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에 서울 서초구 내곡동 송파·강동 예비군훈련장에서 최모(23)씨가 영점사격 도중 갑자기 다른 훈련병들에게 총을 조준사격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다. 최씨 주변에 있던 예비군 2명이 부상을 당했고 3명이 사망했다.
최씨의 전투복 주머니에선 유서가 발견됐다.
최근 들어 총기사고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심리학 용어 중에 고슴도치 딜레마(porcupine’s dilema)라는 것이 있다.
이 용어는 독일 철학자인 쇼펜하우어(Schopenhauer)가 1851년에 6년의 작업 끝에 에세이와 주석들을 모아 ‘Parega und Paralipomena(부록과 추가)’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2권의 책에 나오는 우화 내용에서 비롯됐다.
고슴도치는 몸에 가시를 가지고 있다. 추울 때 서로 가까이 다가가 따뜻하게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의 상처를 입게 된다. 이런 현상을 빗대어 생겨난 말이다. 특히 가족 상담을 할 때 ‘가족구성원의 관계’에서 이 고슴도치 딜레마를 많이 적용해 설명한다.
사춘기 아이와 매일 싸운다는 어머님들은 자식의 일기장을 봐도 되냐고 늘 물어보신다. 그럴 때마다 늘 고슴도치 딜레마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무리 자식이라도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서로를 따뜻하게 보듬어 주게 되는 것이 아니라 ‘부모’라는 이름으로 또 ‘걱정’이라는 핑계로 자식에게 옳은 소리와 지시, 명령, 부정의 가시로 상처를 줄 수 있다.
가정과 마찬가지로 군대라는 곳도 개인의 상처를 가지고 있는 개개인들이 강제적으로 ‘가족’처럼 매일 지내고, 일기장보다 더 민감한 개인적인 것을 매일 밤마다 ‘고참’이나 ‘상관’에게 검열 받아야 하는 곳이다. 공군을 제대한 필자도 예비군 훈련을 끝내고 민방위로 넘어 온지 많이 지났지만 군대에서 보냈던 2년 6개월의 기억을 떠 올리면 좋았던 기억보다는 소통되지 않는 불편함의 기억이 많다. 개인적인 것들을 강제로 열어 두어야 하는 건 가끔 자존감과 관련돼 마음을 힘들게 하는 원인이 되곤 한다.
최씨의 유서에 이런 내용이 있다.
“후회감이 밀려오는 게 GOP때 다 죽여 버릴 만큼, 더 죽이고 자살할 걸 기회를 놓친 게 너무 아쉽다. 75발 수류탄 한 정, 총 그런 것들이 과거에 했었으면 후회감이 든다.”
이 말은 군대에서 상당한 상처를 받았고 또 그 상처를 회복하지 못한 상태로 이번 예비군 훈련장에서 군복을 입은 다른 예비군에게 총격을 가했다는 걸 보여준다.
하지만 최씨가 군대 안에서만 상처를 받은 것은 아니다. 그 이유는 최씨가 입대 전에 ‘과다운동성 행실장애’로 3회, 전역 후에는 적응장애로 3회 정신과 진료를 받았기 때문이다. 입대 전에 이미 과다 행동성 행실장애로 진료를 받았다는 것은 가족에게서 받은 상처가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유서에 또 이렇게 적혀있다.
“깨어있는 게 모든 것들이 부정적으로 보인다. 내 자아감, 자존감, 나의 외적인 것들, 내적인 것들 모두 싫고 낮은 느낌이 밀려오고 그렇게 생각한다.”
이렇게 스스로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자존감’의 문제를 가지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자신감과 자존감은 구분하고 있다. 지식이 쌓이면서 어느 분야에 대한 잘 알게 되는 것은 ‘자신감’이 생기는 것이다. 반대로 지식과는 상관없이 자신 스스로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알게 될 때 ‘자존감’이 생긴다. 그래서 8살 이전 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가정에서 ‘자존감’을 높이고 단단하게 하는 ‘가정교육’이 중요하다. 그 이후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여러 분야의 지식을 높이면 자존감 위에 자신감이 균형있게 성장할 수 있다.
초등학교 들어가기도 전에 부모들이 자식에게 ‘자존감’이 아닌 지식을 주려고 노력하다 보면 다른 집 아이들과 ‘비교’하게 된다. 자식과 다른 집의 자식을 비교하는 마음에는 ‘지시’, ‘명령’, ‘부정’의 말을 하게 돼있다.
“공부해라!”
“남들 공부하는 거 봐라!”
“이게 성적이냐?”
“넌 누굴 닮아서 이러냐?”
부모로부터 ‘사랑’을 충분히 받고 ‘인정’을 받으면서 성장하는 ‘자존감’이 없이는 ‘지식’도 거품일 수밖에 없다. 그 지식을 가지고 남을 해치거나 부정직하게 사용하는데 이용만 할 뿐이기 때문이다.
국방부는 분단국가로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군의 군사력과 사기를 높이는 노력으로 강한 훈련을 하는 것은 옳은 일이다. 누가 뭐래도 나라가 강해야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국방의 힘은 군인 한 명 한 명이 건강할 때 생기는 것이다. 외부만 강한 것이 아니라 내부의 구성원이 얼마나 건강한지 늘 신경 쓰고 확인해야 한다. 국가는 강한 부국이기도 하지만 국민을 보살펴 줘야 하는 모국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재연 대신대학원대학교 상담심리치료학 교수
정리=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 페이스북 fb.com/hyeonseob.kim.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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