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살 현서가 죽은 이유 하느님은 아신다

네 살 현서가 죽은 이유 하느님은 아신다

옥시·미디어·정부 한 몸 죽음의 향기 내뿜었다

기사승인 2017-06-08 00:05:00

오른쪽 폐가 하얗게 변해있었다. 아이는 검은 설사를 쏟아내더니 경기를 일으켰다. 2011년 9월 19일 오후 5시 5분. 조현서양(당시 3세)은 허망하게 눈을 감았다. 응급실에 실려 온 지 불과 나흘 만의 일이었다. 그 모습을 본 부모는 넋이 나갔다. 창자가 조각나는 단장(斷腸)의 고통은, 그러나 아직 아물지 않고 있다. 


[쿠키뉴스=김양균 기자] 지난 5일 문재인 대통령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에 대한 대통령의 직접 사과 방안의 검토를 지시했다. 정부 책임에 대한 일언반구 없던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교할 때, 전향적인 태도 변화임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진상규명과 피해 지원 확대 등 절차적 방안 마련은 대통령 의지와 별개다. 넘어야 할 산은 아직 많다.  

조중민씨(43·가명)는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울고 웃어야 하는 상황이 기막히다. 조씨는 둘째 딸 조현서양이 왜 죽었는지 알고 싶다. 정황과 증상을 볼 때 가습기 피해가 유력하지만, 정부는 이에 대해 이렇다 할 언급을 하지 않는다. 죽음의 연관성을 증명하라는 정부의 요구는 부모의 자책감을 건드리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옥시 제품을 샀던 영수증과 집에 있는 제품 사진 따위를 제출하라는 이야기에 그는 분통을 터뜨렸다. 치졸하다. 비열하다. “보상금 몇 푼 따위는 중요치 않습니다. 제 딸이 왜 죽었는지 알고 싶습니다. 알아야겠습니다.” 

6일 속으로 삼켜야만 했던 6년 전의 이야기를 어렵사리 들을 수 있었다. 딸을 먼저 보낸 아비의 말은 차가우면서 뜨거웠다. 숨겨진 죽음은 인정된 진실보다 잔혹했다. 때마침 하늘에선 비가 내렸다.   

◇ 폐가 하얗게 변해 있었다

2011년 추석 이틀 전 현서양의 이마는 불덩이 같았다. 딸을 업고 동네 병원에 갔다. 의사는 “목이 부어서 열이 난다”고 했다. 이튿날도 병원에 갔지만 차도가 없었다. 의사 처방대로 약을 먹으면 나을 거라고 믿었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렇지만 9월 10일 오전부터 열은 더 심해졌다. 동네 병원은 ‘인후염’이라고 했다. 밤이 되자 아이는 배가 아프다고 울었다. 이번에는 소아과의원으로 향했다. ‘환자를 잘 본다’고 소문이 자자하던 곳이었다. 이전에도 간혹 아이들이 아프면 들르던 곳이었다.  

“애들이 아프면 소아과에 와야죠. 이비인후과는 청진을 안 한다니까요.” 의사가 나무라며 말했다. 기관지염과 장염, 장중첩이 의심된다는 말에 안심이었다. 수액주사에는 비타민과 항생제가 더해졌다. 딸은 기력을 찾은 듯 보였다. 밥도 곧잘 먹었다. 다 끝난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12일 밤 아이는 열에 들떴다. 39도에 육박했다. 소아과의원은 닫혀 있었다. 이마에 찬 수건을 대며 열이 내려가길 바랐다. “대보름에 빌자. 빨리 낫자.” 다음날 아침 찾아간 소아과의원은 다시 항생제 섞인 수액 주사를 놨다. “‘폐렴’ 증상이 관찰됩니다. 인근 대학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찍어보던지 수액을 더 맞히던지 선택하세요.” 의사의 말은 무책임했다. 더 이상 믿을 수 없었다. 

14일 오전 4시 응급실로 달려갔다. 가슴이 다급하게 뛰었다. 불길한 예감이 엄습했다. ‘아니야. 다 괜찮을 거야.’ 엑스레이 촬영 결과 오른쪽 폐가 물로 꽉 차 있었다. 간 수치와 백혈구 수치는 엄청나게 올라가 있었다. 응급 상황이었다. 청진을 한다며 자신감을 보였던 소아과 의사는 도대체 무얼 한 걸까? “(완치까지) 한 달쯤 걸릴 겁니다.” 폐가 무거워지다보니 장기가 눌려서 배가 아픈 것이라고 했다. 처음부터 큰 병원에 올 걸 후회가 밀려왔다. 아이의 몸에 호스가 삽관됐다. 600cc가 넘는 물과 이물질이 나왔다. 열이 내려가기 시작했다. “힘들었을 텐데 대견하다”는 의사의 말. 이 말은 믿어도 될까.  

15일 밤 9시 아내가 사색이 됐다. 현서는 발작을 시작했다. 검은 설사를 쏟았다. 혀를 깨물까봐 아이 입에 손가락을 넣고서 발만 동동 굴렀다. 발작은 한 시간 이상 계속됐다. 결국 일반병동에서 중환자실로 급히 옮겨졌다. 주치의가 폐 사진을 보여줬다.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오른쪽 폐가 하얗게 굳어 있었다. 나머지 폐도 섬유화가 진행 중이었다. 도대체 이 작은 가슴에 누가 무슨 짓을 저지른 걸까. 하늘이 노랬다. 의사는 감염을 의심했다. “항생제를 복합해서 쓰겠습니다.” 세균 배양을 했지만 깨끗했다. 아무것도 없었다. 항생제는 말을 듣지 않았다. 차도는 없었다. 점점 절망적인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다. 

‘설마’라는 불길한 예감은 발을 적시고 가슴을 지나 턱 밑까지 차올랐다. 딸은 아무 잘못도 없었다. 건강했고 착한 내 딸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알 수 없었다. 급격히 오른 뇌압과 뇌부종에 안구는 부풀어 있었다. CT 촬영은커녕 침대를 옮기는 것도 어려웠다. 똘망똘망했던 딸의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눈을 떠도 이전 같지는 않을 겁니다.” “살려만 주세요. 아무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추가 증상이 계속 늘어났다. 상태는 급격하게 악화됐다. 해가 지고 달이 뜨는 동안 한 평도 되지 않는 병상에서의 사투는 처절했다. 그리고 19일 오후 5시5분 딸의 심장은 차갑게 식었다.

◇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나라

모든 죽음에는 이유가 있다. 딸의 폐는 이상했다. 왜 하얗게 변해버렸는지 조중민씨는 그 이유가 알고 싶었다. 주치의는 “모른다”고 했다. 의사도 알지 못한다면 도대체 어디서 물어봐야하는 걸까. “사인을 밝히기 쉽지 않을 겁니다.” 실제로 의사는 현서의 폐가 왜 그 지경이 된 건지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중민아, 너 딸… 가습기 그거 아냐?” 폐섬유화와 갑작스러운 사망. TV에서 가습기 살균 피해자들의 사례가 하나, 둘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와 아내 모두 알고 있었지만 먼저 말을 꺼내는 사람은 없었다. 지나간 옛일이라 묻어두려고 했다. 고통스러운 침묵이 이어졌다. 아프고 답답해도 가장의 짐은 오롯이 그만의 몫이다. 조중민씨는 부쩍 말수가 적어지고 하늘을 보며 담배를 피우는 일이 많아졌다. 

지난해가 돼서야 용기를 냈다. 한국환경산업기술원에 가습기 살균 피해 사례 접수를 한 것이다. 현재 가습기 살균 피해자로의 인정을 기다리고 있는 처지다. 접수는 했지만 인정을 받는 게 두렵기도 하다. 그가 겁내는 이유는 따로 있다. 자책감 때문이다. “옥시의 가습기 살균제는 금방 동이 나곤 했어요. 생생해요. 가습기를 소금물로 닦아내고 그 안에 살균제를 쏟아 부었어요. 제가 직접 했어요. 제 손으로 했어요.” 

새 정부가 들어섰다. 한편으로 기대가 되지만 조직적으로 숨기기에 급급했던 지난 행태를 기억하는 그는 쉽게 믿을 수 없다고 했다. 옥시의 가습기 살균제는 어디서든 쉽게 살 수 있었다. 뉴스도 가습기 살균제 사용을 권했다. 건강 프로그램은 말할 것도 없었다. “아이에게 좋다고 하니까 썼어요.” 그러나 '아이에게 좋다'고 믿게 만든 건 옥시의 천문학적인 마케팅 비용과 전략에 지나지 않았다. 이를 마냥 퍼다 나른 미디어와 아무런 관리도 하지 않은 정부가 그는 원망스럽다. 

현재 피해 판정이 끝난 1~3차 신고자 1282명 중에 276명만 가습기 살균제 피해 관련성 1단계 또는 2단계 판정을 받았다. 1월 20일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이 제정됐지만, 구제 대상은 1·2단계 피해자들에 국한된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정부와 옥시의 논리는 철옹성 같다. 

이성과 부성은 시시각각 그를 무너뜨린다. 조씨가 기억하는 딸의 모습은 한결같다. “그 장면이 기억나요. 아이가 TV를 보고 있으면 함께 누워서 옆모습을 쳐다보는 거예요. 예쁘고 사랑스러웠어요. 그래서 눈물이 나요.” 

angel@kukinews.com

김양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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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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