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밤 홀로 영화관을 찾았다.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상영시간에 맞춰 갔다. 두 번째 줄 중간에 딱 한 자리가 남아 있었다. 다른 영화였다면 불만스러운 자리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좌석이 남아있어 다행이라는 마음뿐이었다.
상영관 안 풍경은 이색적이었다. 주말 저녁 젊은이들로 가득한 일반 상영관 모습이 아니었다. 40~50대 아줌마, 아저씨 관객들이 설레는 표정으로 티켓에 적힌 자리를 찾고 있었다.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노신사는 상영관 구석쯤 앉아있었다. 내 옆자리엔 영화관 예절이 익숙치 않은 듯한 아주머니 두 분이 앉았다. 상영 내내 텔레비전을 시청하듯 담소를 나눴지만 그마저도 정겨웠다.
영화는 경쾌하게 시작한다. 첫 장면 배경은 낙엽이 잔뜩 떨어진 어느 가을날의 마당이다. 조병만(98) 할아버지와 강계열(89) 할머니는 각자 빗자루를 들고 두런두런 담소를 나누며 마당을 쓴다. 애써 낙엽을 치웠는데 할아버지 장난기가 나오고 만다. 수북히 쌓인 낙엽을 한아름 주워 할머니에게 던진다. 할머니는 “대체 왜 그래요”라면서 짜증을 내면서도 장단을 맞춰준다.
어찌나 금슬이 좋은지 부부는 늘 같은 한복으로 맞춰 입고 외출을 한다. 할아버지의 저고리와 바지, 할머니의 저고리와 치마 색이 곱게 어울린다. 변치 않는 건 커플룩만이 아니다. 어딜 가든 부부는 손을 꼭 붙잡고 속도를 맞춰 걷는다.
귀여운 두 분의 알콩달콩한 일상에 관객들은 웃음을 참지 못한다. 하지만 지난 세월 쌓인 부부의 사연이 하나씩 전해지며 객석 곳곳에선 흐느끼는 소리가 퍼진다. 자식 열두 명을 낳았는데 그 중 여섯을 전쟁이나 질병 등으로 잃었다는 할머니 고백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누가 먼저 가든 하늘나라서 자식들 만나면 입혀주자”면서 어린이 내의를 사다 할아버지에게 보여주는 할머니 모습에 객석은 울음바다가 되고 만다.
그렇게 영화 속 계절은 흐른다. 이는 빼어난 영상미로 표현됐다. 변화하는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화면에 옮겨와 자연스럽게 시간이 흘렀음을 나타냈다. 봄부터 겨울까지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평범한 일상이 펼쳐진다. 병세가 눈에 띄게 악화되는 할아버지 모습에 안타까우면서도 서로에게 의지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부부 모습에 흐뭇하다.
웃다가 울다가 정신없는 86분이 흐른다. 상영관 불이 밝혀진 뒤 관객들은 서로 민망해 얼굴을 못 든다. 눈물범벅이 된 얼굴 때문이다. 젊은 여성 관객들은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목이 멘 목소리로 친구와 얘기를 나누며 상영관을 빠져나갔다. 엔딩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자리를 뜨지 못하는 이도 많았다. 영화가 주는 여운이 너무 무거웠다.
진모영 감독은 중·장년층 관객을 겨냥해 영화를 만들었지만 젊은층 사이에도 반응은 뜨겁다. 13일 하루에만 24만7000여 관객이 영화를 봤다. 할리우드 대작 ‘인터스텔라’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을 모두 물리친 무서운 기세다. 지금까지 누적관객수는 77만6424명이다. 독립영화로서 쉽지 않은 기록이다. 그런데 흥행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서서히 퍼지고 있는 입소문이 심상치 않다.
노부부의 아름다운 황혼. 짐작하기 어려운 내용은 아니다. 그러나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주는 메시지는 세대를 초월한다. 부모 세대와 젊은 세대가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는 많지 않다. 어떤 로맨틱 코미디보다 이 겨울을 따뜻하게 할 수 있는 영화가 아닐까.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