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6년 12월 희귀·난치성 질환 환자들의 사회경제적 부담 감소를 위해 ‘희귀질환관리법’이 시행됐다.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많은 환자들이 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중 하나가 희귀혈액암 ‘발덴스트롬 거대글로불린혈증(Waldenstroms Macroglobulinemia, 이하 WM)’이다. WM은 병명조차도 국가마다 ‘왈덴스트롬 거대글로불린혈증’ 등으로 다르게 불린다. 병명 자체가 낯설고 환자 수도 매우 적기 때문에 의사들에게도 생소하다. WM은 매년 100만명 당 3명 정도로 드물게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백혈병과 같은 혈액암으로 분류되지만,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백혈병과 달리 사회적 관심이 부족하고 치료제 도입이 더디다. 환자 수가 매우 적다보니 새로운 치료제 연구나 약제에 대한 경제성 평가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해외에서 이미 널리 사용되는 치료제가 있어도 국내에서는 쉽게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3월 21일은 ‘암 예방의 날’이다. 해마다 증가하는 암발생률을 낮추기 위해 암에 대한 이해를 증진하고 치료·관리 의욕을 고취하고자 지정됐다. ‘암 예방의 날’을 맞아 WM 치료 현실에 대해 짚어보기 위해 국립암센터 엄현석 조혈모이식실 실장 및 혈액암센터장을 만났다.
◇WM 환자 평균 나이 65세, 고령화 맞물리면서 환자 증가 예상
WM은 전체 혈액암 발생률의 1~2%에 불과한 희귀 혈액암이다. 진단 시 평균 연령은 65세로, 주로 고령층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WM은 면역글로불린M 수치의 증가, 골수 내 B세포 계열의 림프형질세포성 림프구 증식에 의해 발생한다. B세포는 몸속에 들어온 바이러스를 사멸시키는 역할을 하며, 면역글로불린M은 B세포가 만드는 항체를 말한다. B세포 증식으로 피로감, 식욕부진, 체중 감소 및 발열, 코피 등의 증상이 나타나며, 면역글로불린M의 증가로 혈액 점도가 상승하면서 혈류 장애 및 혈소판 기능 감소, 코피나 위장관 출혈, 두통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면역글로불린M이 신경계통에 문제를 일으킬 경우 신체 저림 등의 감각 장애를 겪을 수 있다.
엄현석 센터장은 “증상이 사소해 보이지만 환자들이 일상생활에서 체감하는 불편과 고통이 큰 질환이며, 증상이 비특이적이기 때문에 환자가 우연히 혈액검사를 하기 전까지는 발견 및 진단이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이미 진행된 상태로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공식적으로 밝혀진 발병 원인은 없다. 엄 센터장에 따르면 가족력 및 C형 간염 바이러스 등과 WM 발병의 연관성에 대한 연구들이 있으나 아직 명확한 근거가 밝혀지지는 않았다.
희귀암 특성상 환자 수가 많지 않기 때문에 국내에 공식으로 집계된 발병률 통계는 없다. 미국에서는 100만명 당 3명 정도의 환자가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국내에서는 1년에 150명 정도 환자가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WM을 앓고 있는 환자 중 60~70대의 고령 환자가 많고, 국내 림프종 환자의 증가 추세 및 우리나라의 고령사회 진입을 고려했을 때 WM 환자는 앞으로 더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이 엄 센터장의 설명이다.
그는 “치료제 발전 수준이 높지 않았던 과거에는 미미한 항암치료 효과, 부작용으로 인한 삶의 질 저하 문제로 인해 고령 환자들이 치료를 포기하는 경향이 있었다”면서 “그러나 지금은 기대수명이 길어지고 경제적, 체력적으로 항암치료를 받을 수 있는 고령 환자가 많아져 치료를 시도하는 환자가 많다. 특히 표적치료제나 경구투약제 등 효과가 좋으면서 독성이 적어 환자 삶의 질을 개선하는 치료제들이 많이 개발돼 환자들이 치료를 지속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행인 것은 질환 진행 속도가 느린 편이어서 환자 생존기간도 긴 편이라는 것이다. 환자의 특성 및 질환 위험도별로 생존율이 상이하나 미국 같은 경우 생존기간이 평균 10년 정도라는 데이터가 있다. 다만 치료 후 재발률이 매우 높다는 문제가 있다.
◇국내 급여 치료제는 오직 ‘플루다라빈 단독 혹은 병용’, 부작용 낮고 임상 효과 높은 치료제는 비급여
WM는 주로 항암치료를 시행한다. 일반적으로 한 달에 한 번씩 평균 4~6회의 항암치료를 시행하며, 부작용이 없는 치료제의 경우 약 2~3년 동안 유지요법으로 치료할 수 있다.
문제는 재발 시 사용 가능한 약제 중 보험 적용이 되는 치료법이 플루다라빈 단독 혹은 병용요법밖에 없다는 것이다. 해외에서는 벤다무스틴, 리툭시맙 등과 같은 치료제가 WM이 포함된 저등급 림프종 치료에 효과가 입증돼 주로 사용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사용 허가 및 급여 문제로 사용에 제한이 있다. 경제적 부담 때문에 환자들이 효과가 좋은 약을 눈앞에 두고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엄 센터장은 “진료를 하면서 체감하는 환자들의 가장 큰 애로사항은 경제적 문제라고 본다. 치료제에 대한 국가 보험이 적용되려면 효과를 뒷받침할 수 있는 대규모 임상 연구 자료 등이 필요하다”며 “그러나 WM 같은 희귀암의 경우 환자가 적기 때문에 대규모 임상 진행이 어려워 약제 경제성 평가가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그는 “질환 증상으로 인한 고통, 항암치료로 인한 부작용도 환자의 고통을 가중시킨다. WM은 고령 환자가 많다는 질환 특성상 독성과 부작용 위험성이 낮은 치료 옵션이 필요하다”며 “WM 환자의 경우 신경 독성이 있는 약제 사용 시 치료 효과가 좋아도 신체 저림 등의 2차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가장 좋은 치료방법은 효과는 좋으면서 비교적 독성이 적은 치료제를 사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내외 의료계 교과서로 삼는 ‘미국 종합 암 네트워크(NCCN)’ 가이드라인에서는 현재 국내에서 사용 가능한 플루다라빈 단독 혹은 병용요법 외에도 환자 특성에 따른 다양한 치료법을 권고하고 있다. 벤다무스틴, 리툭시맙 등의 치료법들은 임상 연구를 통해 우수한 치료효과를 입증했고, 특히 벤다무스틴은 50년 이상 사용된 세포독성항암제다”라며 “그러나 국내에서는 ‘사전신청요법’이라는 제도를 통해서만 사용 가능해 치료 접근성이 낮다”고 지적했다.
‘사전신청요법’이란 허가 받은 약제 외에 의학적으로 효과를 인정받은 약제에 한해 특정기관에 치료를 허가하는 제도로, 현재 국내 적응증만으로는 치료가 어려운 환자들을 위해 마련된 것이다. 그러나 사전신청요법을 사용할 수 있는 기관은 다학제적위원회가 설치돼 있는 병원으로 한정되어 있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암질환심의위원회의 사전승인을 받아야 해 그 절차가 까다롭다. 승인을 받더라도 약제 비용은 대개 환자 전액 부담이다.
엄 센터장은 “선진국에서는 희귀질환에 대해서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어 희귀질환 치료제의 빠른 급여화를 통해 접근성을 확보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기존 제도 상에서 비용효과성 입증이 어려운 항암제의 특성을 반영한 다양한 형태의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며 “희귀암은 질환 인지도가 낮고 환자 수가 적어 사회적 관심이 떨어지기 때문에 주요 암에 비해 환자 치료 환경 개선의 우선 순위에서 뒤쳐질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WM 환자의 경우 주로 고령 환자이고 환자 수도 매우 적어 환우회를 통해 환자 목소리를 내거나, 질환 및 치료 정보를 얻는 것이 쉽지 않다. 희귀암에 대한 질환 인지도 및 사회적 관심을 높이기 위해 사회적 지위가 있는 오피니언 리더들을 중심으로 희귀암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효능을 입증한 치료제는 환자들이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기회를 열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사용 허가 및 보험 급여 지원을 통해 환자들의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 방법일 것이다. 더군다나 사전신청요법을 통해 치료 사례가 누적된 치료제는 효과 및 안전성을 보여준 것이라 보고 사용 허가의 우선순위로 고려해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엄 센터장은 “매년 새로운 좋은 항암제들이 개발되고 있고 치료 성적도 높아지고 있어 환자들에게는 희망적인 상황이다. 그러나 환자 치료접근성은 아직 개선의 여지가 있다. 소수의 희귀암 환자들이 치료혜택으로부터 소외되지 않도록 사회적 합의 및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유수인 기자 suin92710@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