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명의료결정법' 시행에 소극적인 병원? 현장 어려움 '호소'

'연명의료결정법' 시행에 소극적인 병원? 현장 어려움 '호소'

기사승인 2018-03-17 00:03:00

존엄사법이라 불리는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된 지 한 달이 넘었지만 여전히 현장에서는 제도 시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명의료결정법은 죽음에 대한 환자의 자기 결정권을 강화해 존엄성을 보장하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정식 명칭은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으로,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자기의 결정이나 가족의 동의로 연명치료를 받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법이다.

하지만 복잡한 서류절차, 불안정한 정보처리시스템 등의 문제로 인해 시행 초기부터 잡음이 일었고, 시행 2주만에 법 개정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서울대학교병원은 “정부의 연명 의료 정보 처리 시스템이 안정화되기까지 전산 등록을 보류하고 이행서 사본을 우편으로 제출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

이에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자유한국당 박인숙 의원은 대한의사협회와 16일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긴급진단]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한달, 제도정착을 위한 앞으로의 과제는?’ 주제 토론회를 개최하고 지금까지 발견된 문제점들을 짚어봤다.

이날 발제를 맡은 이윤성 국가생명윤리정책원장은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된 2월 4일부터 3월 15일까지 집계된 현황을 점검했다. 

이 원장에 따르면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은 ▲공공기관 1(178지사) ▲의료기관 24 ▲보건소 14 ▲비영리단체 10로 총 49개소였고, 연명의료결정 이행의 필수요건인 ‘의료기관윤리위원회’를 등록한 의료기관은 ▲상급종합 42개 중 36개소 ▲종합병원 295개 중 59개소 ▲병원 5개소 ▲요양병원 14로 총 114개소였다. 

연명의료 중단 등을 이행하려는 의료기관은 내부에 의료인 3명과 종교계·법조계·윤리학계·시민학계 등 비의료인 2명 등 총 5인 이상으로 구성된 윤리의원회를 설치해야 한다. 그러나 규모가 작은 병원 특성상 이러한 윤리의원회를 설치하기에는 현실에서 어려움이 따른다. 이에 상급종합병원에서도 아직 6개소가 등록을 하지 않은 상태며, 종합병원과 병원급에서는 미설치 기관이 확연히 많았다.

반면 연명의료결정법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은 높아지고 있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자는 꾸준히 늘어 15일 기준 남자 1380명, 여자 1956명 총 3336명으로 집계됐다. 연명의료계획서 신청자는 1170건으로, 지난해 10월 16일부터 올해 1월 15일까지 3개월간 진행된 시범사업 기간 때(107건)보다 급격히 늘었다. 말기환자가 작성한 건은 661명, 임종과정에 있어 보호자가 작성한 건은 149명이었다.

연명의료중단 결정를 이행한 유형에는 ▲가족 전원 합의가 623건(39.38%)으로 가장 많았으며, 이어 ▲연명의료계획서 570건(36.03%) ▲가족 2인 진술 388건(24.53) ▲사전의향서 1건 (0.06)순이었다. 

이윤성 원장은 “이 법이 시행되기 전에는 본인이 스스로 계획서를 작성해 연명의료를 중단하여 결정권이 강화되는 구조를 기대했다. 그러나 계획서 작성건 비율은 36% 남짓이었다. 차선책으로 제시한 것이 ‘가족 2인 진술’인데, 차차선책이었던 ‘가족전원합의’ 유형이 훨씬 높게 나왔다”고 지적했다.

이 원장은 “차차선책이었던 ‘가족전원합의’ 비율이 높은 이유는 의료기관에서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러나 제도 취지에 맞게 의료기관이 적극적으로 임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것이 의료계 입장이다.

허대석 서울대병원 내과 교수는 “어느 누구도 고통스러운 임종은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루에 연명의료계획서를 쓰는 건수는 0.3건 사전연명의료는 1.13건으로 매우 적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과 관련해 병원 내에는 전담인력도 있어야하고, 투자도 해야 하는데 작성하는 사람 수가 매우 적어서 어려운 점이 많다”며 “여론 조사에서도 약 90%는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원하지 않지만 법적 서식을 작성하는 비율은 10% 미만”이다. 문제는 서식을 작성하지 않는 사람의 경우 환자 의사확인이 불가능할 때 연명의료 유보를 결정한다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허 교수는 “의사와 의사, 의사와 환자, 의사와 가족, 가족과 환자간 소통이 부족한 점도 문제가 된다. 실제로 80세 말기 환자 보호자는 ‘아버지에게 좋아지셨다고(건강이) 얘기해 달라’는 쪽지를 보내왔다. 그러나 이 환자는 임종기 판단이 내려졌다. 왜 이런 거짓말을 해달라고 하느냐. 필요없는 고통을 주기 싫다는 것이 이유”라면서 “100명의 가족들이 환자에게 (연명의료계획서 작성에 대해) 말하기 싫어한다. 환자도 가족이랑 상의하라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또 어디서부터 임종인지 말기인지 나누기가 어렵고, 이에 대한 의료진간 판단도 모두 다르다”고 덧붙였다.

20개가 넘는 서식을 작성해야 하는 복잡한 신청 절차에 대한 지적도 제기됐다. 

허 교수는 “현재 연명의료정보 처리시스템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특히 응급상황에 의사가 언제 컴퓨터에 앉아 병원인증서, 공인인증서 등 인증 절차를 수행하느냐”고 토로했다. 그는  “단기적으로는 시행규칙 개정을 통해 불필요한 서류 지참 내용을 삭제하도록 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는 말기와 임종기를 통합하고, 전산 시스템에 대한 부분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재영 대한중환자의학회 윤리법제위원회 간사(충남대병원 호흡기내과)도 “현재 등록사이트는 의료현장 의사들이 일하는 동선과 방식을 고려하지 못했다. 의사 두 명 이상의 확인과 서명이 필요하지만 한 자리에 모이는 게 쉽지 않다. 테블릿 PC 사용 역시 과정이 복잡해 어려움이 많다”며 “현재 등록사이트는 현장의 의견 반영 없이 적은 예산으로 졸속으로 구축됐다. 정보 입력 절차만 까다롭다면 의료현장에서는 법 적용을 포기하거나, 법 절차에만 맞춘 형식적인 설명과 서명만이 이루어질 것이다. 절차를 간소화하고 등록사이트도 재구성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생명윤리정책과 박미라 과장은 “많은 어려움이 예상됐다. 현장 의견을 많이 반영하지 못한 것 같다. 앞으로 전산시스템을 고도화하고, 의료계는 물론 법조계, 윤리계 등의 의견을 반영해 제도를 개선하겠다”며 "또 민간의료기관 등 인프라를 확충해 의향서를 원활하게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유수인 기자 suin92710@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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