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김태구 기자] 우리은행 한 지점이 2010년부터 4년간 불법 차명거래를 적극 도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사실은 최근 금융감독원이 민원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확인됐다. 해당기간 우리은행 내부 감사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셈이다. 또한 해당계좌를 통해 불법적인 검은 돈의 뒷거래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감독원은 이런 탈법행위 목적의 차명거래 사실을 확인하지 못하고 실명확인 절차 위반으로 우리은행에 자체 징계만 권고했다. 이와 관련 금감원의 ‘봐주기’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6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우리은행 서울 강남 모지점(센터)은 2010년 3월부터 2013년 8월까지 A씨에게 신분증사본, 거래신청서 조작 등의 방식으로 제3자 명의의 외화통장, 정기예·적금 등 총 6개 차명계좌를 개설해줬다.
차명개좌 개설 및 거래 관련된 직원 3명은 모두 해당 지점의 부지점장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A씨와 친분을 유지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A씨는 개설된 차명계좌를 통해 8개 제약사 및 의료기기 업체로부터 해당 기간 수억원의 리베이트를 챙겨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은행권에서는 우리은행이 조직적으로 A씨의 불법 차명거래를 돕고 방조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지점에 대한 관리 책임이 있는 지점장 몰래 이런 불법적인 차명 거래가 이뤄지긴 어려웠을 것이란 지적이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차명계자 개설은 해고 사유다. 이를 알고도 아무런 대가 없이 지점장 몰래 직원이 개좌를 개설해 주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4년간 이를 적발하지 못한 은행 내부감사시스템에도 문제가 있어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우리은행 관계자는 “계좌 개설은 일반 직원에게 전권이 있다. VIP고객이 차명으로 계좌를 개설해 달라고 할 경우 거절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서 “은행 감사시스템이나 지점장이 모든 은행계좌의 거래를 일일이 확인해 불법 거래를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고 해명했다.
우리은행의 불법 차명계좌와 관련해 감독당국인 금감원은 우리은행이 금융실명제법(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 가운데 금융실명확인 절차를 준수하지 않았다고 판단, 우리은행에 자체 조사 및 징계를 권고했다.
이에 우리은행은 “금융실명확인 절차를 준수하지 않는 등 관련 업무를 소홀히 한 이유로 해당 관련자를 문책 조치할 예정”이라고 금감원에 보고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해당 절차위반 사항은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은행에 관련 자체 조치를 권고했다”면서 “향후 검사를 통해 추가 불법사항이 확인될 경우 검찰 고발 초치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반면 법조계는 해당 부지점장들의 행위가 불법 차명거래를 적극적으로 도운 알선·중개에 해당한다는 지적이다. 관련법에서는 불법 차명거래를 알선하거나 중개한 은행 등 금융사 임직원에 대해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의 벌금을 부과토록 명시돼 있다. 따라서 형사 고발 대상인 셈이다.
법조계 한 관계자(변호사)는 “명의를 빌린 A씨뿐 만 아니라 우리은행 임직원도 금융실명제법 위반으로 보인다”면서 “이들에게는 불법 차명거래 알선·중개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우리은행은 2008년 삼성비자금 사건, 2013년 CJ회장 비자금 사건 등 불법 차명거래와 관련된 계좌를 개설해 구설수에 자주 오르는 내리고 있는 곳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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