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가상현실(Virtual Relity, 이하 VR)을 알코올중독, 불안장애 등 정신질환 치료에 활용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조현병’이라 불리는 정신분열증 치료에도 도움이 된다는 의견이 나왔다.
영국 킹스컬리지런던 정신과 교수팀과 로햄튼대 신경과 교수팀이 지난 12일(현지시간) 미국 의학저널 ‘중개정신의학(Translational Psychiatry)’에 게재한 연구에 따르면 비디오 게임이 조현병의 대표적인 증상인 ‘환청’을 치료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현병은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의 불균형 등의 원인으로 인해 보고, 듣고, 생각하는 뇌 기능에 이상이 생겨 사고, 감정, 지각, 행동 등에 장애가 생기는 질환이다. 이로 인해 집중력 저하, 무기력함, 망각, 환각 등의 증세가 나타난다. 그중에서도 환청은 소리를 인지하고 해석하는 측두엽의 청각 피질이 예민해져서 나타난다. 연구팀은 환청을 겪고 있는 12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비디오 게임을 이용해 반복적으로 청각 피질에 자극을 주었고, 그 결과 환청 증상이 줄거나 사라진 것을 확인했다. 자기공명영상(MRI)으로 뇌를 촬영한 결과에서도 환청으로 인해 환자가 받는 스트레스가 줄어든 것을 입증했다.
연구팀은 “약물 치료에 반응하지 않는 조현병 환자의 치료를 돕는데 이 기법을 사용할 수 있지만, 이번 연구가 소규모로 진행됐기 때문에 추가적 연구가 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비디오 게임이 ‘환청’을 줄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의태 교수는 “불안장애 등 정실질환 치료에 VR이 활용되는 원리와 같다. 환자가 경험하는 다양한 현실을 가정해 안전한 상황에서 반복연습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연구를 주도한 킹스칼리지런던 나타샤 오르로프(Natasza Orlov) 박사는 “환자들은 비디오 게임 훈련을 통해 환청이 언제 들릴지 알게 됐고, 목소리를 줄이거나 환청을 멈출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정신질환은 신경전달물질을 조절하는 등의 약물치료가 주치료로 시행되며, VR은 환자들이 일상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보조적 치료로 사용된다.
그는 “환청은 건강한 사람도 살면서 1~2번 경험하는 증상이다. 그러나 건강한 사람은 잘못 들었다고 인지할 수 있지만 환자는 그렇게 하기 어렵다”며 “가상현실은 환청이 들리는 상황을 환자에게 반복적으로 제공하고, 환자에게 그 상황을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공부할 때와 마찬가지다. 여러 차례 반복하고 다양한 상황을 경험하면 문제풀이에 익숙해지는 것처럼 VR 치료는 가상현실에서 다양한 환경과 상황을 간접적으로 제공해 그 상황이 위협적이거나 잘못 해석되지 않게 도와준다”며 “그러면 일상생활에서도 어느 정도 스스로 상황을 조절하고 대처할 수 있는 전략을 습득할 수 있기 때문에 약물 사용을 줄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VR가 주치료가 될 수는 없지만 재미있고 효율적으로 치료를 돕는 도구가 될 수 있다”며 “질환별 특성에 맞는 콘텐츠가 다양하게 개발된다면 VR을 적용한 치료 영역이 넓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수인 기자 suin92710@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