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는 임신한 노동자가 업무상 이유로 유산할 경우 산업재해로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같은 이유로 심각한 장애아를 낳은 노동자에게는 어떨까.
간호사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이 도마 위에 오른 가운데 제주의료원에서 일어난 간호사 집단 유산 사태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27일 열린 산업재해보상보헙법 개정에 관한 국회토론회에서는 여성 노동자의 모성권이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에 따르면, 지난 2009년 제주의료원 간호사 15명이 임신했지만, 이 중 5명이 연달아 유산했으며, 그 다음해에는 12명이 임신해 4명이 유산, 남은 8명 중 4명은 선천성 심장 질환을 가진 아이를 낳았다.
간호사들이 병동에서 항암제 등 유해약품을 보호 장비도 없이 다뤘던 것이 원인이었다.
그러나 선천성 심장질환아를 출산한 4명의 간호사는 지금껏 어떤 보상도 받지 못하고 있다. 아이에 대한 산재보험 적용을 신청해 대법원 소송을 진행 중이나, 2심에서 산재보험 급여의 수급권자와 청구권자가 다르다며 자녀는 수급권과 청구권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현정희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장은 “간호사들이 하루 16시간 이상 근무해도 아무 제재를 하지 않고, 다들 알면서도 처벌하자는 이야기를 안 한다. 이런 환경에서 사고가 나지 않고 유산·사산이 안 생기는 것이 오히려 놀랄 정도”라며 “이것이 대한민국의 모성보호 실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헌법 제36조 제2항은 “국가는 모성의 보호를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실상은 태아가 죽어야만 모성권(산업재해)을 인정하고, 살아서 태어나면 모르쇠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현주 우송대 간호학과 교수는 이를 보완하는 방법으로 산업재해보상법을 개정할 것을 제안했다. 산업재해보성보험법을 개정, 임신 노동자의 업무상 재해로 인한 출산아의 피해도 산업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교수는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이 2012년 기점으로 50%를 넘고, 고용률도 급증하고 있는 반면 출산율은 줄고 유산 및 조산은 늘고 있다”며 “많은 연구들이 여성 근로자의 조산, 유산 등 모성권 침해를 이야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산업안전보건법상 임신노동자의 모성보호를 위한 안전과 보건대책은 유명무실하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모체와 태아는 자연적 통일체로서 임신기간 동안 발생한 사고로 건강이 손상됐을 시 업무상 재해로 인정해야한다”며 “저출산시대 여성에 대한 모성보호는 성차별이아니라 미래재생산을 담당하는 사회적 책임강화의 일환”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주평식 고용노동부 산업재해 보상정책과장은 “유·사산이나 출산한 자녀의 건강손상이 있는 경우 태아에 대해서도 산재보상해 노동자의 보상체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다만, 태아보호를 인정한다는 전제 하에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추가연구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주 과장은 “올해 중 임신 태아의 건강손상에 대한 산재보상방안에 대한 연구용역을 실시하고, 결과를 토대로 입법발의를 추진핳 예정”이라며 “또 업무관련성을 판단하는 매뉴얼도 보완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한 역학조사 개선방안 연구를 토대로 제도 운영과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