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더기’ 된 김영란법, 입맛 따른 법률 적용으로 논란 가중

‘누더기’ 된 김영란법, 입맛 따른 법률 적용으로 논란 가중

기사승인 2016-07-29 11:01:32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일명 김영란법이 28일 헌법재판소의 합헌 판정을 받았다. 이로써 9월28일부터 공무원, 언론인 등을 대상으로 3만 원 이상의 식사, 5만 원 이상의 선물, 10만 원 이상의 경조사비를 금지하는 ‘3·5·10 룰’이 본격 적용된다.

하지만 공직자의 친인척 업무를 금지하는 ‘이해충돌 방지’ 조항이 빠진 데 이어 국회의원 등 선출직 공무원의 ‘공익적인 목적으로 제3자의 고충 민원을 전달하는 행위’는 정당하다고 인정함에 따라 법 선상에 서있는 공직자 및 국회의원에게 면죄부가 주어진 ‘누더기법’이란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다.

‘청렴’은 사회적 덕목이지만… “우린 아니야!”

헌법재판소는 28일 ‘김영란법’에 대한 헌법소원심판 사건 선고에서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며 결정을 내렸다. 이로써 김영란법은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가 예고한대로 오는 9월28일부터 시행된다.

하지만 해당 법률에 ‘이해충돌 방지’ 조항이 빠지며 논란을 빚고 있다. 이 조항은 본래 명칭은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이었다. 공직자가 4촌 이내의 친족과 관련된 업무를 할 수 없도록 규제하는 조항이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공직자 부정부패 방지법의 핵심으로 이 조항을 포함시켜왔다. 때문에 국내 ‘부정청탁 금지’ 법률에 해당 조항이 빠진 건 상당히 의아한 대목이다. 

법안을 심의하던 상임위원회 정무위는 해당 조항으로 수개월을 갑론을박으로 일관하다가 여론의 압박이 시작되자 조항을 급히 빼고 법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당초 이행충돌 방지 조항은 김영란법의 ‘두 축’으로 여겨질 만큼 핵심이었다. 현 법률이 ‘반쪽짜리’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그런데 정무위가 또 문제를 일으켰다. 선출직 공직자들이 ‘공익적인 목적으로 제3자의 고충 민원을 전달하는 행위’를 문제 삼지 않기로 한 것이다. 원래 정부안은 예외 조항에 ‘선출직 공직자, 정당, 시민단체 등이 공익 목적으로 공직자에게 법령·조례·규칙 등의 제정·개정·폐지 등을 요구하는 행위’로만 규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무위는 지역주민의 고충이나 민원을 정부에 전달하는 것은 선출직 공직자들의 고유 업무라는 이유에서 예외의 범위를 확장시켰다.

문제의 예외조항은 해석에 따라 국회의원 등이 부정청탁을 하고도 무혐의 내지는 감형을 받는 수단이 될 공산이 크다. 지금까지 잦은 부정청탁으로 비판의 중심에 서 있던 이들에게 ‘면죄부’가 주어지며 김영란법의 취지가 더욱 무색해졌다는 평가다.

‘누더기’ 된 법률… “위반사례에 대한 반론의 여지 많아”

김영란법 시행령이 정한 공직자 등에 대한 음식물(식사 접대) 상한액 3만원은 주류나 음료를 모두 포함한 금액이다. 단체 식사를 했을 경우엔 전체 식사비를 참석 인원으로 나눠 3만원 초과 여부를 검사한다. 

지난해 7월 권익위가 실시한 대국민 설문조사와 공청회 등에서 가장 적정하다고 결정된 금액이다. 그러나 식대비에 대한 처벌규정이 나오면서 일부 언론, 교직원 사이에서는 과도한 감시가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불만을 토로한다. 

특히 음식값의 경우 유동성이 크고, 각종 할인의 여지가 있기 때문에 이를 따지는 것은 꽤 난잡한 일이 될 거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김영란법 시행령에서는 선물의 상한을 5만원으로 정했다. 이를 두고 일부 업계는 내수 축소의 우려를 드러낸 반면 학부모 단체에선 더욱 엄격한 기준을 요구하고 있다. 

선물 가격은 통상 거래 시가를 기준으로, 부가세까지 포함된 금액이다. 때문에 높은 할인을 받은 물품의 경우 처벌의 잣대가 애매해다.

외부 강연 사례금도 다소간 적정액을 정하는 데 애를 먹으면서 ‘누더기법’ 논란에 휩싸였던 김영란법의 논란이 가중되기도 했다.

법률 시행으로 엇갈린 반응… ‘특수’ 맞은 로펌, ‘울상’ 된 농·수·축산업계

이번 합헌 결정에 반색하는 이들이 있다. 그간 공직사회 부정부패 척결에 목소리를 높여온 박원순 서울시장은 28일 자신의 SNS를 통해 “김영란법이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부정부패의 고리를 끊는 획기적인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법률 시행이 사실상 확정되며 특수를 맞은 이들이 있다. 바로 로펌계다. 28일 헌법소원청구가 기각된 직후 로펌들은 기업들을 대상으로 ‘김영란법 대응 서비스’를 골자로 한 ‘TF’를 결성했다. 화우·광장·태평양 등 국내 유명 로펌들은 김영란법에 대해 “기업들에 상당한 리스크가 예상된다”면서 “(김영란법이) 양벌규정을 두고 있어 임직원들이 부정청탁 행위 등을 할 경우 기업 역시 처벌되고, 공공기관 입찰 활동에 치명적 제한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이들은 “반부패방지 정책은 이미 세계적인 추세”라면서 반기는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김영란법 시행이 농·수·축산업계 종사자들에게 직간접적인 피해를 준다는 지적도 있다. 한우, 굴비 등 농축수산업계나 화훼 업계 등 식사·선물용으로는 비교적 단가가 비싼 업계에서 항의가 빗발치고 있다.

이들은 “김영란법으로 그렇잖아도 축소되고 있는 농·수·축산업계 종사자들은 더 어려운 상황을 맞았다”며 대책을 강구하고 나섰지만, 권익위는 이에 구체적인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대한변협은 27일 성명서를 통해 “헌재의 김영란법 합헌 결정에 심각한 유감을 표한다”며 “이번 결정은 헌재가 권력자에게 언론통제수단을 허용한 것이며,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후퇴시킨 일”이라고 밝혔다. 

이다니엘 기자 dn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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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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