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개발(R&D) 예산권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 이관되면서 문재인 정부의 ‘사람중심 과학기술’ 정책이 첫발을 내딛게 됐다. 정부는 예비타당성조사(예타) 기간을 단축하는 등 R&D 혁신을 가속화할 전망이다.
13일 과학기술계에 따르면 R&D 사업의 예타 권한이 기획재정부에서 과기정통부로 위임된다. 예타는 정부가 총사업비 500억원 이상의 대규모 사업을 추진할 때 경제성, 효용성 등을 검토하는 과정이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과학기술 정책을 발표하면서 ‘사람중심 과학기술’을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당시 문 대통령은 “과학자들의 도전과 모험을 응원한다. 그들의 외로운 싸움에 동행할 것”이라며 “사람 중심의 과학기술 정책을 통해 새로운 대한민국의 과학 혁신을 시작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에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지난 6월 과기정통부 산하에 차관급 과학기술혁신본부를 설치, R&D 연구 개발 업무 총괄을 맡기겠다고 밝혔다.
이에 맞서 기재부는 R&D 분야의 예타권만 과기정통부에 넘기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반대해왔다. 이후 부처 간 협의가 되지 않아 법 개정은 약 5개월간 난항을 겪었다. 결국 국무조정실 등이 중재에 나서 합의를 도출했다.
합의에 따라 내년도 R&D사업 예산 19조6000억원에 대한 조정은 과기정통부가 맡는다.
기재부의 고유 권한이었던 예타 및 지출 한도 설정도 과기정통부가 담당한다. R&D 사업의 경우 도전적인 성격이 강해 경제성만 가지고 평가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기재부에서 평균 20개월이 걸리던 예타 기간 역시 6개월로 단축된다. 예타 기간이 길어지면 경쟁국들에 밀려 신기술은 ‘낡고 오래된 기술’로 변질될 가능성이 크다. 사업에 따라 예타 기간을 단축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발 맞추겠다는 문재인 정부 의지가 반영됐다.
업계 관계자는 “과기정통부의 R&D 예산안 확보를 통해 기초기술에 대한 지원이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며 “산업 전반에 걸쳐 기술 연구와 관련된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과기정통부는 기재부의 극심한 반발을 의식한 듯 업무를 ‘위탁’받아 처리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과기정통부가 (R&D 예산 관련) 중심이 되어서 업무들을 진행해 나가겠다”면서도 “하나의 부처가 모든 일을 해결 할 수는 없으며, 협의할 사항들이 분명 생기기 마련이다. 그럴 경우 협의처를 구성해 기재부와 의견을 교환하며 업무를 처리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R&D예산권 이관을 위해서는 과학기술기본법과 국가재정법이 개정되어야 한다. 해당 법안들은 연말에 일부 수정을 거쳐 국회를 통과할 전망이다.
이승희 기자 aga4458@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