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의 ‘땅콩 리턴’ 사건 이후 눈길이 가는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기업이 위기상황에 처했을 때 극복의 시발점이 돼야 할 ‘사과문’이 오히려 문제만 더 키우고 있다는 것이다.
8일 첫 사과문에 이어 16일 각 일간지에 광고 형식으로 낸 사과문(사진) 역시 비난 여론만 더 키우고 있다.
대기업 출신 홍보 업무 경력 23년인 A씨는 지난 8일 사과문에 대해 “사과문이 아니라 한마디로 ‘뒷북’이었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사과문은 쉽게 표현해서 깔끔하고 쿨해야 한다”며 “시원하게 잘못을 인정하고 시작하는 게 사과문의 기본인데 오히려 변명으로 일관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업 위기상황에서의 커뮤니케이션은 상당히 전문적인 영역”이라며 “대한항공 통합커뮤니케이션실 전무가 조양호 회장의 막내 딸인 조현민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제 갓 서른이 넘은(1983년생) 수장에게 전문성을 기대하기 힘든데다 파문의 장본인이 언니인 사람이 전무로 앉아있는데 아래에서 전문적인 전략이 있다고 해도 주장이나 할 수 있었겠느냐”고 반문했다.
나온 대응도 문제였지만 숨겨진 다른 대응책이 있었다고 해도 결국 ‘조현아 지키기’로 갈 수 밖에 없는 조직 문화가 문제였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경력 10년 B씨는 첫 사과문에 대해 “속도도 느렸고 진정성도 없었다”며 “무엇보다 당사자(사무장, 승무원)에 대한 사과 내용이 없었다는 게 크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의 대한항공처럼 시간 끌다가 어정쩡한 사과문 내는 수법이 과거엔 통했다”며 “하지만 SNS 등을 통해 실시간으로 새로운 정보나 증거가 등장하는 지금 같은 시대엔 현실성이 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새로운 틀 같은 게 정립된 건 없지만 요즘 업계에선 (잘못을 하면) 거짓 한 점 없이 무조건 진실을 공개하고 그 부분에 대해 전적으로 사과하는 게 최고라는 말을 한다”며 “그리고 속도전이 중요하다는 걸 간과했다. 8일 아침에 기사가 다 나왔는데 국민 공분이 최고조에 오른 8일 밤에, 그것도 책임을 사무장과 승무원에게 넘기는 듯한 내용으로 냈다. 그리고 이후엔 본인이 아니라 아버지가 대중 앞에서 처음으로 사과를 했다. 욕을 더 먹을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아마 ‘빨리’ ‘본인이’ ‘진정성이 느껴지는’ 사과를 했다면 비난은 좀 들었겠지만 지금만큼 문제가 커지진 않았을 것”이라며 “이제는 도저히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선을 넘어버렸다”고 덧붙였다.
기업컨설팅업체인 휴먼솔루션그룹의 최철규 대표는 16일 사과문에 대해 “사과의 주체도, 대상도 명확하지 않고 피해당한 사람에 대한 감정적 공감이 빠져 있어 진짜 사과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기업이 위기상황에서 사과문을 발표할 때 지킬 ‘CAP’ 원칙이 있다고 소개했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A’(Action) 즉,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어떤 조처를 할지에 초점을 맞추는가 하는 부분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나머지 C(Care and Concern)와 P(Prevention)는 각각 고통받은 사람에 대한 미안함과 재발방지 약속이다.
최 대표는 “잘못된 사과문을 보면 A는 빠지고 C만 들어가는데 대한항공의 사과 광고가 그렇다”면서 “A가 있어야 뭔가 제대로 달라지겠구나 이런 걸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