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서 탤런트’로 잘 알려진 조성규씨가 2014 인천아시안게임에 출전한 우리나라 복싱 선수들이 ‘편파 판정’ 수혜를 받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조씨는 2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한국복싱 편파판정? 그래서 복싱심판 합니다’라는 글에서 “한국 복싱이 우물 안 관심 밖 종목이 되면서 국내 복싱경기에선 예쁜 얼굴이면 손이 올라간다는 코미디 같은 일이 있기도 했다”며 “그 못된 손버릇이 이번엔 예쁜 얼굴이 아닌 가난한 아시아의 나라를 향해서, 그것도 저질 스포츠왕국 대한민국 아시안게임에서 ‘무대포’로 행해지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정말이지 복싱인의 한 사람으로서 매우 부끄럽고 창피스럽다. 한국 국가대표 선수들도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을 위해 피땀 가득한 인내의 시간을 가졌겠지만 그것은 한국 선수들만이 아닌 외국의 어떤 선수들도 다 마찬가지”라며 판정의 불공정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조씨는 지난 9월부터 한국권투연맹(KBF) 심판위원으로도 활동 중입니다. 본업은 연기자이고 복싱계 핵심인사도 아니지만 복싱 전문성을 의심할 사람도 아닙니다. 전국체전 동메달, 전국복싱선수권대회 우승 경력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그가, 그것도 같은 한국인인 그가 왜 이런 글을 올렸을까요. 그는 글에서 특정 선수의 이름을 언급하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2일에 글을 올린 것으로 보아 전날 일어난 인도 선수의 ‘메달 거부’ 사태가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이 자명합니다. “가난한 아시아의 나라를 향해서”라는 표현에서도 조심스럽게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1일 열린 여자 복싱 라이트급(60㎏급) 시상식에서 동메달리스트인 인도의 라이쉬람 사리타 데비는 눈물을 흘리면서 자신의 메달을 시상대에 있던 은메달리스트 박진아(25·보령시청)의 목에 걸어줬습니다. 전날 4강전에서 박진아에 0대3으로 진 판정에 대한 불만의 표현이었습니다.
보기 드문 장면에 논란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고, 조씨는 박진아가 편파판정으로 이긴 게 맞다고 보는 겁니다. 데비 측은 데비 측대로, 박진아 측은 박진아 측대로 억울함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조씨는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박진아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경기를 말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지난해 프로복싱과 유사한 방식으로 바뀐 국제복싱협회(AIBA)의 채점 룰이 처음으로 적용되는 국제대회가 이번 아시안게임”이라며 “우리나라 선수들은 굉장히 소극적으로 경기를 했다. 바뀐 룰의 관점으로 보면 다 진 경기”라고 주장했습니다.
국제대회에 적용되는 아마추어 룰은 개정 전엔 ‘유효타’가 기준이었습니다. 따라서 ‘치고 빠지는’ 아웃복싱 전략만으로 이길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지난해 6월부터 얼마나 공격적이었는지도 판정 기준이 되도록 바뀌었습니다. 유효타가 적어도 인파이터 스타일의 저돌적인 경기를 펼친다면 더 점수를 받게 됩니다. 이승배 여자대표팀 감독은 “유효타는 박진아가 더 많았다”고 말했지만 이것이 완벽한 명분은 되지 못한다는 겁니다.
30대 이상의 독자라면 1988년 서울 올림픽 때 라이트미들급(71㎏ 이하 급)에서 미국의 로이 존스를 누르고 금메달을 딴 박시헌(49) 선수를 기억하실 겁니다. 공교롭게도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남자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죠.
당시 세계 각국의 언론은 박시헌의 승리에 대해 ‘홈 텃세’ 논란을 제기했습니다. 그만큼 로이 존스가 압도적이었는데도 심판들은 박시헌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비난에 시달리던 박시헌은 엄청난 마음고생을 하다 올림픽 직후 선수생활을 접었습니다.
복싱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박진아의 사례가 편파 판정인지 아닌지, 홈 텃세인지 아닌지는 거론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뒷맛이 개운치 않은 승부는 진 선수뿐만 아니라 이긴 선수도 피해자로 만든다는 겁니다.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르고도 고개를 숙여야 했던 26년 전의 박시헌이나, 은메달이라는 한국 여자복싱 사상 최고의 성적을 내고도 ‘시상대 치욕’에 눈물을 흘려야 한 현재의 박진아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한국 복싱은 귀를 기울여야겠습니다.
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