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게시판엔 종종 ‘모세의 기적’이라는 제목으로 블랙박스 영상이 오릅니다. 차량들이 구급차의 길을 터주기 위해 일사분란하게 도로 양쪽으로 붙는 모습을 볼 때면 감동이 느껴질 정도죠. 그래서 미담 보도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단골로 달리는 댓글도 있습니다.
“길을 얼마나 터주지 않았으면 이런 게 뉴스거리가 되냐.”
구급차가 지나갈 때 차량들이 도로 양쪽으로 비키도록 하는 법안이 지난해 12월 발의됐지만 갈 길은 멉니다. 도로를 다니다 보면 꽉 막힌 도로에선 구급차 역시 옴짝달싹 못하고 있는 모습을 자주 봅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도 있지만 길을 터줄 생각이 아예 없어 보일 때도 많았습니다.
19일 공분을 일으키는 영상이 또 소개됐습니다. 양보해주지 않는 것에서 한술 더 뜹니다.
SBS뉴스를 통해 공개된 영상을 보면 A씨는 구급차 앞에서 급정거해 사고를 유발합니다. 그리고 그는 휴대전화로 사고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구급차 앞을 막아섰습니다. 구급차 기사가 나오자 ‘사고 처리를 해 달라’며 실랑이를 벌입니다. 통상적으로 추돌 사고의 과실은 후방 차량에 크게 돌아갑니다. 이것을 따지고 싶었나 봅니다.
구급차에 타고 있던 아이의 어머니가 애원해도 소용없었습니다. 어머니가 “아이가 위급한 상황”이라고 말하며 구급차 안을 보여주려 했지만 A씨는 이를 믿지 않고 뿌리쳤습니다.
구급차 기사도 “보험 처리할 테니까 전화 달라” “지금은 우리가 급하니까 가야한다”고 호소했지만 A씨는 “뭘 믿고 보내느냐”며 막무가내였습니다. 그렇게 10분을 지체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후 구급차가 근처 병원 응급실로 향해 아이를 살린 것입니다.
타인에 대한 배려가 사라져버린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 생명이 위독하다는 아이가 있다는 말을 듣고도 저리 이기적일 수 있을까요.
네티즌들은 분노했습니다. “당신 가족 중 응급환자 생겼을 때 당신 같은 사람이 길을 막아서길 바란다”라거나 “유사 사건을 예방하기 위해서도 중형에 쳐해야 한다” 등의 반응이 쏟아졌습니다.
특히 “재발 방지를 위해서라도 엄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만약 아이가 세상을 떠나기라도 했다면 과실 치사죄를 물었어야 할 것”이라는 말도 나옵니다.
한 네티즌은 “이 사건에 대해 엄벌을 내리지 않으면 구급차 앞을 막아서는 사람들이 계속 생겨날 것”이라면서 “법으로 엄한 처벌이 불가능하다면 당장 허술한 법을 고쳐야 한다”는 의견을 냈습니다.
격한 반응이 나오는 덴 이유가 있습니다. 누군가의 생명을 위협해도 긴급 차량에 대한 양보 의무를 지키지 않을 경우 도로교통법에 따른 과태료는 ‘20만원 이하’가 고작이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10월 울산에선 긴급출동 중인 구급차의 진로를 양보하지 않은 승용차 운전자가 과태료 5만원을 부과 받아 ‘첫 사례’로 알려졌습니다.
구급차 앞을 막아서는 행위는 생명을 위협하는 문제입니다. 과태료가 승차인원 초과(6만원), 꼬리물기(4만원), 안전벨트 미착용(3만원)과 비슷한 수준인 게 적절한 지 의문이 듭니다. 유럽에선 구급차 등 긴급 차량에 진로를 양보하지 않으면 최고 300만원이 넘게 벌금을 내는 곳도 있습니다. 미국엔 중앙분리대가 있는 도로의 반대편에 있는 차량도 구급차가 완전히 지나갈 때까지 옆 끝으로 붙어 서 있어야하는 주도 있다고 합니다.
예방효과가 없는 처벌이라면 있도록 강화하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요.
김민석 기자 ideae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