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의학기술 발달 등으로 환자 맞춤형 치료 시대가 열렸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4억명이 앓고 있는 대표적인 만성질환 ‘당뇨병’ 환자에게는 아직까지 다른 세상 이야기다. 정밀의료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개인의 유전정보, 질병정보, 생활정보 등의 데이터가 쌓여 보다 정밀하게 분류돼야 하는데, 당뇨병은 진단 기준부터가 다소 일률적이기 때문이다.
당뇨병은 췌장에서 분비되는 ‘인슐린’의 분비량이 부족하거나 정상적인 기능이 이루어지지 않는 질환이다. 혈액 속 포도당의 양을 조절하는 인슐린이 부족하면 혈중 포도당의 농도가 높아지는 ‘고혈당’이 나타나면서 콩팥기능 장애, 망막병증, 심혈관계 질환 등의 발병 위험이 높아진다.
당뇨병은 1형과 2형 두 종류로 나눈다. 1형은 자가면역 질환으로 인슐린이 몸에서 전혀 생산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유전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어릴 때부터 발생해 ‘소아당뇨’라고 한다. 비만, 생활습관 등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2형은 인슐린이 적게 생산되거나 인슐린 저항성이 있어 포도당을 인체 세포가 흡수하지 못하는 것이다. 후천적으로 발생해 ‘성인당뇨’라는 별명이 붙었다.
실제 국내 임상에서는 이러한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유형의 환자가 발견돼도 이를 별도로 구별하지 않고 가이드라인에 맞춰 치료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국제적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1형, 2형 외 다른 유형의 환자들을 분류하는 작업은 미비했다.
그런데 최근 스웨덴에서 환자 유형을 5가지로 분류하고, 종류와 개인차에 따라 치료법도 달라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특히 ‘노인 당뇨’라는 새로운 개념이 제시되면서 국내외적 당뇨병 치료지침에 변화가 찾아올지 주목된다.
◇5개 유형의 당뇨병, 합병증 발병 위험 및 맞춤 치료 약제 제시
스웨덴 룬드대 당뇨병센터와 핀란드 분자의학연구소 공동연구팀은 스웨덴과 핀란드의 당뇨병 환자 1만4775명을 대상으로 인슐린 분비와 저항성 등 다양한 요소를 비교 분석한 결과, 당뇨병을 중증(3개)과 경증(2개) 등 모두 5개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고 최근 밝혔다. 이 연구결과는 ‘랜싯 당뇨병 및 내분비학회(The Lancet Diabetes and Endocrinology)’ 최신호에 발표됐다.
연구팀이 분류한 1군(Cluster) 당뇨병은 ‘중증 자가면역질환 당뇨’이다. 면역 체계에 문제가 생겨 발생하기 때문에 1형 당뇨병(소아당뇨)와 같은 개념으로 볼 수 있다. 2군 당뇨병은 ‘중증 인슐린 결핍성 당뇨병’이다. 체질량지수(BMI)가 낮고 어릴 때 발병하는 것이 1군과 비슷하지만, 면역 체계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 특징이다.
연구팀은 “2군은 대표적인 혈당강하제인 메트포르민(metformin)을 먹는 환자가 많았다. 하지만 이는 최적의 치료법이 아니다. 이들은 제1형 당뇨병처럼 인슐린을 조기에 맞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2군의 경우 망막질환 등의 합병증으로 실명 위험이 높기 때문에 이러한 유형을 가진 환자는 조기 발견을 위한 선별검사를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3군은 ‘중증 인슐린 저항성 당뇨병’으로 비만과 관련이 있어 기존 2형 당뇨와 비슷한 개념이다. 인슐린을 만들어 내는 능력은 있지만 몸이 인슐린에 반응하지 않으며, BMI가 높다는 특징이 있다. 연구팀은 “3군의 경우 메트포르민을 복용하면 가장 큰 효과를 볼 수 있고, 3군 당뇨병은 당뇨로 인한 만성 콩팥병이나 간질환을 앓을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4군은 ‘경증 비만성 당뇨병’이다. 비만 등과 관련이 있어 3군과 비슷하지만 신진대사가 정상에 가까워 인슐린 저항성은 없다.
5군은 전체 당뇨병 환자의 40%를 차지한 ‘경증 노화 관련 당뇨병’이다. 4군 환자와 비슷한 특징이 있지만 다른 군의 환자들보다 나이가 많다는 특징이 있다. 다만 포도당 조절에 있어서 아주 경미한 문제를 보인다. 5군 또한 메트포르민과 생활습관 개선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것이 연구팀의 설명이다.
연구진들은 영국 BBC 인터뷰를 통해 “정밀의학의 중요성이 커지는 요즘, 이번 분류로 당뇨병 개인 맞춤 치료를 실현시키는 것은 물론 미래 당뇨병 관련 합병증 위험을 잠재적으로 줄일 수 있다”고 시사했다.
연구를 주도한 빅토리아 세일(Victoria Salem) 박사는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기존의 1형과 2형이 정확한 분류체계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아직까지도 유전적, 지역적 환경에 따라 밝혀지지 않은 유형이 있을 수 있다”며 “당뇨병은 미래의 질병이다. 이들 그룹을 다르게 치료하면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지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제의식 낮아 기존 진료지침 따랐지만..환자 맞춤 다양한 치료적 접근 가능해질까
당뇨병 분류를 보다 세분화한 연구가 발표되자 국내 의료진 또한 당뇨병 환자의 치료접근성이 개선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대중 아주대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이런 연구가 서양에서 나왔다는 것이 놀랍다. 사실 국내에서는 서양인을 대상으로 한 교과서를 기반으로 진료한다. 서양은 비만한 2형 당뇨환자가 많지만 우리나라는 마른 당뇨 환자 등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환자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며 “그런 환자는 치료접근이 달라야하기 때문에 국내 몇몇 의료진들은 20년 전부터 맞춤 치료를 주장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의료진들은 수많은 진료 경험을 통해 사람마다 사용하는 약물 효과가 다르다는 것을 안다. 이것이 체계적으로, 이론적으로 정립하면 맞춤 치료가 가능해지는 것인데 이를 정립하기 위해서는 환자별로 그룹을 만드는 것이 기초가 돼야 한다”며 “그러나 아직까지 합의가 되어있거나 제시된 가이드라인이 없어서 의료진들은 기존 진료지침만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이어 “이번 연구가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그동안 주류 학술단체, 미국이나 유럽학회 등 어디에서도 환자를 분류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 의식이 확산되면 거기에 맞춰 연구도 나오고 가이드라인도 나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그는 “흥미로운 것은 ‘노인성 당뇨’라는 개념이 제시됐다는 점이다. 실제로 나이가 들어서 당뇨가 생기는 경우가 있다. 보통 당뇨는 50대에 발병하는데, 노인성 당뇨는 60대, 70대에 생기는 것이다. 기존에도 이들에게는 치료 방법이 달라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면서 “노인성 당뇨병 환자는 합병증으로 고생할 가능성이 낮다. 이들에게 맞는 다른 치료적 접근이 시행될 것으로 본다”고 시사했다.
유수인 기자 suin92710@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