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복지법 시행 첫날…복지부 “1만9천명 퇴원? 의료계 불안 조성 말라”

정신건강복지법 시행 첫날…복지부 “1만9천명 퇴원? 의료계 불안 조성 말라”

의료계 “환자안전 우려” 사회단체 “정신장애인 병원 가두는 게 능사 아냐”

기사승인 2017-05-30 15:06:36


“정신건강복지법이 이전보다 한 단계 진일보한건 맞지만 빠르게 진행된 건 사실이다.”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신석철 센터장) 

[쿠키뉴스=김양균] 30일 정신보건법 전부개정안인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정신건강복지법) 시행되면서 각계의 반응은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일단 복지부는 20년만의 전부개정인만큼 시도와 연계해 정신장애인들을 ‘맞이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복지부는 내부에서 ‘수용 가능한’ 선의 퇴원 환자 수치를 도출, 이에 대한 지역 수용 시뮬레이션이 진행되고 있음을 암시했다. 의료계가 주장하는 1만9000명을 훨씬 밑돈다는 게 내부 관계자의 전언이다. 정리하면 ‘의료계는 공연히 불안을 조성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의료계는 강경하다. 2주 이내 대거 병원에서 환자들이 쏟아질 것이며 이는 1만9000명으로 추정된다는 것. 그러나 이 같은 우려가 안전문제로 비화, 의료계가 사실을 왜곡하는 것처럼 비쳐지는 것에 대해선 유감을 표했다.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는 게 아니라 환자 자체의 안전이 우려된다는 말이다.

시민단체마다 온도차는 존재하지만 대체로 찬성의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의료법’에서 ‘복지법’으로의 변화는 긍정적이지만, 예산 확보 등 준비 미흡에 대한 우려의 시각도 존재했다.  

◇ “‘쉬운 입원’이 선진적 정신건강복지 시스템에 도움 되나”

지난 1995년 제정된 정신보건법 제24조에 따른 가족에 의한 보호입원제도(강제입원)에 대해 지속적인 인권침해와 법적 정당성의 의심이 제기돼 왔다. 2016년 2월 정부는 ‘행복한 삶, 건강한 사회를 위한 정신건강 종합대책’을 발표한데 이어 5월 정신보건법에 대한 전부개정이 이뤄졌다. ‘정신건강복지법’의 탄생이다. 9월 헌법재판소는 강제입원 조항에 대해 재판관 전원일치로 위헌으로 판단했지만, 개정 법률 시행까지 잠정 적용하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현행 정신건강복지법에서 강제입원 자체가 사라진 건 아니다. 헌재가 제시한 강제입원의 요건, 즉 입원심사 및 절차와 관련된 기준에 따라 입원이 결정된다. 쟁점의 시작이다.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신석철 센터장= “개정된 정신건강보건법이 강제입원 요건을 까다롭게 설계된 건 사실이다. 강제입원의 완전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은 상황에서 한 단계 진일보했다고 본다. 그러나 정신장애인 당사자들 입장에서 과연 좋은 법인지는 별개의 문제다. 비록 복지부가 20년 만에 전부개정안을 내놨지만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 ‘정신건강복지’의 전부가 시설 확충만은 아니다. 정신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활동 예산 및 근거를 마련해놨어야 했다. 그럼에도 개정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복지부의 인식 변화는 괄목할 만하다. 정신장애인들의 사회 적응을 위한 여건 조성 필요성에 복지부와 공감대를 확인했다.”

상계백병원 이동우 교수(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신건강복지법대책 TFT 위원)= “전부개정은 다분히 헌재 결정을 의식한 것이다. 헌재는 강제입원의 필요성 자체를 부정한 건 아니었다. 기존에는 의사 1인의 판단에 맡겨놓음으로써 결정권에 대한 견제가 작동하지 않았다. 공정한 제3자의 판단이 이뤄져야 한다. 그리고 이들은 의사가 아닌 법조인이어야 한다. 선진국을 보면 순회 판사가 병원을 다니면서 입원 적정성을 판단한다. 즉, 의학·사법적 판단이 접점을 이뤄야 한다는 이야기다.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가 제대로 작동돼야함에도 개정법은 그 판단을 의사에게 떠넘겼다. 최초 법령에는 그 역할을 맡는데 국공립 의사가 거론됐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여러 난관이 존재한다.”

보건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 관계자= “기존 정신보건법은 시대 변화와 동떨어진 부분이 적지 않았다. 특히 강제입원은 환자 자신의 인신구제 청구를 사법기관에 직접 제기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보호의무자에 의한 보호 조항은 인권유린에 취약했다. 개정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해외에서도 강제입원은 엄격한 기준을 적용토록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신건강 종합대책과 정신건강복지법 등에서 제안하는 국민 정신건강증진을 위해 정신건강증진사업에 대한 투자 확대가 선결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현재 국내 정신건강증진사업은 국공립, 민간의 정신치료기관, 정신요양시설, 사회복귀시설 등의 정신보건시설과 기초 정신건강증진센터, 자살예방센터,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에서 이뤄진다. 

국내 정신보건 기관 및 시설은 2015년 기준 광역형 정신건강증진센터 15개소, 기초 정신건강증진센터 209개소,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 50개소가 설치·운영되고 있다. 정신보건시설로 활용되는 시설은 정신의료기관 1384개소, 사회복귀시설 333개소, 정신요양시설 59개소 등이다.   정신건강보건법 시행 전부터 꾸준히 제기돼온 질문은 바로 이 지점을 겨냥한다. 과연 퇴원 환자를 수용할 만한 기반이 갖춰져 있는가. 두 번째 쟁점이다. 

신석철 센터장= 선진국과 비교하면 한국의 입원일수는 지나치게 길다. 정신과 의사들의 무능을 반증하는 것일 수 있다. 정신장애인들을 병원에만 맡겨두는 게 최선인가. 사회적 장애의 개념으로 접근해야한다. 지역사회의 울타리가 근간이 돼야한다. 단지 ‘병원에 가둬두는 식’으론 해결이 어렵다.  조사해보면 정신장애를 가진 이들은 정신병원에 대해 좋은 기억을 갖고 있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사망한 사례도 보고되고 있질 않나. 치료 목적이라고는 하지만 의료수가 때문에라도 병원은 환자를 잡아두려한다. 정신장애인은 병원의 돈벌이 대상이 아니다.”   

(현재 정신과 입원환자들의 의료수가는 1일 입원 시 3~5만원 안팎이다. 입원 기간과 상관없이 비슷한 수가가 적용된다.)

이동우 교수= 병원은 당장  환자의 퇴원 여부를 고민할 것이다. 2주 이내에 1만9천명 이상이 병원을 떠날 것으로 보고 있다. 장기입원 환자가 퇴원 후 재발하거나 증상이 악화되면 정부는 어떤 대책을 내놓을 것인가. 병원이 환자를 돈으로 본다? 근거 없는 억측이다. 공공의료가 취약한 상황에서 의료계가 안전문제를 언급하며 환자의 편견을 조장한다고 주장하는데, 우리가 걱정하는 건 바로 ‘환자 안전’이다.”  

보건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 관계자= 20년이 지났지만 왜 여전히 기반이 부족한가. 과연 현재처럼 ‘쉽게 입원할 수 있는’ 상황에서 지역사회에 선진적인 정신건강복지 시스템이 구축될 수 있을까. 일본과 대만은 강제입원을 제한한 이후 인프라를 구축해 나갔다. 정신과 의사들은 환자들에 대한 편견을 불식시키고자 의식전환 활동을 해왔다고 자부하는가. 환자를 이용하는 건 과연 누구인가. 복지부 내부적으로 퇴원자 숫자의 예상치를 갖고 있지만 특정할 순 없다. 그렇기 때문에 1만9000명이라고 부풀려서 주장하는 것이다. 곧바로 다수의 환자가 퇴원하진 않을 것이다. 단기적으로 지역에 문제가 없도록 조치할 예정이다. 장기적으로는 더 많은 지역사회 기반의 인프라를 갖춘다는 계획이다. 

angel@kukinews.com

김양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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