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부실한 환자안전①] “중환자실이 중환(重患)”…의료현장의 고백

[여전히 부실한 환자안전①] “중환자실이 중환(重患)”…의료현장의 고백

[인터뷰] 임채만 대한중환자의학회 회장

기사승인 2018-02-16 04:00:00

국민들은 몇 달 새 ‘환자안전’이 모래성 위에 쌓여있음을 목격했다. 이국종 교수의 귀순병사 치료와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으로 인해 중증외상센터, 신생아중환자실의 문제가 드러났고, 뒤이어 제천 세종병원의 화재 사고에서도 중환자실 환자 결박 문제가 수면 위에 올랐다. 연이어 나타난 환자안전사고의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 임채만 대한중환자의학회장을 만나 의료계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우리나라는 중환자실이 중환(重患)입니다. 당장 소생술이 필요한 혼수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국내 중환자의료는 지금 어디쯤 와 있을까. 임채만 대한중환자의학회 회장(서울아산병원 호흡기내과)은 “한계에 다다랐다”며 이같이 답했다. 의료현장의 묘안을 듣고자 만난 자리에서는 연신 한숨이 새어나왔다. 잇따른 환자안전사고가 과연 어제 오늘만의 일인가. 그저 간신히 버티고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중환자실의 업무 강도는 의료기관 내에서도 높은 수준에 속한다. 중한 환자들이 밀려오는데 비해 사람은 부족하기 때문이다. 임 회장은 “우리나라 중환자실에서는 미국 등 선진국의 3분의 1의 인력이 같은 수준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며 “그마저도 업무 강도는 계속 늘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치료 기술과 기기의 발전, 그리고 의료 질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면서 업무량이 과거에 비해 확연히 늘었다는 것이다. 각종 인증과 규제도 부담을 가중시켰다.   

그동안 정부와 의료계는 ‘의료 질 향상’을 위해 꾸준히 노력했다. 그 일환으로 각종 인증과 규제, 그리고 관련 지침이 매년 업데이트돼왔다. 그런데 왜 환자안전을 담보하지 못할까. 임 회장은 다시 ‘인력’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작년 발표된 중환자실 적정성 평가에 따르면 중환자실 전담전문의 한 명이 맡는 병상 수는 평균 45병상, 간호사 한 명이 맡는 중환자는 평균 6명이었다. 전담전문의 의무 조항이 없는 종합병원 급으로 가면 전체의 80%에 전담전문의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상급종합병원의 일반중환자실 기준 전담전문의 1명당 중환자 10~15명, 간호사 1명당 중환자 1~2명을 적정인력 수준으로 제시했다.

중환자실 의료진의 숙련도도 부족한 실정이다. 임 회장은 “중환자실은 여러 가지 고난도 치료가 행해지는 곳인데 불행하게도 중환자실은 의사들에게 인기가 없고, 간호사들 이직률이 높다”며 “실제로 숙련 간호사가 50%가 안 된다. 경력 3년 미만의 미숙한 간호사들과 전공의들이 중환자실을 지키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모든 환자안전사고가 인력과 시스템 문제로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의료진의 실수나 부주의로 인한 경우도 많다. 이에 대해 임 회장은 “개별사건에 대한 평가와 전체 중환자실 문제를 달리 봐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대체로 근면 성실하다. 의료도 마찬가지다. 어느 분야든 다들 초인적으로 일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며 “하지만 그러지 말아야 하는 곳이 의료다. 중환자실의료비가 미국의 10분의 1이지만 의료사고는 비용에 비해 훨씬 적다. 적은 비용과 적은 인력을 가지고 이만한 성적을 내고 있음을 감안해 달라”고 호소했다.     

환자안전문제가 잇따르자 정부는 외상센터와 신생아중환자실에 인력을 확충하면 의료수가를 보전해주겠다고 밝힌 바 있다. 관련 지원도 높이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의료계의 반응은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임 회장은 “수가를 올려주는 것은 일시적인 방편이다. 법률적으로 적정인력을 정하지 않으면 의료 질을 담보할 수 없다”고 평가했다. 과거 흉부외과 지원자가 부족해 전공의들에 돈을 쏟아 부었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는 것이다. 신생아중환자실 사건에서도 정부가 그동안 신생아실 지원과 입원료를 많이 올렸지만 정작 병원이 의료 인력을 충원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그는 “법으로 인력과 시설이 강제되어야만 근본적인 개선이 이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대책 마련에 있어 단기 효과에 집착하면 안 된다”며 “감염문제 생겼다고 감염만, 신생아중환자실, 외상센터 한 부분만 봐서는 안 된다.환자가 병동에 있다가 응급실로 내려올 수 있고, 다른 지역 외상센터로 이송되기도 한다. 의료가 연결돼있는 연결점들도 정책이나 법률에서 잘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중환자실은 당장 죽을 것 같은 환자가 살아나는 드라마틱한 공간이다. 임 회장은 환자의 생사가 직접적으로 나뉘는 이 곳의 매력에 끌려 중환자의학에 매진하게 됐다고 했다. 그런데 그 매력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그는 “10년 전만해도 분발해서 더 열심히 해보겠다고 말했을 텐데 이제 그런 말은 위선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이어 “중환자실 의료진들이 사기를 잃은 지 오래다. 의료현장을 헤아리지 않는다면 양질의 의료는 불가능하다”고 힘줘 말했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

전미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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