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한 장의 사진이 네티즌들의 시선을 끌었습니다. ‘어느 중학교 방학숙제’라는 단순한 제목이 붙여져 올라왔는데, 순식간에 여러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화제가 됐습니다.
여름방학 과제가 설명된 안내문으로 보입니다. 어느 학교인지, 몇 학년 학생에게 주어진 과제인지 등에 대한 정보는 전혀 없습니다. ‘도전. 여름방학 보내기’라는 코너로 20개의 탐구 활동 주제가 제시돼 있을 뿐입니다. 20개 중 2개 이상을 택해 소감문을 쓰면 된답니다.
주제들이 참 재미있습니다. ‘무슨 과목을 어떻게 공부해라’ ‘어떤 문제집을 몇 장 이상 풀어라’는 등의 과제가 아닙니다. 어린 시절 나도 한번쯤 해봤으면 어땠을까 싶은 것들입니다.
1번부터 예사롭지 않습니다. ‘맨땅의 흙을 맨발로 밝아보기’입니다. 이어 ‘해지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기(서쪽하늘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서)’ ‘숲에서 나무를 껴안아보고 나무와 이야기하기’ ‘들꽃과 같은 키로 엎드려 얘기하기’가 있습니다.
자연 체험과 관련된 것 외에도 ‘하루 종일 아무 것도 안하기’ ‘버스 타고 무작정 아무 데나 종점까지 갔다가 되돌아오기’ 항목도 보입니다. 요즘 학생들 학업에 참 바쁘지요. 휴식시간엔 TV와 인터넷, 스마트폰 등에 둘러싸여 사색에 잠길 시간이 없을 테고요. 방학을 맞아 한번쯤은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보라는 의미겠지요.
또 ‘혼자 밥하고 반찬 챙겨 가족들 챙기기’ ‘부모님의 직장(일터) 견학하기’ 등 가족과의 교류를 강조하는 항목도 있습니다. ‘하루 동안 장애친구(시각장애, 다리불편, 한쪽 팔 등) 되어보기’라는 항목도 눈길을 끕니다. 타인을 이해하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힘이 길러지겠네요.
몇몇 네티즌들은 “9번이 함정”이라며 장난스런 댓글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9번에는 ‘나의 장래희망을 랩으로 표현하고 노래로 녹음하기’라는 과제가 주어졌습니다. 정말 쉽지 않아 보이는데요. 그래도 음악을 좋아하는 학생들은 이 항목을 선택하겠지요?
네티즌들은 “맞다. 애들은 이렇게 자라야 하는데” “참 좋은 방학숙제다”라며 감성에 젖은 모습입니다. “주책 맞게 눈물이 난다” “괜히 뭉클하다”는 글도 여럿 보입니다. 더위에 지키고 공부에 지친 많은 학생들이 ‘예쁜 숙제’를 하며 잠시라도 쉬어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