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김양균 기자] 지난 2010년 영국 이코노미스트 연구소는 40개국의 ‘죽음의 질’을 조사했다. 그 결과 한국은 32위로 나타났다. 훗날 한국인의 삶의 질 하락을 일컬어 속칭 ‘헬조선’이라 자조했듯, 그에 앞서 죽음 역시 ‘웰 다잉’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이다.
서울대의대 스마트건강경영전략연구실 윤영호 교수는 자신의 저서 ‘나는 한국에서 죽기 싫다’에서 한국인의 죽음을 다음과 같이 진단했다. “우리나라에서 호스피스나 완화의료를 제공하는 데 가장 큰 심리적·문화적 장애는 이에 접근하는 것이 생명을 포기하고 죽음으로 걸어 들어간다는 인식이 자리한다는 점이다.”
‘품위 있는 죽음’, ‘아름다운 삶의 마무리’... 윤 교수는 오랜 연구와 저서 등을 통해 한국 호스피스완화치료의 개념을 정립해왔다. 길지 않은 한국 호스피스의 역사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그가 ‘한국형 호스피스완화의료’ 모델 구축을 제시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품위 있는 죽음을 위해 인식·문화·제도의 변화를 녹여낸 한국형 호스피스완화의료란 과연 뭘까.
그동안 국내에서 호스피스완화의료는 ‘가깝고도 먼’ 개념이었다. 대중에게 뿌리 깊게 박혀있는 편견은 ‘호스피스완화치료=안락사’로의 오해다. 이에 대해 윤 교수의 연구팀 일원인 서울대 하정화 교수는 호스피스완화의료의 필요성을 다음과 같이 역설했다.
“그동안 의료의 초점이 생명연장에 맞춰져 왔다면 삶의 질도 중요해졌다. 이를 반영한 전반적인 변화의 기조 중 하나가 ‘웰 다잉’ 운동이다. 호스피스완화의료는 만성질환자로 하여금 남은 시간을 가족과 함께 보내고 소통과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게끔 돕는 케어의 과정이다.”
쿠키뉴스는 오는 29일 ‘한국 호스피스완화의료가 나아가야할 미래의 방향과 실제적 방안모색’ 심포지엄에 앞서 연구에 참여한 서울대 하정화 교수와 남서울대 한수연 교수에게 호스피스완화의료의 기본 개념과 의미, 필요성 등을 알아봤다.
◇‘죽음 문화’ 바뀌어야= 2016년 2월3일 제정된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연명의료결정법)’이 오는 8월4일 첫 시행을 앞두고 있다. 윤영호 연구팀의 이번 심포지엄 개최도 연명의료결정법 시행과 무관치 않다.
연구팀은 “한국 문화를 고려한 바람직한 죽음의 논의 및 죽음에 대한 인식 개선, 현 보건의료 체계 내에서의 호스피스 발전방안과 한국적 환경에 적합한 호스피스완화의료 운영 방안 등을 논의”하고자 심포지엄 개최 취지를 밝혔다.
연명의료결정법은 기존 호스피스완화의료의 법적 근거가 됐던 ‘암 관리법’과 여러 부분에서 궤를 달리한다. 대표적인 것이 대상의 확대다. 암 관리법이 말기환자의 범위를 ‘말기 암 환자’로 국한한 것에서 ▶후천성면역결핍증 ▶만성 폐쇄성 호흡기질환 ▶만성 간경화 ▶그 밖에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질환 등으로 만성질환자의 범위가 넓어졌다. 이에 대해 하정화 교수는 “미국의 경우 타 만성질환 환자들도 호스티스 기관에서 서비스를 받고 있다”며 “향후 더 다양한 질환으로 확대가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호스피스완화의료 현장을 연구·분석한 남서울대 한수연 교수의 이야기는 흥미롭다. 한 교수는 “적극적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서비스로의 변화가 필요하다”며 “의료서비스와 비의료적 개입의 적절한 조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 교수는 그동안 호스피스완화의료가 시설을 중심으로 이뤄져왔다고 지적했다. 인프라 개선이 사실상 침상 수를 늘리는 것에 국한돼 왔다는 설명이다. 그는 “환자가 원하는 장소에서 죽음을 맞도록 필요한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는 곧 ‘가정호스피스완화의료’로도 연결된다. 집에서 죽음을 원하는 환자 및 보호자는 많지만 여건이 허락지 않아 포기하는 경우가 대다수인 상황. “한국인의 정서상 가족의 임종을 지키지 못하면 강한 죄책감을 느낀다. 이는 곧 가족 부양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출산 휴가제만큼이나 임종 휴가제도 필요하다.”
하정화 교수가 제시한 ‘지역 사회 중심의 호스피스완화의료 시행’은 가정호스피스완화의료를 위한 방안이 될 수 있다. 하 교수는 “도시의 경우 의료진의 가정방문이 용이하지 않고, 병원 입장에서는 수가에서 손해를 보게 된다”며 영국을 예로 들었다. “영국에는 지역마다 호스피스 기관이 존재하고, 여기서 각 가정에 호스피스 의료서비스 제공 및 데이케어, 입·퇴원 등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학자들의 견해는 결국 법으로 ‘굳어지기’ 전 문화·인식 변화가 선행돼야 하고, 제도 정비도 지속돼야 한다는 것으로 정리된다. 즉, ‘웰 다잉’의 문화 안에 거부감 없이 호스피스가 들어가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말이다. 한국형 모델의 당위성과 관련해 하정화 교수는 “그동안 각 기관과 개인의 자발적 노력에 의해 많은 부분이 이뤄져왔다. 법 시행 이후 기본 서비스 체계의 효과적인 적용을 위해서 한국만의 모델 구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기타 자세한 내용은 오는 29일 오후 1시30분 서울대의대 학생회관 강의실 106호에서 진행되는 ‘한국형 호스피스완화의료 모형 개발 및 구축방안을 위한 심포지엄’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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