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조금 생소한 여배우가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배우 천우희의 이야기입니다. 영화 ‘써니’에서 본드녀 연기를 한 배우라고 설명하는 게 빠를 것 같네요.
17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35회 청룡영화상에서 천우희는 김희애, 손예진, 심은경, 전도연 같은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고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거머쥐었습니다.
천우희의 수상에 모두 놀랐습니다. 하지만 영화 ‘한공주’를 본 관객이라면 그리 놀라지 않을 일입니다. 천우희는 남학생들에게 성폭행을 당해 전학을 온 열일곱살 한공주를 연기했습니다. 씻지 못할 상처를 입은 어린 소녀지만 절제된 연기로 호평을 받았죠. 영화계에선 이미 연기 잘한다고 소문난 배우입니다.
천우희는 수상자로 이름이 불리자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놀라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무대에 오르자마자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냈죠. 보는 이들까지 뭉클하게 말입니다. 그는 “이렇게 작은 영화에 유명하지 않은 제가 큰 상을 받다니…”라고 말문을 열었습니다. 영화를 함께 찍었던 동료와 스태프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면서 “저에게 이 상을 주신 게 포기하지 말라는 뜻인 것 같다. 앞으로 배우 생활하며 자신감을 갖고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여우주연상을 수상케 한 ‘한공주’는 독립영화입니다. 그는 수상소감에서 “앞으로 독립영화, 예술영화에 관심과 가능성이 더욱 열렸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죠.
1990년대와 2000년대는 여배우들의 위상이 높았습니다. 여배우 전성시대라고 할 수 있었죠.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충무로에는 ‘여배우 기근’ 현상이 일었습니다. 한국 영화계를 이끌어 갈 만한 여배우들이 없다는 말이 나왔죠. 한국 영화산업은 눈부시게 발전했고, 남자 배우들의 활약이 커져갔습니다. 그러나 여배우들은 부족한 아이러니한 현상이 발생한 겁니다.
특히 2014년은 독립영화, 다양성 영화의 부흥기였습니다. ‘한공주’를 비롯해 ‘족구왕’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거인’ ‘비긴 어게인’ 등이 관객들을 영화관으로 이끌었습니다.
천우희의 수상에 네티즌들도 함께 눈물 흘렸습니다. “진짜 이번 청룡은 인기와 외모보다 연기력으로 평가해 시상한 듯” “천우희 수상에 나도 기쁘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배우” “천우희의 눈물이 팬들에 큰 울림을 줬다” “보면서 함께 박수쳤다” 등의 반응을 보였죠.
천우희의 수상을 통해 여배우 기근 현상도 한 풀 꺾이지 않을까요. 더불어 독립영화에 대한 관심도 환기시키는 적절한 시상이었고, 수상이었습니다.
청룡영화상에서 노출로 꽃이 되고 싶었던 노수람이 있었지만 진정한 꽃은 천우희였습니다. 천우희씨, 여우주연상 수상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당신이 있어 한국 영화의 미래도 밝습니다.
이혜리 기자 hy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