리스마 넘치는 눈빛을 마주하면 어색한 장면 연결 따위는 더 이상 큰 문제가 아니게 된다. 다른 등장인물 설명도 나왔으면 물론 좋았겠지만 생략됐더라도 괜찮다. 그만큼 이순신의 내면을 이해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최민식은 지난 6월 26일 열린 제작보고회에서 “이순신 장군에 대해 우리는 어릴 때부터 익히 들어 알고 있지만 제대로 알진 못하는 것 같다.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신화 같은 존재 아닌가”라며 “(영화를 통해) 교과서를 통해 접했던 모습이 아닌 ‘인간 이순신’에 접근하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그의 고민은 헛되지 않았다. 부하들 앞에서는 강하지만 아들 앞에선 자상한, 그리고 혼자 있을 땐 고민과 압박감에 시달리는 인간 이순신. 최민식은 이를 온 몸으로 표현해냈다. 눈빛은 물론 걸음걸이와 손동작 하나에까지 온전히 담았다. 진심어린 연기가 관객들에게 전해진 게 아닐까. 한동안 명량의 흥행질주를 막긴 어려워 보인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