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50m를 앞뒀을 때까진 7년 전과 비슷한 장면이었다. 하지만 드라마가 재연되진 않았다.
박태환(25·인천시청)이 2014 인천 아시안게임 남자 수영 자유형 400m에서 3분48초33으로 동메달을 차지했다. 박태환과 함께 3강을 형성한 쑨양(중국)이 3분43초23으로 금메달, 하기노 고스케(일본)이 3분44초48로 은메달의 주인공이 됐다.
2007년 고등학생이던 박태환과 20대 중반의 성인이 된 2014년의 박태환은 마지막 50m 레이스에서 큰 차이를 보였다.
박태환은 경기고 3학년에 재학 중이던 2007년에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자유형 400m 결승에 올랐다.
당시 박태환의 우승을 예상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전까지 한국은 세계선수권대회 메달 경력이 전무한 수영 약체였기 때문이다. 1998년 호수 퍼스 대회에서 접영 200m에 출전한 한규철이 결승에 올라 7위를 차지한 게 최고 성적이었다.
박태환이 한국·아시아신기록(3분45초72)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세계무대에서는 ‘얼마나 하는지 한 번 봐줄 만한’ 다크호스 정도였다. 팬·전문가들의 눈은 오로지 피터 반더카이(미국), 우사마 멜룰리(튀니지), 그랜트 헤켓(호주), 유리 프릴루코프(러시아)에만 쏠려 있었다.
박태환은 350m 지점까지 3~4위를 유지했다. 그렇게 끝나는 듯 했지만 그 순간 박태환의 ‘막판 스퍼트 쇼’가 시작됐다. 박태환은 마지막 50m 레이스가 시작되자 무섭게 치고 나오며 ‘거성’을 한 명 한 명 따라 잡았다. 그러더니 마지막 10m 정도를 남긴 상태에서는 멀찌감치 앞서며 가장 먼저 터치패드를 찍었다. 박태환의 기록은 3분44초30. 2위 멜룰리가 3분45초12일 정도로 완벽한 우승이었다. 한국의 세계수영선수권대회 출전 34년 역사상 첫 위업이었다. 박태환인 이 대회를 시발점으로 승승장구하며 2008년 베이징올림픽 자유형 400m에서도 3분41초86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후 박태환은 한 방송 토크쇼에 나와 “우승을 확인하고 옆을 보니 다른 선수들이 ‘쟨 뭐야’라고 하는 듯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라고 당시의 일화를 전하기도 했다.
이번에도 흡사했다.
박태환은 250m 지점까지 쑨양, 하기노와 큰 차이 없이 3위를 유지했다. 쑨양이 250m 지점부터 서서히 속도를 끌어올렸다. 350m 지점이 되자 1위 쑨양과 3위 박태환은 3~4m 정도 벌어져 있었다. 박태환은 7년 전 이 때와 판박이나 다름없는 상황에서 기적 같은 스피드로 막판 뒤집기를 연출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7년 전의 박태환이었다. 오히려 50m를 오는 동안 차이는 더 벌어졌고, 쑨양이 고개를 들어 전광판을 확인할 때도 박태환은 역영 중이었다.
박태환은 아시안게임 3연패는 이루지 못했지만 3회 연속 메달 획득 성공이라는 의미있는 성과를 이뤄냈다.
박태환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응원해 주신 팬들에게 미안하다. 솔직히 이제 힘이 많이 부치는 것 같다”며 전성기가 지나가고 있음을 암시했다.
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