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1990년대 가요계만 찬란했다니요?” 20년 후에 두고 봅시다

[친절한 쿡기자] “1990년대 가요계만 찬란했다니요?” 20년 후에 두고 봅시다

기사승인 2015-01-05 15:47:55

“요즘 젊은이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은 꽤 역사가 깊은 말입니다. 기원전 2000년께의 이집트 피라미드 상형문자를 비롯해 4000년 전의 바빌로니아의 벽돌에도 이 말이 쓰여 있다고 하죠. 1990년대의 가요를 회상한 무한도전 ‘토토가’를 보며 이 말이 생각났습니다. 가요계를 힐난하는 “요즘 가요는 깊이가 없다”라는 말입니다.

1990년대 댄스가요가 범람하며 가요시장의 황금기가 열렸습니다. 듀스,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로 힙합 장르를 비롯한 전자 음악이 득세했고, 김건모가 유로비트, 레게 등을 접목한 댄스음악을 도입하며 가요시장의 판도가 크게 바뀌었죠. 가창력보다는 음악의 구성이 주목받았고, 서정적인 포크보다는 화려한 퍼포먼스가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동시에 “가요계가 망했다” “노래에 깊이가 없다” 같은 말도 함께 범람했죠. 지금 생각해보면 댄스곡의 흥행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30대 이후가 주 타겟이었던 대중음악 시장은 1990년대 초반까지도 10~20대에게는 상당히 불친절했죠. 기성세대를 비판하는 노랫말과 화려한 패션, 번쩍이는 조명과 신나는 리듬은 그때까지 대중음악이 외면해왔던 젊은 세대에게 큰 환영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서구 음악을 한국에 섣부르게 가져왔다는 사대주의적인 시선과 소비 중심의 문화에 대해 비판적인 기성세대의 걱정 등이 뒤섞여 불가촉천민 같은 존재가 됐죠.


가요시장이 본격적인 아이돌 체제로 돌입하고 나서 편견은 더 심해졌습니다. H.O.T, 젝스키스 등 수많은 아이돌들은 ‘붕어’라는 굴욕적인 별명으로 불리며 립싱크 논란에 시달렸습니다. 팬들은 ‘빠순이’라는 이름의 ‘생각 없는 10대’ 프레임에 갇혔습니다. “작곡가들이 만들어준 천편일률적인 전자음악에 맞춰 입만 움직인다” “요즘 음악은 들을 것이 없다” “틀에 찍어낸 것 같다”는 말들은 당시의 ‘빠순이’들에게는 노이로제에 가까운 발언일 겁니다. 당시 H.O.T를 비롯한 많은 아이돌들이 자작곡이 담긴 앨범을 내며 이 같은 편견에 항변했지만 외면당했죠.

20년이 지난 지금 무한도전-토토가를 보며 SNS 반응을 찾아봤습니다. “요즘 음악에 비하면 그때 가요들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진짜 음악” “요즘 아이돌 음악에 찌든 귀가 토토가로 ‘힐링’된다” “그때 나온 명곡들을 생각하면 지금 가요계는 폐가”같은 반응이 꽤 많습니다. 재미있습니다. 그 당시에 박해받던 가요 청중들이 똑같은 프레임으로 ‘요즘 음악’을 폄하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그 때의 ‘요즘 음악’들은 과연 한국 가요계를 망하게 했을까요? 아닙니다. 서구 음악을 흉내 내는 것에 불과하다던 댄스음악들은 이제 K팝이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에 수출되고 있죠. 미국의 주류 음악 매거진인 롤링스톤즈는 현아의 ‘빨개요’ 뮤직비디오를 2014년 발표된 뮤직비디오 중 5위로 꼽았습니다. 현아가 ‘빨개요’를 발표했던 지난해 7월 국내의 “선정적이기 그지없다” “망조가 들었다”라던 반응들과는 상반된 결과죠.

그렇다면 지금보다 20년 후는 어떨까요. 아이를 업은 엑소 팬이 TV에서 어린 아이돌을 보며 “‘으르렁’이 진짜였지”라는 소리를 하고 있을 수도 있겠죠. 누군가는 지금의 가요들을 추억하며 “요즘 가요는 퇴보했다”는 이야기를 분명 할 겁니다. 그렇지만 아마 한국 가요계는 그때까지도 안 망하지 않을까요?

이은지 기자 rickonbg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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