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김태구 기자] 9월말 기준 가계부채가 1300조원을 넘어섰다. 지난 2013년 박근혜 정부 출범 후 약 400조원 늘어난 셈이다. 이와 관련 우려의 목소리도 국내외 곳곳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정부도 지난 8월 가계부채 관리방안을 내놓으며 총부채 증가 속도 조절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가계부채 총규모를 줄이려는 노력만 할뿐 가계 재정의 기초를 튼튼히 하기 위한 근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국가 재정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가뜩이나 가벼운 근로자의 월급봉투를 터는데 열을 올리는 모습이다.
27일 통계청에 따르면 부채를 보유한 가구의 연간 평균 가처분소득은 4511만원으로 지난 2013년 4123만원에서 388만원 증가했다. 이에 반해 가구당 평균 부채는 8748만원에서 866만원 늘어난 9614만원으로 집계됐다. 부채 증가액은 소득의 2배에 달하며 차츰 확대되는 추세다.
가계소득에서 부채원리금상환에 사용되는 금액도 2013년 1012만원에서 지난해 1359만원으로 347만원 늘었다. 이에 따라 가처분소득 대비 원리금상환액 비율은 24.5%에서 30.1%로 2년만에 5.6%p 높아졌다. 소득은 늘었지만 증가분 대부분이 이자 비용으로 사용되고 있어 실질적인 가계 지출 여력은 줄어든 셈이다. 그만큼 최근 몇 년 새 가계 재정 건전성은 악화됐다.
이런 현상은 저소득층으로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소득5분위별 가처분소득 대비 원리금상환액 비율은 소득1분위(하위 20%)가 55.8%로 가장 높았다. 이어 소득2분위 42.9%, 소득3분위 32.5%, 소득4분위 30.6%, 소득5분위 26.2% 순이다. 중저소득층이 생계비 등으로 사용할 수 있는 지출 여력은 소득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것이다.
가처분소득은 세금 등을 제외한 순수 소비지출이 가능한 금액이다. 가처분소득이 늘어야 가계 소비 여력이 높아진다. 소비여력이 높아지면 생계비 등을 위해 가계대출을 받는 규모도 줄어든다. 또한 가용 금액이 늘어난 만큼 부채 상환 여력도 생기는 셈이다.
가처분소득의 증가속도가 가계부채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지만 가계부채를 줄이려는 정부는 정작 세수를 늘이는 데 관심이 높다.
정부가 최근 국회에 제출한 내년 세입 예산안에 따르면 근로소득세는 올해 추가경정예산 기준 29조1800억원에서 30조7900억원으로 5.5% 늘어날 전망이다. 2013년 20조원을 돌파한 이후 불과 3년만에 50%이상 증가한 수치다. 2005년 10조를 넘어선 시점과 비교하면 3배 정도 증가했다. 경제성장이 정체된 상황에서 세금만 늘어나 근로자의 주머니만 줄어들고 있는 격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소득이 늘지 않는 상황에서 근로소득세만 높이니 가계가 돈을 빌려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며 “가계 부채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서민들이 실질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가처분소득을 늘리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비판했다.
또 LG경제연수원 조영무 연구위원도 “가계부채 문제는 복합적인 문제다. 어떻게 보게 보느냐에 따라서 다양한 문제가 있고 또한 그 문제들이 변하고 있다”면서 “부채 총량을 줄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체 가계부채에서 차지하는 금액비중은 적더라도 가구수나 사람수 비중으로 따지면 소득이나 소비에 미치는 영향이 큰 저소득층의 가계부채 문제가 걱정되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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