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작은 사탕에 담긴 ‘금융의 기본가치’

[기자수첩] 작은 사탕에 담긴 ‘금융의 기본가치’

기사승인 2018-01-25 14:31:08

월말이라 세금이나 공과금 등을 내러 오는 사람들로 은행 창구가 북적이고 있다. 대기표를 받고 기다리는 시간도 길어졌다. 이럴 때는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등 온라인으로 금융 서비스를 이용하면 은행을 찾지 않고도 간편하게 처리할 수 있다. 

최근 연말정산 시즌이 시작되면서 관련 서류를 떼기 위해 은행을 꼭 찾아야 하는 경우가 생겨 골치가 아프다. 기자가 국민은행을 찾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지점에는 대기표를 뽑고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이들은 대기하는 동안 은행에서 비치한 상품 브로셔를 보거나 스마폰을 만지작거리기를 반복했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게만 느껴졌다.

창구 직원은 고객과 할 말이 많은지 대기 번호가 줄어들지 않는다. 짜증은 커져만 갔다. 업무를 처리하고 나오면서 다시 오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웬만하면 온라인을 활용하는 것이 상책인 듯 했다.

국민은행을 나와 또 다른 연말정산 첨부 서류를 발급받기 위해 인근 농협을 찾았을 때도 비슷한 상황에 직면했다. 주변에 농협이 한군데 밖에 없어 기다리는 사람들은 더 많았다. 국민은행을 찾았을 때와 같은 짜증이 밀려들었다. 

이런 생각은 지점 직원이 건넨 작은 ‘사탕 하나’에 사르르 녹았다. 달콤한 사탕이 입안에서 녹는 동안 차례가 다가 왔다. 여기에 서류 발급 수수료도 면제해 준다는 소리에 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실제로는 농협에서 기다린 시간이 더 길었지만 좋은 금융서비스를 받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예금이나 저축 등에 가입할 일이 있으면 농협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자에게 있어 두 은행의 이미지는 작은 ‘사탕 하나’로 크게 갈린 셈이다. 한 곳은 소비자에게 수동적으로 대처한 반면 다른 한 곳은 소비자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서며 세심한 부분까지 챙겼다.

최근 영업력 강화를 외치고 있는 은행들의 경영 전략에는 농협처럼 소비자의 마음을 얻기 위한 진심이 보이질 않는다. 조직 개편 등을 통한 외양 확대에만 적극적 모습이다. 오히려 국민은행을 비롯한 금융사 대부분은 비용절감, 온라인 확대 등을 이유로 점포를 폐쇄하며 소비자 편의 제고를 위한 노력에는 무관심해 보인다.

금융권 관계자는 “몇 년 전만 해도 충북 영동군에는 국민은행, 신한은행, 농협이 있었다. 이제는 농협밖에 안 남았다. 은행들이 수익이 나지 않는다고 지점을 폐쇄했기 때문”이라며 “1인당 생산성 등 수익률만을 높은 은행이 좋은 은행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지난해 9월말 기준 은행 점포수(6853곳)는 1년 전에 비해 159곳 줄었다. 같은 기간 국민은행도 70여곳을 줄여 1057곳만 유지하고 있다. 점포 폐쇄 이유는 대부분 수익성 악화다. 어디에도 소비자 편의를 위하는 경영 방침은 찾아볼 수 없다.

이런 수익성 우선 방침 덕분에 국내 은행은 지난해 11조2000억원(금융감독원 추산)에 달하는 순이익을 올렸다. 저금리에 따라 수익성 악화를 부르짖던 은행들이 1년전(2조5000억원)에 비해 4배 이상 자신들의 배를 불린 셈이다. 이제는 영업력 강화라는 명목으로 직원들에게 금융 상품팔이를 강요하면서 거리로 내몰고 있다. 말을 안 듣는 직원은 평가를 통해 정리해고 하면 그만이다.

이를 두고 “정부의 경쟁 규제를 통해서 우리끼리 혜택을 보고 있다. 사회적 책임 다하고 소비자를 우선시 하는 것을 금융의 기본가치로 해야 한다”는 반성의 목소리가 은행권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다. 

왜냐하면 금융산업, 특히 은행업은 규제산업이기 때문이다. 은행은 정부 규제 아래 돈을 모을 수 있는 특권(수신기능)을 누리면서 제한적인 경쟁을 하고 있다. 또한 IMF, 리먼사태 등 어려울 때마다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받아 경영상 어려움을 해결했다.

이런 은행업의 특성을 경영 기본원칙으로 간직하고 있다면, 이제는 은행들도 바뀌어야 한다. 소비자를 뒷전에 둔 채 영업력 강화만을 부르짖는 행태를 언제까지 할 것인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경영 마인드를 심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소비자에게 외면당하고 말 것이다.  말로만 소비자 보호, 고객 가치를 부르짖지 말고 농협 한 지점이 건넨 ‘작은 사탕’, 그 의미를 깊이 되새겨 보길 은행권에 기대해 본다.

김태구 기자 ktae9@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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