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일동제약이 지난 20일 정기 주주총회에서 녹십자의 주주제안으로 인한 이사·감사 선임을 성공적으로 방어한 결과, 적대적 M&A 논란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양상이다.
일동제약은 예탁원을 통해 의결권을 전달한 외국인 주주들(피델리티 포함)이 일동제약 추천인사에 100% 찬성을, 녹십자 추천 인사 측에는 100% 반대 의견을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주주총회에서 녹십자 측의 손을 들어 지주사 전환을 무산시켰던 FID LOW PRICED STOCK FUND 등 투자자들이 일동제약 측으로 기운 것. 녹십자 측 인사를 찬성한 주주는 녹십자를 제외하고 0.5%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덕분에 적대적 M&A를 경계하던 일동제약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나 녹십자는 지분을 매각하지 않고 투자자로 남아 권리행사를 지속하겠다는 입장이다. 일동제약 입장에서는 녹십자가 사업 동반자인 동시에 매년 주주총회 때마다 논란거리가 되는 '폭탄'인 셈이다.
이 때문에 일동제약은 지속적인 경영권 방어가 과제로 남게 됐다. 일동제약이 풀어야 하는 문제들과 녹십자의 적대적 M&A 의혹이 향후 어떤 행보로 이어질지 짚어봤다.
◇분쟁 속 관계 악화
일동제약과 녹십자는 이번 주주총회를 거치며 서로 간 불편한 감정을 모두 드러냈다. 녹십자의 주주제안에 일동제약이 적대적 M&A가 아님을 명확히 해달라고 요구하며 보였던 민감한 반응도 양사의 대립각을 키운 것.
특히 일동제약 노동조합의 시위가 연일 이어지며 업계에 녹십자 측에 불리한 여론이 조성됐다. 일동제약 노동조합은 녹십자에 투자한 국민연금공단 등에서 시위를 벌이고 강도 높게 녹십자를 비판하는 내용의 현수막을 다량 게시했다.
녹십자는 주주총회에서 이 점을 지적했다. 법적으로 정당한 주주제안을 했는데 회사의 사주를 받았는지 노조직원의 자발적인 행동인지 모를 비판을 받아왔다는 것.
녹십자 측 관계자는 ""기업 사냥꾼, 악덕 기업이라 비난하고 더구나 국내 정서상 붉은색으로 이름도 안 쓰는데 직접 대표 이름을 거론하며 시위했다""며 ""이런 식으로 개인 공격까지 서슴지 않는 비상식적인 행태는 없어져야 한다""고 꼬집었다.
다른 녹십자 관계자는 ""일동제약 노동조합의 주장이 언론에 조명되면서 부담이라기보다 우리 의도를 제대로 활자화하지 못했고, 상황이나 분위기가 일동제약의 원하는 바로 흘러간 부분이 있다""고 언급했다.
또 ""노동조합 측이 주장한 생존권 위협은 과도한 해석이다. 생존권 위협이나 M&A 언급 없이 주주제안을 한 것인데 격하게 반응했다""고 토로했다.
일동제약 노동조합도 이번 주주총회 결과가 긍정적인 측면으로 마무리됐지만 녹십자와의 관계는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노동조합 관계자는 ""일동제약 지분을 녹십자가 변함없이 보유하고 있는 이상 아직 알 수 없는 상황""이라며 ""녹십자를 주시하고 다시 문제가 불거지면 행동에 나서야지 않겠냐""고 전했다.
이처럼 이번 이사선임 논란을 통해 양사 감정의 골은 깊어진 상태여서 향후 행보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녹십자가 또 다른 내용으로 주주제안을 할 경우 양사의 관계가 더욱 악화될 수 있기 때문.
윤웅섭 일동제약 사장은 주주총회 직후 기자들과의 자리에서 ""녹십자와 일동제약의 상생과 신뢰를 위해 많은 대화를 할 것""이라며 관계회복의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유상증자? 백기사?…일동제약의 선택은
아울러 녹십자가 지분을 그대로 보유한 만큼 일동제약의 추가적인 경영권 방어 전략도 요구된다. 이에 업계에서는 사모펀드(PEF, 소수 투자자로부터 모은 자금을 주식·채권 등에 운용하는 펀드)를 통한 제3자 배정 유상증자의 가능성이 제기됐다. 우호 지분 확대가 절실한 일동제약이 사모펀드와 함께 경영권 방어에 나선다는 것.
실제로 사모펀드 H&Q코리아가 일동제약 지분을 매입해 경영권 보호에 힘을 보태겠다는 입장을 전한 것으로 알려지며 가능성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사모펀드를 통해 녹십자가 갖고 있는 일동제약 지분을 매입해 우호 지분을 강화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됐다.
그러나 녹십자 측은 지분 매도를 고려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고, 일동제약은 제3자 배정 유상증자 검토 가능성에 대한 3월 16일 공시에서 현재 이를 검토하고 있지 않으며 3개월 이내 추진계획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또 이 경우 녹십자는 유상증자 중단 가처분 신청 등을 통해 이를 막을 수 있으며, 판례상 경영권 분쟁 중에는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못 하는 것으로 알려져 가능성은 높지 않을 전망이다.
성보경 프론티어 M&A 회장은 ""최근 판례의 동향은 경영권 분쟁 중 인위적으로 주식을 변경할 수 없도록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못 하게 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이어 일동제약이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 시장에서 주식을 매입하거나 백기사를 구할 수 있으며, 백기사가 법인이라면 일동제약은 그 회사 주식을 매입하고, 상대 법인은 일동제약 주식을 사 의결권을 행사하는 등 우호지분을 확보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단 이 경우 주가가 내려갈 수 있고 백기사가 손해를 보면 손해배상 조항 등에도 일동제약의 책임소지가 있을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향후에도 불안요소는 여전히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동제약 정관상 있는 10명의 이사 중 임기는 또 만료될 수 있고, 다시 주주제안을 통해 녹십자는 다양한 전략을 활용할 수 있다.
그는 ""회사가 계속 견제받으면 성장하기 어렵다. 회사를 키우려면 유상증자도 하고 자금조달도 해야 하는데 쉽지 않아 일동제약이 정체될 수 있다. 또 경영권 불안으로 해외 제휴나 투자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또한 일동제약에서 만일 리베이트 문제, 배임횡령 문제 등 법적 문제가 발생하면 녹십자가 이를 갖고 공격할 수 있고, 녹십자가 포기하고 주식을 모두 팔겠다고 나서도 일동제약 주가는 추락할 수 있으며, 추가 지분을 확보하는 제3자가 백기사가 될 수 있지만 녹십자 측 우군도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번 적대적 M&A 논란이 국내 대형제약사 사이에 좀처럼 없는 이슈인 만큼 업계의 관심은 매우 컸다.
일부 업계 관계자는 윤웅섭 일동제약 사장과 허은철 녹십자 사장의 시험대라는 의견도 제시했다. 오너 후계자인 둘은 아이러니하게도 영동고등학교 선후배 사이이며, 유학을 거쳐 경영자 수업을 받아 윤웅섭 사장은 2013년, 허은철 사장은 지난해 대표이사에 올라 각자의 능력을 검증할 단계라는 것.
이외에도 지분 문제, 사업 추진 등에 다양한 변수가 있어 양사가 이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쿠키뉴스 제휴사 / 메디칼업저버 김지섭 기자 jskim@mo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