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이다니엘 기자] 이제는 나이가 찼다. 한국으로 치면 20세. 여느 술자리에서 당당히 ‘민증’을 내밀 수 있는 연령이다. 스스로 판단‧결정하고, 책임을 질 시기이기도 하다.
이승우가 단판을 지으러 스페인으로 떠난다. 26일 출국장에서 밝은 표정으로 기자들을 만난 이승우는 “내 미래는 내 손으로 결정해야 한다”면서 비장한 각오를 다졌다.
그는 “가장 먼저 구단과 미팅을 한 뒤 스스로 고민을 하고 주변 사람들의 조언을 들을 것이다”면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최선의 선택을 내리겠다”고 말했다. 여기에서 최선은 ‘바르사 드림’과 ‘출전 시간’ 사이에서 적절히 조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승우의 각별한 바르사 드림
바르셀로나에 대한 이승우의 애착은 각별하다. 그는 축구 성장기를 온전히 바르셀로나에서 보냈고, 리오넬 메시와 한 무대에서 뛰는 걸 중요한 목표로 삼았다.
유소년 이적 규정 위반 혐의로 국제축구연맹(FIFIA)으로부터 몇 년간 경기 및 훈련 금지 징계가 내려진 동안에도 그는 바르셀로나에서 뚝심 있게 기다렸다.
상황이 썩 좋진 않다. 현재 바르셀로나 후베닐A에 소속돼있는 이승우는 나이제한 규정 탓에 성인이 되는 오는 8월31일까지 프로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바르셀로나 B팀으로의 승격이 부정적으로 전망되면서 이승우의 타팀 이적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설령 B팀(성인 2군)에 올라가도 문제다. 한 경기에서 두 명의 외국인만 뛸 수 있는 외국인 쿼터 제한 때문에 그야말로 가시밭길이다.
▶태극마크와 교환한 기회
기회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한 국내 매체는 “이승우가 카탈루냐주 축구협회로부터 귀화 제의를 수년째 받았으나 거절했다”고 보도했다. 거절 이유는 태극마크 때문이라고 한다.
매체에 따르면 이승우는 2013년부터 카탈루냐 축구협회와 FC바르셀로나로부터 꾸준히 유럽연합(EU) 시민권 취득을 권유받았다. 시민권 취득의 조건은 스페인 국가대표가 되기까지 전폭적인 지원이다. 실제로 시민권을 취득할 경우 외국인 쿼터에도 걸리지 않아 스페인 프로무대에서 경쟁력이 올라간다.
하지만 이승우는 개인 커리어보다 조국에 남는 걸 택했다. 매체는 한 매니지먼트 관계자의 말을 빌려 “이승우가 어린 나이에 스페인으로 건너가 바르셀로나에게 경쟁하는 동안 대한민국을 대표에 대한 꿈 하나로 버틴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배경 잘 몰랐나… 한 매체의 원색적인 희롱
이런 배경과 무관하게 이승우를 향한 원색적인 조롱도 있었다. 조선일보는 지난 22일 ‘이승우는 어쩌다 후전드가 됐나’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후전드는 후베닐+레전드를 줄인 말이다. 레전드라 하니 마치 좋은 말처럼 들리겠지만 실은 고등학생을 가리켜 ㅇㅇ초 일진 4대 천왕이라 부르는 꼴이다”이라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나이가 찼는데도 성인팀에서 불러주지 않아 유소년 팀에 머무르는 이승우의 처지를 희롱하는 것”이라면서 “군대로 치면 대위 말년에 소령 진급 탈락한 셈”이라고 평가절하했다.
기사가 꽤 화제가 됐지만 이승우는 프로답게 받아 넘겼다. 그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오늘 아버지 생신인데 생일빵인가? 조회수나 늘려줘야지. 요즘 힘드신가 보구나. 힘내요. 제가 희생할게요. 마사지 받아야지”라고 게시했다.
▶다양한 가능성 열어놓은 이승우 “아윌비백(I will be back)”
복수의 외신은 이승우가 독일 명문구단 도르트문트에 매우 근접해있다고 내다봤다. 도르트문트는 카가와 신지 등 아시아 선수들이 스타로 발돋움한 명문 구단이다. 2011-2012시즌 분데스리가에서 뮌헨을 제치고 우승을 차지하며 급부상한 이 팀은 2014-2015시즌엔 7위까지 추락하며 위기설이 제기됐지만 2016-2017시즌 3위, 2015-2016시즌 2위 등으로 기세를 회복하는 중이다.
이 외에도 샬케04(독일), 보르도, 몽펠리에(이상 프랑스), FC포르투, 벤피카(이상 포르투갈) 등 유럽구단들이 이승우 영입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보도가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그의 눈은 여전히 바르셀로나로 향해있다. 물론 목표일 뿐, 고집은 아니다. 이승우는 “한국 나이로 치면 20살이다. 경기를 많이 뛰고, 경험도 쌓아야 하는 시기”라면서 “바르셀로나에 남지 못한다고 해도 가장 잘 맞는 옵션과 비전을 제시하는 팀에 갈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바르셀로나에 대한 애착은 그대로다. 그는 “(바르사에서) 데뷔를 못 한다고 해도 다른 팀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면 나중에 돌아올 수도 있다. 그것이 축구”라면서 “다른 팀으로 이적했다고 실패가 아니다. 지금은 시작할 때”라고 전했다.
바르셀로나는 2010년대만 놓고 보면 가장 강한 축구팀이다. 2009년 전무후무한 6관왕의 대기록을 세웠고, 2015년에는 5관왕을 달성하며 건재한 능력을 증명했다. 2010년 이후 우승 숫자만 봐도 바르사의 기록은 압도적이다. 프리메라리가 4회를 비롯해 코파 델 레이(컵대회) 3회,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4회, UEFA 챔피언스리그 2회, UEFA 슈퍼컵 2회, FIFA 클럽월드컵 2회 등으로 총 17회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렸다.
레알 마드리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세비야 등 리그 내 강력한 라이벌을 제치고 우승을 차지한 터라 그 무게감은 더욱 육중하다. 유럽대항전에서는 바이에른 뮌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유벤투스, 파리 생제르맹 등 숱한 난적들을 재꼈다.
이들의 티키타카(스페인어: tiqui-taca)는 축구에서 가장 완성도 높은 전술로 평가된다. 티키타카에 대항해 안티 풋볼(Anti Football), 킬 패스 앤드 러시(Kill pass and rush) 등이 나왔지만, 결정적으로 티키타카의 아성을 무너뜨리진 못했다.
정확한 패스웍과 드리블을 기반으로 한 점유율 축구는 ‘승리’라는 결과물을 창출하는 데 가장 합리적인 플레이 스타일로 인정받고 있다. 이미 레알 마드리드나 바이에른 뮌헨 등 유럽 정상급 팀들이 준용하고 있는 이 전술은 일시적 부진을 이야기할 수 있을지언정 완성도를 깎아내릴 만한 건더기가 없다.
축구 변방으로 여겨지는 한 아시아 나라에서 온 20세 청년이 그런 팀에 도전하고 있다. 참으로 다부지고, 박수받아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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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