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경찰이 일망타진한 ‘범서방파’는 ‘양은이파’, ‘OB파’와 함께 1970년~1980년대 서울을 분할 장악한 3대 전국구 조직이다.
‘서방파’라는 이름은 김태촌(사진)이 행동대장 시절 두목이었던 김모씨의 출생지인 전남 광산군 서방면에서 따왔다고 한다. 서방파나 범서방파하면 대중들은 으레껏 김태촌을 떠올리지만 사실 이 이름은 김태촌과는 상관이 없는 것이다. 김태촌은 전남 광주 우산동 출신이다.
정·재계는 물론 연예계의 각종 이권에 개입하며 세력을 확장해 간 서방파는 ‘뉴송도 호텔 나이트클럽 사건’으로 본격적으로 그 이름을 대중에게 알렸다. 김태촌의 지시를 받은 서방파 조직원들이 1986년 이 나이트클럽 사장인 황모씨를 흉기로 잔혹하게 살해한 것이다.
당시 검찰은 김태촌에게 1·2심 모두 사형을 구형했고, 법원은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김태촌은 복역 중 폐암 진단을 받고 형 집행정지로 풀려났다. 하지만 1992년 범서방파를 결성한 혐의 등으로 다시 징역 10년형을 선고 받았다.
앞서 범서방파(서방파), 양은이파, OB파의 3대 구도가 형성된 시발점도 범서방파였다.
광주에서 활동하다 1970년대 초반 서울에 올라온 김태촌이 당시 서울을 꽉 잡고 있던 폭력조직들 중 하나인 호남파 두목을 칼로 찌른 것이다. 1976년 3월이었다. 김태촌은 당시 전남 목포 출신 두목 박모씨가 이끄는 번개파의 일원이었다.
그런데 이 호남파에는 이후 ‘양은이파’의 두목이 되는 조양은이 있었다. 김태촌의 습격으로 호남파의 실질적 두목이 된 조양은은 한 달 뒤 김태촌 일당을 보복 공격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김태촌의 서방파, 조양은의 양은이파가 탄생해 두 조직은 본격적인 라이벌의 길로 들어섰다. 그리고 김태촌과 조양은이 모두 구속되는 등 두 조직 간의 혈투가 치열한 틈을 타 세를 키워나간 것이 이동재의 OB파이다.
잊혀져 가던 범서방파는 2007년에 다시 대중 앞에 나타났다. 김승연 한화 회장의 ‘보복 폭행’ 사건 당시 범서방파 행동대장 출신인 오모씨가 폭행에 가담했다는 혐의를 받은 것이다.
범서방파는 지난해 1월 조직의 분신과도 같았던 두목 김태촌의 사망 이후 와해의 길을 걷는 듯 했다. 그러나 이번에 ‘2세대’ 신규 조직원 수십 명이 검거되면서 은밀히 조직 재건을 추진해 온 것이 밝혀진 셈이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유흥업소를 상대로 보호비 명목의 금품 갈취를 일삼고 각종 유치권 분쟁에 개입한 혐의(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등)로 범서방파 조직 내 서열 2위인 부두목 김모(47)씨 등 간부급 8명을 구속하고 5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21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범서방파는 지난해 김태촌이 사망한 후에도 부동산 투자나 대부업 등 합법적 사업을 가장해 조직의 자금을 조달하고 지속적으로 위력을 과시해왔다.
경찰은 도주한 현 두목을 추적하는 한편 다른 폭력조직에 대해서도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