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김태구 기자] 국민·신한·KEB하나은행 등 자산규모 빅3의 주가연계파생상품 판매가 20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권 전체의 90%에 달하는 수치다. 올해 초처럼 주식시장이 요동칠 경우 이들 빅3 은행은 수조원대 투자 손실을 볼 수도 있다.
하지만 파생상품의 경우 은행은 판매사일 뿐 손실에 대한 책임이 없다. 투자 손실은 모두 투자자가 감내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파생상품에 대한 무분별한 ‘묻지마 판매와 투자’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0일 제윤경 의원(더불어민주당)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6월말 기준 은행이 판매한 ELS(주가연계파생결합증권) 판매잔액은 27조989억원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국민은행, 신한은행, KEB하나은행이 판매한 금액은 24조3491억원으로 전체 89.8%를 차치했다. 투자자도 빅3 은행이 전체 52만7497명 가운데 46만754명으로 87.3%에 달했다.
ELS는 대표적인 파생상품의 일종으로 개별 주식이나 코스피, 홍콩H지수 등 특정 주가지수에 연계돼 투자수익이 결정되는 상품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은행은 증권사에서 설계한 ELS를 선택해 펀드(ELF), 신탁(ELT) 등으로 쪼개 판매하고 있다. 판매 방법은 고액자산가를 위한 PB(프라이빗뱅킹)와 일반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은행창구, 비대면채널(인터넷, 모바일 등)이다.
최근 ELS는 전체 판매잔액 27조989억원 가운데 은행창구가 23조1142억원일 정도로 일반투자자들에게 인기다. 은행 또한 ELS를 저금리 시대에 예·적금 이자보다 높은 투자수익을 얻을 수 있는 ‘중위험, 중수익’ 상품으로 홍보하면서 투자금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빅3의 경우도 은행 창구에서 판매된 ELS규모는 국민은행 11조9873억원(19만7910명), 신한은행 4조6511억원(17만6553명), KEB하나은행 4조7435억원(5만3994명)으로 21조원이 넘는다.
하지만 막대한 자금이 몰리고 있는 ELS의 실상은 원금 비보장형이 전체 76%에 달하는 고위험 투자 상품이다. 주가의 비정상적인 변동이 발생할 경우 언제든지 대규모 원금 손실이 발생할 수 있는 구조다. 연초 홍콩H지주 폭락과 같은 주가 급변동 사태가 다실 일어날 경우 수조원대 ELS투자 손실은 불가피하다.
일반적으로 주가 변동성은 대내외 위험 요소에 따라 시장의 불확실성이 증가할수록 커진다. 경기불황이 장기화되고 있고 북핵 리스크, 미국 기준금리 인상 등 대내외 위험요소 증가로 최근 주가 변동성 확대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지난달 개최한 금융·경제상황 점검회의에서 “북한 관련 지정학적 리스크가 상존하고 있고 미국과 일본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에 따라 국내 금융시장 변동성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올해 끊임없이 글로벌 금융시장의 변동성을 우려하면서 관련 시장을 안정화를 위한 적극적인 대응을 강조하고 있다.
이처럼 ELS에 대한 투자 환경은 연초 홍콩H지수 폭락 시점과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이에 반해 투자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는 국민·신한·KEB하나 등 일부 은행으로부터 일반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방안은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법상으로 일반투자자 보호를 위해 ▲투자자의 위험성향에 맞지 않는 부적합한 투자권유 금지(적합성 원칙) ▲투자 상품의 내용과 위험성 등에 대한 설명의무 등을 규정하고 있지만 금융당국이 일일이 판매 은행을 감독할 수도 없고 처벌도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은 “ELS 등 파생결합증권은 원금손실이 발생할 수 있는 대표적인 상품이며 증권사가 자기 신용으로 발행한 무담보·무보증 증권으로 예금자보호대상도 아니다. 신탁과 펀드에 편입되는 ELS를 발행한 증권사가 신용위험에 노출되기 때문에 판매사의 신용과는 별개로 ELS발행 증권사의 신용등급을 고려해야 한다”며 주의를 당부하고 있다.
은행권 관계자도 “은행은 증권사의 ELS 상품을 판매 대행하는 곳에 불과하다”며 “투자관련 주요 사항을 소비자에게 고지했다면 손실에 책임은 은행이 아니라 소비자와 증권사에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제윤경 의원은 “은행에서는 ELS가 초고위험 상품으로 분류돼 있다고 하지만 영업상 권유할 때 정말 초고위험 상품으로 안내하고 고객에게 원금손실 가능성을 제대로 경고하는지 세세하게 감독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전문성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은행직원들에게 파생상품 판매를 맡기는 것이 과연 정상인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