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김양균 기자] “환자들을 돈벌이 대상으로 만들고 직원들을 수익창출 경쟁으로 내모는 제도.”
공공병원 성과연봉제에 대한 보건의료노조 유지현 위원장의 '서늘한' 평가다. 최근 문재인 정부가 성과연봉제 전면 재검토를 외치면서 도입했거나 이를 시도했던 공공기관은 급제동이 걸렸다. 이는 국립대병원도 마찬가지다.
“노사 합의가 되지 않으면 추진하지 않는다는 기조다.” “전혀 고려된 바 없었다” “고려 사항 아니다.” “별다른 움직임은 없었다.” “얘기가 있었지만 가시화되진 않았다.” “가이드라인이 없어서 쉽게 추진하지 못했다.” “도입 논의는 있었다.”
국립대병원의 입장은 대동소이했다. 이전이나 이후에도 성과연봉제 도입 의사는 ‘없다’는 게 대다수 국립대병원의 반응이었다. 새 정부 방침에 '토를 달지 않겠다'며 몸을 바짝 낮춘 형국이다. 정말 국립대병원들은 성과연봉제를 도입하지 않은 걸까?
성과연봉제는 박근혜 정부에서 사실상 완성되다시피 했다. 전 정부는 2014년 '공공기관 정상화대책'을 시작으로 2015년 임금피크제에 이어 2016년에는 성과연봉제에 저성과자 퇴출제도를 '패키지'로 도입했다. 기타공공기관에 해당하는 공공의료기관도 예외는 아니었다. 일단 극렬한 갈등 끝에 보훈병원이 지난해 성과연봉제가 도입되기에 이른다.
물론 국립대병원 중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성과연봉제를 도입한 곳은 없지만, 보건의료노조 및 의료연대 등 보건시민사회단체의 주장은 좀 다르다. 이들 병원들이 우회로를 통해 성과연봉제 도입을 지속적으로 시도해 왔단 말이다.
대표적인 게 ‘의사성과급제’다. 서울대병원의 사례를 보자. 2013년 오병희 전 병원장이 취임하면서 서울대병원은 의사성과급제를 도입·시행해왔다. 정확한 명칭은 ‘진료기여수당’이다. 병원 측은 “고생한 의사에게 보상을 해주는 차원이지 성과급은 아니”라고 밝히고 있다. 이 말은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리다. 쿠키뉴스가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대병원에서 발견되는 문제는 이미 성과연봉제를 도입한 보훈병원의 사례와 유사한 부분이 적지 않았다. 과잉진료와 무리한 검사, 환자 1인당 부담이 늘어나는 것 등의 내용 자체만 놓고 보면 진료기여수당과 성과연봉제의 문제점은 정확히 겹친다.
‘환자수와 검사 건수에 따른 보상’이 이뤄지는 탓에 의사들이 “비급여 선택 진료를 많이 하거나 검사·치료·처치가 많아졌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자료에는 1명의 의사가 2~3개 수술을 동시에 하거나 1분 미만의 짧은 진료, 임종을 앞둔 환자에게 CT 촬영을 강권하거나 다리가 없는 환자에게 스탠딩 검사를 시키는 등의 일이 빈번하게 이뤄진다고 나와 있다.
서울대병원 측은 “과잉진료는 절대 없고 검사에 대한 환자의 이해도 차이”로 바라보고 있었다. 검사를 많이 한 의사는 그만큼 시간을 쪼개 노력을 기울인 것이고 이를 보상해주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다.
자료의 “서울대병원이 ‘비상경영’이란 명분하에 의료서비스의 질을 하락시키고 있다”는 지적은 고갤 갸웃하게 만든다. 자료에는 “의료용구들을 저질재료로 바꾸면서 운영비를 아끼고, 검사 실적을 늘리고 있다”는 내용과 “고가의 검진상품을 개발하거나 가난한 환자를 받지 않는 분위기”도 감지된다고 명시돼 있다.
특히 ‘환자 1인당 의료수익을 늘리는 방식으로 의료수익을 증대시키고 있다’는 부분은 주목할 만하다. 실제 2014년 서울대병원은 환자 수가 전년 대비 1.1% 줄었지만, 환자 1인당 의료수익은 6.4% 증가했고(2013년 증가율 2.5%), 외래부문 역시 환자 수는 1.9% 증가한데 비해 1인당 의료수익 증가율은 오히려 4.8% 늘어났다(2013년 증가율 1.7%)는 것이다.
서울대병원 측은 “진료기여수당은 의사의 추가 노력에 대해 병원이 보상해주는 개념으로 성과급과는 다르다”며 “과잉진료는 전혀 없지만, 검사를 많이 할수록 보상이 늘어나는 것은 사실”이라는 다소 애매한 말을 전했다. 관련 자료를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성과연봉제는 없고 진료기여수당은 있다는 알쏭달쏭한 이야기다.
◇ 역대 정부가 사랑한 ‘성과연봉제’
“전 정부에서 (성과연봉제를) 추진하란 압박이 있었다. 국립대병원장 입장에선 정부가 ‘까라면 까야’ 한다. 문제는 정부가 가이드라인조차 제대로 만들지 않고 무조건 밀어붙이면서 불거졌다.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다가 흐지부지 됐다. 노조의 반대도 한 이유였다.”
모 국립대병원 내부자의 증언이다. 지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역대 정부는 공공부문의 성과연봉제를 지속적으로 추진했다. 특히 박근혜 정부에서 성과연봉제가 문제가 된 것은 정부 차원의 확대 및 퇴출제로 극심한 반발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랬던 것이 박 전 대통령의 탄핵과 문재인 정부로의 정권 교체가 이뤄지면서 국립대병원의 성과연봉제 도입은 흐야무야 멈춰버린 게 현 상황이다.
역대 정부가 성과형 임금체계 및 퇴출제 도입한 이유는 신공공관리론(New Public Management)에 따른 노동시장 유연화 전략의 일환이었다. 99년 전체 공무원 대상 성과급제도를 도입한 이래, 2010년 6월 정부의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권고'에 따라 실질적인 성과연봉제로의 전환이 시작된다. 이는 2006년 지급 횟수 및 기준액을 높여 차별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확대됐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는 ‘의욕적으로’ 확대 적용을 시도했다. 그 결과 2015년 기준 30개 공기업, 준정부기관 87개, 기타공공기관 131곳이 성과연봉제를 실시 중이다.
정부는 공공기관의 성과연봉제의 확대시행을 통해 조직문화의 변화와 생산성 제고를 기대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제 이러한 효과를 가져왔는지에 대해선 논쟁의 여지가 있다. 관련 논문을 보면 이러한 성과연봉제에 대해 사실상 실패했다고 보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다음은 성과연봉제의 한계와 문제점을 다룬 해외 연구 사례들이다. “성과급 제도가 구성원에게 통제감과 무력감을 느끼게 한다.”(Deci & Ryan, 2000) “조직몰입이나 충성 같은 내재적 동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Frey & Jegen, 2001) “성과급과 실제 성과 사이의 부정적인 관계가 존재한다.”(Gneezy & Rustichini, 2000) “성과급이 기업성과 향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만 도입 이후 단기간에만 이러한 효과가 나타난다.” (Bhargava, 1994)
시민사회단체는 이름만 바꾼 사실상의 성과연봉제가 이미 국립대병원 깊숙이 자릴 잡고 있다고 말한다. 새 정부 하에서 국립대병원이 성과연봉제를 도입할 일은 없겠지만, 과연 서울대병원의 의사성과급제가 비단 이 병원만의 ‘특징적인 사례’인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현재 나머지 국립대병원들도 각기 다른 저마다의 ‘유사 의사성과급제’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사성과급제가 ‘유사 성과연봉제’ 인지 아닌지는 현재로선 의료진과 환자만이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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