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김태구] 문서위조 작업대출 ‘나락의 시작’…3천 빌리고 1억 갚아야

[기자수첩/김태구] 문서위조 작업대출 ‘나락의 시작’…3천 빌리고 1억 갚아야

기사승인 2016-08-08 21:29:28

최근 부산에서 정부가 지원하는 버팀목 전세자금을 대출받아 4억5000만원을 가로챈 사기범이 검거됐다. 사기범은 신용등급이 낮아 일반 대출이 어려운 사람의 명의로 가짜 전세계약서를 꾸며 정부가 지원하는 전세자금을 가로챘다. 사기범이 임대인에게 일정한 금액을 수수료로 주고 자신의 브로커 비용을 땐 후 대출 신청인에게 대출금 일부를 주는 형태다.

이처럼 사기범들이 사람들을 꾀어 가짜 서류를 작정해 은행 등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는 대출사기, 일명 ‘작업대출’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형태도 자동차할부, 직장인대출, 사업자대출에서 전세자금대출로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대개 작업대출은 신용보증재단, SGI서울보증, 주택도시보증공사 등 서민 지원을 위한 보증서 발급형 정책성 대출을 주요한 먹잇감으로 삼고 있다. 금액이 많고 적발이 된다고 할지라고 은행에서 사기범에게 구상권을 요청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문제는 작업대출로 빌린 금액을 모두 대출 신청인이 갚아야 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돈을 갚을 능력이 안 되는 상황에 부닥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결국 신용불량자(금융채무불이행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작업대출이 경찰에 의해 적발되거나 대출인이 대출사기 피해를 경찰에 신고할 경우에도 피해자는 대출인이 아닌 은행 등 금융기관이다. 대출인은 사기범과 함께 작업대출을 진행한 공범에 불과하다. 따라서 피해자인 금융기관은 사기범과 대출인에게 구상권을 청구할 수 있다. 

하지만 금융기관은 이들에 대해 구상권을 청구하기 보다는 보증기관에 보험금을 청구해 대출금을 돌려받는다. 민사소송을 통해 대출금을 받는 것보다 간단하기 때문이다. 신용보증재단, SGI서울보증, 주택도시보증공사 등 보증기관은 일단 대출자를 대신해 대출금을 갚아주고 대출자에게 모든 금액을 청구한다. 이 과정에서 사기범은 공문서위조 등에 대한 벌금 1000만원 정도와 집행유예를 선고 받을 뿐이다. 1억원을 대출 받을 경우 최대 7000만원을 가로챈 후 1000만원의 벌금을 내고 6000만원을 남긴다면 할 만한 사업인 셈이다. 

이에 반해 대출인은 명의를 빌려준 대가로 ‘빚의 굴레’에 벗어 날 수 없게 된다. 3000만원도 갚기 힘든 사람에게 1억을 갚으라고 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사업자등록증을 위조한 후 허위 매출 전표를 작성해 사업자 대출을 받은 경우, 피해는 더욱 심각하다. 사업체를 운영에 따른 소득세, 부가가치세 등이 모두 명의를 빌려준 사람에게 부과되기 때문이다. 

원칙상으론 국세기본법 14조의 ‘실질과세의 원칙’에 따라 명의대여자에게 부과된 세금은 실질사업자인 사기범에게 부과된다. 하지만 실무적으로 세무관서에서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사기범이 대출인과 동업했다거나 이익을 나눠 가졌다고 주장할 경우 이를 반박할 방법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실질사업자가 밝혀지더라도 명의를 빌려준 책임은 피할 수 없다. 사기 대출에 대한 처벌과는 별도로 세법 위반에 따른 ‘1년이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또한 명의 대여 사실이 국세청 전산망에 기록돼 본인이 실제 사업을 하려 할 때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금융당국·경찰·국세청 관계자은 입 모아 “아무리 어렵다고 하더라도 공문서를 위조해서 대출을 받아서는 절대 안 된다”며 “검찰이나 법원에서도 명의자 우선원칙에 따라 ‘몰랐다’라는 주장만으로 대출 신청인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리지 않는다. 불법을 저지른 사람에 대해선 어떠한 구제절차가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서민들의 삶은 더욱 팍팍하다. 이를 노려 신용등급이나 개인의 경제 사정에 맞지 않게 과도한 대출을 해주겠다고 접근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들은 순수한 마음으로 서민들을 도와주기 위해 접근하기보다는 금융 지식이 부족한 사람들을 등쳐먹으려는 사기범이 대부분이다. 

이런 사기범들이 달콤한 말로 유혹할 때 금융당국이나 기관에 한번쯤 확인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선 금융당국이나 금융사들이 금융의 문턱을 낮추는 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도 소비자 스스로가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고 상대방을 위해 헌신하는 자선사업가는 세상에 많지 않다”는 점을 명심하는 자세가 선행돼야 한다.

김태구 기자 ktae9@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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