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자율징계권, 불필요한 상하관계 탈피가 먼저

[기자수첩] 자율징계권, 불필요한 상하관계 탈피가 먼저

기사승인 2017-05-12 04:01:00

[쿠키뉴스=전미옥 기자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자 의료인 단체들의 자율징계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일부 회원들의 비윤리적 행태를 단속할 보다 강력한 무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19대 대통령 선거에 앞서 대한의사협회, 대한한의사협회, 대한치과의사협회, 대한약사회, 대한간호협회 등 5개 의료인 단체는 공통적으로 자율징계권을 정치권에 요구했다. 이들은 의료인의 문제는 의료인들이 가장 잘 안다며 정부보다는 각 직역에서 자율적으로 평가제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동안 의료계는 연이어 등장한 문제아들로 골머리를 앓았다. 국정농단에 가담해 대리처방·가명진료 등 의료법 위반 또는 묵인, 카데바 실습 중 고인모욕, 진료 중 성범죄, 거짓 의료지식 배포환자 선동, 폭행, 마약류 불법 활용 등 다양하다. 이 중에는 의료계 내 요주의 인물로 꼽혔던 이도 있었지만 평범한 의료인은 물론 의료계 리더 격이었던 인물도 포함돼있다 

이들 단체들은 문제 사안에 대해 윤리위원회에 회부해 각각 자체 징계 및 보건복지부 징계를 의뢰하고 있다. 그러나 자체징계 수위에 한계가 있어 충분한 자정작용을 꾀하기는 어려웠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자율징계권이 주어졌을 때 이들 단체가 합당한 처분을 내릴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심스럽다.

최근 의사협회 중앙윤리위원회는 카데바 인증샷 논란에 있는 의사 A1년 회원자격정지 및 벌금 500만원 징계를, 수면내시경 중 환자를 성추행한 남성 의사 B에게도 회원자격정지 2년에 해당하는 징계를 내렸다고 알려진다 

그런데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된 의료인들은 논란 이후 뒤늦게 윤리위 회부를 결정했으며, 징계처분도 아직까지 나오지 않고 있다. 이들의 혐의는 이미 수사를 통해 확인이 됐을 뿐 아니라 카데바 인증샷 의사보다 먼저 윤리위에 회부된 사안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의료계 문화에서도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의료인 양성 교육은 대개 도제식으로 이뤄지며 스승과 제자, 선배와 후배 등 상하관계가 뚜렷하기로 유명하다. 이 때문인지 전공의들 사이에서는 교수 등 상급자로부터 폭행성희롱 당하고도 참고 넘어가는 사례가 공공연하게 나타난다

대한전공의협의회에 따르면, 2015 조사 결과 여성 전공의 절반 이상에서 병원 내 성폭력을 경험했다는 답변이 나왔다. 또 얼마 전 전공의 폭행사건이 불거지자 전공의협 관계자는 이런 일이 종종있다조용히 묻히는 일도 많다고 했다. 부당한 폭력에도 침묵을 요구받고 있는 것이다.    

문제 의료인이 요주의 인물로 꼽혀왔거나, 평범한 인물이라면 전문가적 시각을 적용해 합당한 처분을 내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해당 인물이 의료계 리더라면 어떨까. 절대적인 상하관계 속에서 오랜 기간 교육을 받고 배출된 의료인들이 과연 스승, 또는 선배격인 의료계 리더의 비윤리적 행위에 공정한 징계를 내릴 수 있을지 의심스러운 이유다.    

모든 대형사고는 작은 균열에서부터 시작된다. 진정한 자정작용을 위해서는 자율징계권 쟁취에 앞서 의료계에서 공공연한 작은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 국민 건강과 안전을 책임지는 전문가로서 또 우리사회의 전문가로서 의료인들이 불필요한 상하관계를 벗어나 대등·협력관계로 거듭나길 기대한다 

romeok@kukinews.com

전미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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