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김양균 기자] ‘의료인 등의 명찰 표시내용 등에 관한 기준 고시(의료인 명찰패용법)’가 한 달간의 계도 기간을 거쳐 11일부터 본격 단속에 들어갔다. 의료계 내부의 미묘한 입장차가 감지된다.
의료인 명찰패용법에 따라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인들뿐만 아니라 의료기관 종사자들은 명찰에 면허와 자격 종류, 성명을 표시해야 한다. 병원감염 예방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무균치료실과 격리병실, 중환자실 등은 예외다. 명찰 미착용 단속 시 최대 70만원의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당초 시행 목적은 ‘환자나 보호자가 의료인이 아닌 사람을 의료인으로 오인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게 보건복지부의 설명이다. 소위 ‘유령수술’을 방지하겠다는 이야기다. 취지에 대해 기자가 만난 의료계 인사들은 대체로 공감의 뜻을 밝혔지만, 굳이 강제력을 동원할 필요까지 있겠느냐는 견해도 적지 않았다. 이러한 의견은 특히 1차 의료기관에서 두드러졌다.
쿠키뉴스는 서울 소재 종합병원 의료진을 비롯해 ▶대한의사협회 ▶대한치과의사협회 ▶대한간호협회 ▶대한간호조무사협회 등의 반응을 확인해봤다. 찬성 의사를 밝힌 대한간호협회를 제외한 나머지는 반대의 뜻을 분명히 했다. 반대의 이유는 각기 달랐다. 대한한의사협회의 입장은 확인할 수 없었다.
◇ “더 강력하게 시행되길” vs “무리한 정책”
대한의사협회는 일단 ‘환자의 알권리 보장’이란 시행 취지에 대해 공감의 뜻을 밝혔다. 그러나 협회 관계자는 “과도한 조치이며 명찰 패용의 지나친 세분화는 현장의 혼선을 야기할 수 있다”라며 “간호사-간호조무사 사이의 갈등을 조장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관계자는 “‘너무 수치스럽다’고 고충을 토로하는 간호조무사들이 적지 않다”며 “환자들이 ‘간호사인줄 알았는데 간호조무사이다’고 말해 상처를 받는다”고 말했다. ‘배려가 부족한’ 조치란 이야기다.
반면 대한간호협회는 이번 기회를 통해 간호조무사와의 구분을 확실히 매듭짓겠다는 입장이다. 협회 관계자는 “강력하게 시행되길 바란다”면서 “단속 의지가 중요하다”고 밝혔다. 관계자는 “그간 간호사는 전문직군임에도 간호조무사와 혼동돼왔던 게 사실”이라며 “결과적으로 간호조무사가 ‘간호사’의 역할을 수행하기 충분한 인력처럼 비쳐지게 됐다”고 말했다. 의료인 명찰패용법을 ‘간호사-간호조무사 구분’ 방법으로 바라본 것이다.
그러면서 관계자는 1차 의료기관들이 간호조무사에게 간호사의 업무를 맡기는 경우가 많고 이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동네병원은 (환자들이 간호사와 간호조무사를 혼동하는 것을) 이용한 셈이다. (개원한) 치과의사와 한의사를 보면 ‘간호사’가 거의 없다”며 “일례로 치과의 경우 치위생사를 채용해야함에도 돈을 아끼고자 간호조무사를 고용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대한간호조무사협회는 “명찰이 간호조무사에 대한 편견을 부채질할 수 있다”며 반대의 뜻을 분명히 했다. 협회 관계자는 “간호조무사에 대한 대중의 이해도는 낮다”며 “고졸에 간호전문학원 출신 인력이라며 거리를 두는 시각은 간호조무사에 대한 차별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대한간호조무사협회 관계자는 “간호사가 간호조무사와 혼동되면서 피해를 보고 있다”는 대한간호협회의 주장에 대해 “간호사로 병원을 채우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사이의) 차이를 두는데 급급하지 말아줄 것”을 요구했다. 그는 “전체 의료기관에서 간호조무사가 상당한 업무를 맡는 만큼 업무 역량을 높여 입지를 세우겠다”고 말했다.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겠단 말이다.
대한치과의사협회도 명찰패용에 반대했다. 관계자는 “일부 몰지각한 의료인의 유령수술 때문에 대다수 건실한 의료인이 피해를 보는 것”이라며 “결국 개원의만 더 바빠질 것”이라고 꼬집었다. 관계자는 개원한 치과의사들이 인건비 등의 이유로 치위생사보다 간호조무사를 선호한다는 주장에 대해 “현실을 모르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치위생사를) 채용하려해도 찾기 어려운 게 사실”이며 “현실을 고려해 간호조무사를 고용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 상급 병원은 ‘무감각’
“응급상황에선 명찰이나 신분증을 챙길 여력이 없다.” “명찰패용을 강제하는 해외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전형적인 전시행정이다.” “병원마다 의파라치(의사를 신고하는 파파라치)가 등장할 것 같다.”
쿠키뉴스가 확인한 서울 소재 모 종합병원 소속 의료진들의 반응이다. “의료 현장을 고려치 않은 조치”라는 부정적 인식이 많았지만, 1, 2차 병원에 비해 예민도는 낮게 관측됐다. 보건시민사회단체의 도움으로 국립대병원을 비롯해 서울에 위치한 대형 의료기관의 현장 분위기도 확인했다. 반응은 이보다 더 무감각해 보였다. 확인된 상급병원들은 명찰 패용에 대해 “문제가 없다”거나 “개의치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의료인 명찰패용법의 타깃은 1,2차 의료기관”이라는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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