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전 창원지법 제315호 법정 앞. 200명이 넘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보기 드문 장면이 연출됐다.
이들은 모두 농아인(청각장애인)들로, 30분 뒤 이 법정에서 열리는 사건의 판결 선고를 방청하기 위해 찾아왔다.
하지만 재판에 참관할 수 있는 방청석 자리는 100여 개로,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법정 밖에서 대기하며 선고 결과를 손꼽아 기다렸다.
이들이 이처럼 관심을 보인 이 사건은 일명 ‘행복팀’ 사기 사건이다.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농아인들로, ‘행복팀’이라는 이름으로 조직을 결성해 농아인 수백명에게 고수익을 미끼로 거액을 받아 가로챈 사건이다.
피해자 가운데 일부는 불어나는 대출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안타까운 비극이 잇따르면서 농아인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지난해 1월 경찰이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한 지 1년 만에 가해자 모두가 법의 심판대에 오른 것이다.
이날 재판에만 행복팀 총책 등 30명이 넘는 피고인들이 선고를 앞두고 있었다.
재판장이 참석하자 법정은 이내 숙연해졌고, 판결문을 낭독하면서 정적이 깨졌다.
그러나 재판장은 일부 피고인들의 범죄사실에 대해 무죄 취지를 언급했다.
1년 넘도록 가해자들의 엄벌을 촉구한 피해자들의 입장에서는 기대와 다른 내용에 적잖이 당황했다.
뒤늦게 기소된 행복팀 총책 김모(45)씨는 수개월 동안 진행된 재판 과정 내내 “행복팀과 전혀 관련이 없고, 범행에 가담한 적도 없다”며 혐의를 극구 부인해왔다.
앞선 열린 결심 공판의 최후변론에서도 김씨와 변호인은 4시간 동안 줄곧 자신의 무죄를 항변했다.
이 때문에 이번 선고를 앞두고 설마하며 내심 불안에 떨었던 피해자들은 판결문 낭독 동안 계속 마음을 졸였다.
하지만 재판부가 총책 김씨의 범죄사실을 하나씩 설명하면서 분위기는 바뀌었다.
오랜 설명 끝에 재판부는 “증거와 진술 등을 종합하면 피고인 김씨의 범행이 모두 유죄로 인정된다”고 했다.
이 내용을 통역하던 수화통역사의 손짓만 유심히 지켜보던 피해자들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재판부는 “행복팀은 단순히 돈만 빼앗은 게 아니라 자신들의 탐욕을 위해 피해자들에게 허황된 환상을 심어주고, 그들의 믿음을 저버리며 행복을 빼앗아 갔다”고 엄히 꾸짖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행복팀은 사기행각을 위해 결성된 범죄단체’로 판단했다.
총책 김씨가 징역 20년의 중형을 선고받자 몇몇 피해자들은 눈물을 훔쳤다.
이날 김씨와 함께 기소됐던 행복팀 총괄대표 한모(42‧여)씨, 중간책 이모(46‧여)씨는 징역 14년, 지역대표 이모(37)씨는 징역 12년, 또 다른 지역대표 전모(42), 최모(43), 김모(40)씨는 징역 10년이 각각 선고됐다.
판결 선고가 끝나자 현장에 있던 농아인 200여 명은 법원 판결을 환영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박영진 행복팀 투자사기 피해 공동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은 “행복팀으로 인해 피해자와 그 가정은 풍비박산이 나는 등 그 피해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라며 “법원이 엄벌을 촉구하는 피해자들의 소리 없는 절규를 외면하지 않아 다행”이라고 말했다.
총책 김씨가 1심 법원에서 징역 20년의 중형이 선고됐음에도, 이는 형법상 감경 대상이 되는 농아인이라는 점이 반영된 결과다.
이 때문에 이번 판결을 계기로 이 형법 조항의 존폐 여부를 두고 논란이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창원=강승우 기자 kkang@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