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아모레퍼시픽, ‘국정화’ 질문이 아니라 ‘찬반 강요’가 문제였다

[친절한 쿡기자] 아모레퍼시픽, ‘국정화’ 질문이 아니라 ‘찬반 강요’가 문제였다

기사승인 2015-11-02 17:47:55

"[쿠키뉴스=이다니엘 기자]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이 근래에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죠. 기업의 사원 채용 면접시험 질문으로 적당할까요. 아모레퍼시픽 신입사원 채용현장에서 이에 대한 ‘찬반’을 요구하는 질문이 나왔다는 ‘경험담’이 인터넷에 최근 등장했습니다.

논란은 지난달 31일 지원자 A씨가 SNS에 면접 내용을 공개하면서 시작됐습니다.

A씨에 따르면 아모레레시픽 정규직전환형 인턴 채용 영업관리직무 2차 면접에서 한 면접관은 지원자들에게 “얼마 전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에서 시정연설을 하면서 강한 의자를 표하신 국정교과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습니다.

A씨는 “솔직한 의견을 말씀드려도 됩니까”라 반문한 후 “국정교과서는 사실상 바람직한 결정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다양한 출판사의 역사책이 있었지만 역사흐름의 큰 줄기에 대한 서술은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 다만 사진을 비롯한 자료나 문장의 뉘앙스에 의한 차이, 긍정·부정적 해석이 조금씩 다를 뿐입니다”라고 답했다고 전했습니다.

이어 A씨는 “역사를 바라보는 눈은 다양해야 하기 때문에 그래야만(자율성을 존중해야만) 학생들이 역사를 바라보는 자신만의 시각을 형성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들은 면접관은 다그치듯 “그래서 국정교과서 찬성이에요, 반대예요?”라 되물었고, A씨는 “국정교과서는 이미 결정이 났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어떠한 왜곡이나 미화가 없을 것이라 했습니다”라며, 2017년 첫 출간되는 국정교과서가 올바르게 만들어질지는 국민들이 비판과 견제의 시각에서 계속 지켜봐야 한다고 견해를 밝혔답니다.

이후 A씨는 아모레퍼시픽 전형에서 탈락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1차 면접부터 언변이 우수하다는 호평을 들었던 A씨는 자신의 탈락이 혹여 정치적 성향에 의한 것은 아닌가 의문이 들었다고 합니다.

A씨는 SNS 말미에 “아모레퍼시픽에 묻고 싶습니다. 제가 왜 떨어진 건가요. 탈락사유를 밝혀주세요. 영업관리 직무를 수행하는데 국정교과서에 대한 제 견해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라고 항변하며, 아모레퍼시픽 측의 해명을 요구했습니다.

여기까지가 A씨가 SNS에 올린 내용입니다. 표현 과정에서 과장되거나 부풀려질 수도 있지만, 어쨌든 면접관이 국정교과서 관련 찬반 입장을 물은 것은 ‘팩트’인 듯합니다. 아모레레시픽 측에서도 발표한 입장 전문에도 해당 질문이 나온 건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2일 아모레레시픽은 경영지원부문 배동현 부사장의 명의로 발표한 전문에서 “사회에 대한 관심과 답변 스킬, 결론 도출의 논리성 등을 평가하기 위함이었을 뿐”이라며 “지원자의 성향은 합격 여부에 절대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강조했습니다.

네티즌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습니다.

교과서 국정화가 사회적 화두가 되고 있는 만큼 충분히 질문할 수 있기 때문에 ‘정치적 성향’을 알아보기 위한 질문이라는 건 불합격자의 지나친 비약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반면에 찬성과 반대의 이분법적 선택을 강요한 것은 다분히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다며, A씨의 상황을 대변하는 입장도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질문 자체가 아닌 듯 합니다. SNS에 올린 글이 맞다면, 아모레퍼시픽은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찬반택일을 ‘강요’ 하는 듯한 인상을 줬습니다. 면접관이 이미 ‘정해진 답변’을 기대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던진 겁니다.

기자가 사회에 첫 발을 내딛을 때쯤 한 회사 면접에서 ‘오늘 아침에 읽은 신문의 1면 톱기사와 그 내용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말해보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기자가 읽은 기사는 기사 자체가 해당 언론사의 정치적 논조가 배어있는 내용이었습니다. 질문의 소재 때문에 면접관이나 기자나 의도치 않게, 자연스레 정치적 성향을 묻고 말하게 돼버린 것이죠. 하지만 당시 면접관은 견해만 들었을 뿐 “찬성이냐, 반대냐”라고 되물었던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

표적수사, 마녀사냥, 사건 부풀리기가 사회를 삭막하게 한다곤 하지만 잘못을 잘못이라고 의견조차 말하지 못한다면, 그리고 심지어 그 억압의 현장이 생업과 직결되는 일터라면, 그 사회는 사람 냄새마저 잃은 ‘아부의 장’이 될 겁니다. daniel@kukimedia.co.kr 페이스북 fb.com/hyeonseob.kim.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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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
김현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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