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지난 1938년 제국주의 실현을 꿈꾸던 일본은 ‘국가총동원법’에 따른 국민 총동원령을 제정했다. 식민지였던 조선에도 여파가 미쳤다. 일본은 모집·관 알선·징용 등으로 형태를 바꿔가며 조선인을 강제 동원했다. 국내를 비롯해 일본, 사할린, 남양군도로 800만명이 끌려갔다. 이들은 원치 않는 총을 들어야 했고, 노역에 시달려야 했다. 이중 최소 60만명이상은 죽거나 행방불명됐다.
국가는 이들을 어떻게 기록하고 있을까. 79년의 세월이 흘렀다. 역사는 흐려졌다. 교과서는 단 한 문단으로 피해자의 삶을 축약했다. 이들을 기리기 위한 동상 건립은 정부의 불허로 난항을 겪고 있다. 진상규명과 피해보상 역시 지지부진하다. 백발이 성성한 피해자들은 지금도 지팡이를 짚고 국회와 법원을 오간다.
쿠키뉴스 기획취재팀은 지난 4월부터 강제 동원의 역사와 의미를 재조명하고자 취재를 시작했다. 전국을 돌며 피해자와 유가족을 찾았다. 일본을 방문, 비극의 흔적을 되짚어봤다. 쿠키뉴스 기획취재팀은 94세의 피해자를 대신해 “우리를 잊지 말아달라”던 그의 간절한 당부를 독자들께 전한다.
[쿠키뉴스=심유철, 정진용, 박효상, 박태현 기자] #“강제 동원 피해자들이 죽어 없어질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것인가”
서울 용산구 용산역 광장에 ‘강제동원 노동자상’(노동자상)이 지난 12일 세워졌다. 노동자상은 ‘평화의 소녀상’을 세운 김서경(52·여), 김운성(53) 부부작가가 제작했다. 오른손에는 곡괭이를 쥐고, 왼손으로는 햇빛을 가리는 모습을 본땄다. 강제 동원 피해자가 어두운 갱도에서 나와 태양을 마주하는 순간이다. 제막식에 참석한 강제동원 피해자 김한수(99) 할아버지는 “왜 대한민국은 일본에 책임을 묻지도, 대가를 청구하지도 않느냐”며 조국을 원망했다. 김 할아버지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 기다리다 지쳐 설립 강행…‘불법 시설물’ 신세 노동자상
그러나 이날 세워진 노동자상은 ‘반쪽짜리’에 불과하다. 국토교통부(국토부)의 허가 없이 세워졌기 때문이다. 불법 시설물이라는 의미다. 용산역 앞 광장은 국유지다. 국유재산법 제74조(불법 시설물의 철거)에 따르면 정당한 사유 없이 국유 재산을 점유한 불법 시설물은 국토부에 의해 철거될 수 있다. 강제징용노동자상건립추진위원회(추진위)는 이런 위험을 감수하고 노동자상을 용산역에 세웠다.
추진위가 노동자상 설립을 강행한 이유는 무엇일까. 용산역은 역사적 의미가 있는 장소다. 일제강점기, 전국 각지에서 강제 동원된 조선인이 이곳에 집결했다. ‘인간 창고’라고 불리기도 했다. 당시 국내에는 노동자상이 전무한 상황이었다. 가장 먼저 노동자상이 세워진 곳은 일본 내 유일 강제동원역사관인 ‘단바망간기념관’ 앞이다. 민주노동조합총연맹과 한국노동조합총연맹(양대 노총)의 주도하에 지난해 8월24일 제막식이 열렸다. 용산역 광장에 노동자상을 세우기 위해 추진위는 6개월 이상 국토부의 허가를 기다렸다. 그러나 답은 없었다.
계획이 무산되자 양대 노총과 시민단체는 지난 4월6일부터 매일 용산역 광장에서 1인 릴레이 시위를 벌였다. 지난 6월15일, 71번째 1인 시위 주자로 한만선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상하운수 노동조합 위원장이 나섰다. 그는 “지난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체결로 받은 5억 달러(5000억원)는 강제 동원 피해자들의 목숨값”이라며 “그러나 국가는 이들을 기억하기 위한 동상 건립조차 허가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의 이마에는 굵은 땀방울이 맺혀있었다.
▲ 국토부 “‘아무거나’ 세울 수 없다”…자진철거 요청까지
국토부는 역 광장을 포함한 철도부지는 국유지로, 영구시설물을 축조할 수 없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정권이 교체된 후에도 국토부의 입장은 완고하다. 국토부 철도 정책과 관계자는 “노동자상을 세우려는 강제 동원 피해자 측의 입장은 이해한다”면서도 “실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으로서 아무거나 승인할 수 없다. 노동자상을 꼭 용산역 광장에 세워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국토부는 노동자상을 ‘아무거나’로 치부했다.
그러나 이는 핑계에 불과하다. 국유지에 영구시설물 축조가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국유재산법 제18조(영구시설물의 축조 금지)에 따르면 기부를 조건으로 할 경우 국유재산에 영구시설물을 축조할 수 있다. 양대 노총은 이에 따라 정부에 노동자상을 기부하겠다는 입장을 일찍이 밝혔다.
국토부는 기부 제안마저 거절했다. 관계자는 “행정재산 목적에 맞지 않으면 수용할 수 없다”면서 “정 필요하면 노총 건물 앞에 세우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이뿐만 아니다. 국토부는 지난 2월 외교부 입장을 조작해 논란이 됐다. 국토부는 ‘한·일 관계를 고려해 외교부도 (노동자상 건립을) 반대하고 있다’고 추진위에 전했었다. 그러나 외교부가 ‘국토부와 협의한 적 없다’고 부인하면서 거짓말은 들통났다.
결국, 국토부는 추진위에 용산역 앞 노동자상 자진철거를 요청했다. 쿠키뉴스 단독 보도에 따르면 행정집행 권한을 위임받은 한국철도시설공단은 지난 17일 추진위에 자진 철거 요청문을 보냈다. 기한은 오는 31일까지다. 한국철도시설공단 관계자는 “기한 내 자진철거 하지 않을 경우, 강제철거도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 시민단체 “노동자상, 국유지 아니면 어디에 세우나”
강제동원 문제는 ‘미해결’ 상태다. 피해자들은 여전히 법정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현재까지 총 14건의 강제동원 관련 소송이 진행 중이다. 이 가운데 3건은 석연치 않은 이유로 대법원에서 3년 넘게 계류 중이다. 또 강제동원 피해 진상 규명, 희생자 위로금 지급 등을 담당하던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는 지난 2015년 12월31일 자로 폐지됐다.
강제 동원 희생자를 기리는 일에 소극적인 정부를 향해 유가족은 서운함을 토로했다. 지난 6월24일 용산역에서 열린 ‘노동자상 건립 촉구대회’에 참석한 이희자(75·여)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대표는 “아버지의 흔적을 찾다 보니 용산역을 거쳐 중국에서 노역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대다수 강제 동원 피해자들은 용산역에서 기차를 타고 러시아 시베리아, 일본 시모노세키 등지로 흩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광복 후 70여 년이 지난 지금, 동상 하나 세우기가 이렇게 힘들다는 것에 화가 난다”면서 “노동자상이 들어서면 용산역은 강제 동원된 조선인을 기억하는 교육의 장이 될 것”이라고 목소리 높였다.
안혜영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조직국장은 “(노동자상 건립은) 우리나라 역사를 바로 세우고 기억하자는 것”이라며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국가가 노동자상을 외면하고 있다. 국유지에 세울 수 없다면 노동자상이 발붙일 곳이 어디인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1인 릴레이 시위 외에도 다양한 방법으로 노동자상 건립 투쟁을 계속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부가 시민단체를 마땅히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상의 인천대 기초교육원 교수는 “정부가 주도적으로 노동자상을 건립할 경우, 일본과 외교 갈등이 불가피하다”면서도 “시민단체가 주체가 되면 이를 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중앙정부가 아닌 지방자치단체에서 시민단체를 지원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며 “국가가 노동자상 건립을 막을 이유는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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