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움은 애교였다…개인 사비로 의료용품 구입, 병원장 집안일에 정치금 후원까지

태움은 애교였다…개인 사비로 의료용품 구입, 병원장 집안일에 정치금 후원까지

보건의료노조 조합 54개 병원 조사 결과, 간호사 등 보건의료인력 노동 실상 드러나

기사승인 2018-03-20 16:40:52

성심병원 간호사 춤 강요 사태,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태움, 서울대병원 신규간호사 열정페이 등 간호사들의 노동 환경이 사회적 문제로 나오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더욱 열악한 것으로 나타났다. 휴가, 식사시간, 시간 외 근무를 보장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 의료용품도 개인 사비로 구입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소위 빅5라고 불리는 상급종합병원에서도 이런 일들이 벌어진 것으로 나왔다. 

보건의료노조(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이하 노조)는 20일 노조 회의실에서 이같은 내용을 담은 ‘의료기관내 갑질과 인권유린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는 지난해 12월 18일부터 올해 2월 24일까지 2개월여간 노조 조합원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실태조사는 조합원 설문조사 방식으로 실시됐으며, 54개 병원 1만1662명이 참가했다.

지역별로 서울 2944명, 경기 2050명, 강원 545명, 인천부천 726명, 충북 394명, 대전충남 1430명, 전북 471명, 광주전남 1368명, 부산 1734명이, 병원특성별로는 국립대병원 5개(2350명 20%), 사립대병원 16개(5842명, 50.1%), 특수목적공공병원 7개(1136명, 9.7%), 지방의료원 12개(928명 8%), 민간중소병원 9개(1271명, 10.9%), 기타 특수병원(정신·재활·요양) 5개(135명, 1.2%) 등이 참여했다. 조사 병원은 서울 상급병원 중 노조가 속해있는 서울성모병원과 서울아산병원 중 한 곳이 포함됐다. 

설문에 응답한 성별 분포는 ▲남성이 16.6%(1934명)이며 ▲여성은 83.4%(9798명)로 여성이 다수였고, 연령별 응답자는 ▲20대 40.3% ▲30대 35% ▲40대 17.9% ▲50대 6.5% ▲60대 이상 0.2%였다. 직종별 응답자는 ▲간호사가 66.1%(7703명)로 가장 많았으며 ▲의료기사 16.9%(1970명) ▲사무행정 6.1%(717명) ▲간호조무사 5.6%(648명) ▲기타 직종 5.4%(624명)였다.

◇간호사 절반 이상은 시간외수당 못 받아…밥 먹는 시간은 30분 

실태조사 결과, 시간외근무에 대한 보상과 교육, 회의, 각종 병원 행사 참가에 따른 보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업무준비를 위해 일찍 출근하고, 업무를 다 마치기 위해 퇴근이 늦어져도 시간외수당을 받지 못한 사례가 59.7%로 높게 조사됐다. 직종으로는 간호사가 70.6%로 대부분 시간외수당을 제대로 지급받지 못했다.

근무시간외에 업무관련 교육이나 회의, 워크숍 참석 시에도 별도의 수당이 지급되지 않는다는 응답이 46.8%로 조사되었으며, 직종으로는 ▲간호사 55.5% ▲간호조무사 28.1% ▲의료기사 38.3% ▲사무행정이 18.5%로 집계됐다. 병원이 공식적으로 진행한 각종 행사에 동원돼 시간외근무를 하게 된 경우에도 별도의 수당이나 지원이 없다는 응답이 47.6%에 이르렀으며 ▲간호사 직종이 54.9% ▲의료기사 41.2% ▲간호조무사 32.3%로 조사됐다.

병원의 각종 회의나 워크숍, 교육 참석이나 시간외근무에 대하여 수당 신청 자체를 하지 못하도록 금지한 사례는 26.3%를 차지했다. 특히 본인 휴가나 휴무임에도 불구하고 병원행사나 인증평가 준비로 추가근무를 해도 별도의 수당지급이나 대체휴가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많았다. 업무 관련 출장에 대한 지원이 없다는 응답도 18.9%였고 간호사가 23.3%로 가장 많았다.

의료기관에서는 자유로운 휴가사용권도 보장되지 않고 있었다. 휴가가 강제로 배정된 사례가 있다는 응답자는 39.3%였고, 병상가동율이 낮거나 환자가 적다는 이유로 근무시간이 수시로 변경되거나 휴무나 반차가 강제적으로 배정된 사례가 있다는 응답은 38.3%, 원하지 않는 휴일근무나 특근근무를 강요받았다는 응답은 30.7%나 됐다.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에는 1일 8시간 기준으로 4시간마다 30분의 휴게시간을 법적으로 보장하고 있으나 병원에서 근무하는 근무자 중 휴게시간을 100% 보장받는 경우는 15.8%에 불과했다. 43.3%는 휴게시간을 전혀 보장받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직종별로는 간호사가 54.4%로 타 직종에 비해 휴게시간을 전혀 보장받지 못하고 있었으며 부서별로는 병동 근무자가 60.2%로 휴게시간에 대한 보장을 받지 못하는 비율이 가장 많았다.

식사시간을 어느 정도 보장받고 있는가에 질문에서는 100% 보장받는 경우는 25.5%에 불과했다. 응답자의 49.9%가 일부만 보장받고 있다고 응답했으며 전혀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는 의견도 22.9%로 조사됐다.

나영명 정책국장은 “근무부서에 따라 식사시간이 5분인 경우도, 30분인 경우도 있다. 작년 실시한 실태조사를 보면, 식사하러 가는 이동시간과 식사시간을 포함한 시간이 30분 이내라고 응답한 비율이 70%를 차지했다”고 말했다.

◇태움은 물론 ‘술 따라라’, ‘종교 믿어라’ 강요받아

태움도 심각했다. 조사 결과 간호사의 40.2%가 태움(괴롭힘)을 경험했다. 태움을 경험한 사례는 간호사가 40.2%, 간호조무사 18.7%, 의료기사 15%로 조사됐다.


최근 미투운동으로 사회적 쟁점이 되고 있는 성희롱-성폭행 사례도 심각했다. 조사 결과 간호사의 13.2%, 간호조무사의 7.4%, 의료기사의 7.8%가 성희롱·성폭행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병원근무 중 욕설이나 반말, 무시, 모욕적 언사 등 폭언을 경험한 사례는 56.2%였다. 직종별로는 간호사가 65.5%로 타 직종에 비해 폭언을 경험한 사례가 많았고, 간호조무사 48.5%, 의료기사 37.4%, 사무행정이 33.5%, 기타 직종 35.9%로 나타났다. 폭행을 당한 사례는 7.6%였다.

신규직원으로 정식발령을 받은 후 교육기간이나 수습기간 등의 이유로 무급으로 일을 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13.4%였다. 직종별로는 ▲의료기사 15.7%, ▲간호사 14.9%로 타직종에 비해 다소 높았으며, 병원특성별로는 ▲사립대병원이 16.2% ▲국립대병원이 16%로 중소병원보다 상급종합병원이 높았다.


춤을 강요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근무시간 외에 본인의사와 무관하게 봉사활동이나 캠페인, 홍보활동에 동원한 경우는 23.9%였으며, 업무와 관련 없는 행사에 참여해 단체로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춘 경험이 있다는 응답은  25.3%에 이르렀다. 직종별로는 ▲간호사 31.2%, ▲의료기사 17.5% ▲간호조무사 14.4% ▲사무행정 10.5%로 조사됐다. 회식자리에서 술을 따르라고 강요받은 사례도 19.7%였고, 직종별로는 ▲간호사 22.7% ▲의료기사 16.9% ▲사무행정 15.5% ▲간호조무사 10.5%였다. 

본인의사와 무관하게 특정단체나 특정종교에 가입할 것을 강요당하거나 이들 단체가 주최하는 행사에 참가하도록 강요받은 사례(7.5%)도 있었다.  

◇병원광고 전단지 배포하며 환자 유치 동원, 개인 사물함 감시당해…병원장 집안일도 지시

병원노동자들은 본인의 업무 외에 부당한 업무를 강요받는 경우가 많았다.

병원광고물을 아파트단지나 지하철역에서 배포하면서 환자를 유치하는 활동에 동원된 경험은 3.5%였다. 직종별로는 ▲의료기사가 6.2% ▲사무행정 4.7%로 타 직종보다 다소 높게 조사됐다. 병원특성별로는 사립대병원이 5%로 가장 높았다. 

개인사물함을 검사하거나 핸드폰 반납, CCTV로 감시하는 등 인권침해를 경험했다는 응답은 11.4%로 직종별로는 ▲간호사 13% ▲간호조무사 10.5%로 타 직종보다 높았다. 병원특성별로는 ▲사립대병원이 17.1% ▲특수목적공공병원 6.6% ▲국립대병원 6% ▲민간중소병원 4.5% ▲지방의료원 3.6%로 공공병원보다 민간병원이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기관인증평가시 업무와 관련 없는 청소 및 환경정리, 병원주변 풀뽑기, 침대 및 철창 닦기, 주차관리, 담배꽁초 줍기 등의 업무를 강요받았다는 응답은 51.5%에 이르렀다. 직종으로는 간호사가 60.3%, 간호조무사 47.7%, 의료기사 36.9%, 사무행정이 21.1%였다. 상급자나 의사의 지시행위나 커피 등 잔심부름을 강요받았다는 응답은 17.9%로 간호사는 20.3%, 간호조무사 19.8%, 사무행정 13%을 차지했다. 

진료기록서나 보험청구 등 거짓 서류나 문서를 조작해 진실을 은폐하는 행위를 강요하는 등 부정한 행동을 강요받는 사례(8.9%)도 있었다. 병원특성별로는 정신·재활·요양병원이 16.3%로 가장 많았고 사립대병원도 11.2%였다. 

재단이사나 병원장, 임원 등 병원 고위직으로부터 집안일이나 개인 업무를 지시받았다는 의견은 3%로, 사무행정직종이 4%, 간호조무사 3.5%, 간호사 2.8%로 조사됐다. 

◇감염예방·환자치료 등에 필요한 의료용품 자비로 구입…정치금 후원도 간호사 몫?

의료진이 환자들의 감염예방을 위해 사용하는 장갑이나 마스크 등을 병원이 비용절감을 이유로 지급을 제한하거나 지급하지 않은 경험을 했다는 응답자는 19.1%였다. 직종별로는 ▲간호사 23.1%, ▲간호조무사 15% ▲의료기사 13.8%였고, 병원특성별로는 ▲사립대병원 24.9% ▲특수목적공공병원 19.2% ▲지방의료원 14.5% ▲국립대병원 11.1% ▲민간중소병원 10.1% 순이었다.

병원직원이 현재 일하는 곳에서 과잉진료나 무자격자진료, 불법 의료행위, 1회용품 재사용, 리베이트 수수 등을 목격하거나 경험한 응답자는 12.6%였다. 의료소모품이나 감염관리 부실로 일하는 곳에서 감염되었거나 감염 위험에 놓인 경험을 한 경우는 18.2%였다. 병원의 안전관리 소홀 때문에 안전사고를 경험한 경우도 12.9%였다.

병원근무 시 사용할 각종 비품과 물품을 병원이 구입해 제공하지 않고 개인 사비나 부서 회비로 구입하도록 하는 비품갑질도 심각했다. 부서회비 역시 부서직원의 개인 사비를 걷어서 활용하는 것으로 병원이 마땅히 지불해야 할 비품 비용을 개인에게 부담시키는 경우에 해당된다.

병원근무시 부서회비로 구입한 물품으로는 ▲생활용품이 56.9%로 가장 많았고 ▲사무용비품이 45.5% ▲근무화 45.3% ▲의료용품 구입 38.3% ▲근무복 구입 15.3% ▲환자관련용품 구입 5.7%로 조사됐다.

환자 치료를 위해 필요한 의료용품을 부서회비를 걷어서 구입한 경험은 ▲간호사 직종이 53.6%로 가장 많았고 ▲간호조무사 17.9%, ▲의료기사가 6.9%였다. 부서회비로 구입한 의료용품으로는 체온계, 드레싱세트, 펜라이트, 과산화수소, 이동용 산소포화도기계 등으로, 부서별로 각자 구입해서 사용한 사례가 다수 나왔다. 특히 의료기구 중 의사가 사용하다 잃어버린 경우에도 부서의 사비로 직접 구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환자관련용품도 부서회비를 걷어서 구입하거나 비용을 지불한 경험은 ▲간호조무사가 7.9% ▲간호사 6% ▲의료기사 5.4%였다. 구입한 환자관련용품은 아동용 장난감, 손비누, 페이퍼타올, 신생아용 바디워시, 분유쟁반, 손톱 깎기 등이었다. 환자 퇴원 시 두고 간 약도 퀵으로 직접 비용을 지불하며 보내주거나 환자가 잃어버린 틀니 금액까지 지불한 사례도 있었다. 

사무용비품을 구입한 경험은 ▲간호사가 54.3%로 가장 많았다. 구입한 사무용비품은 인증관련 물품, 라벨지, 마약금고열쇠, 파쇄기, 복사기, 건전지 등이 있었으며, 복사기를 대여했을 때 복사기대여료까지 지급한 경우도 있었다.

생활용품을 구입한 경험도 ▲간호사 59.4% ▲간호조무사 54.8% ▲의료기사 56% ▲사무행정 45.2% ▲기타직종이 44.4%로 절반 이상이 병원에서 사용하는 생활용품을 부서회비 또는 자비로 구입하고 있었다. 구입한 물품의 종류로는 머리망, 부서내 거울, 정수기필터, 탄력스타킹, 전자렌지, 컵, 병원이불, 드라이기 등이다.

근무화도 병원직원 대부분이 직접 구입해서 이용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근무복 구입 경험은 ▲간호사 직종이 15.8% ▲간호조무사 19.1% ▲의료기사 15.4% ▲사무행정이 6.3% ▲기타직종이 14.9%였다. 

병원이 직원들의 의사와 무관하게 특정 정치인에 대한 정치 후원금을 납부하도록 강요한 경험(10.1%)도 있었다. 병원특성별로는 ▲특수목적공공병원 16.1% ▲사립대병원 10.9% ▲국립대병원 9.9% ▲민간중소병원 6.8% ▲지방의료원이 3.3% 순이었다.

병원직원이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병원 발전기금이나 특정 목적의 기부금을 강요받은 경험은 21.1%이며 병원 특성별로는 ▲사립대병원이 28.4% ▲특수목적공공병원이 16.3% ▲국립대병원 16.4% ▲민간중소병원 12.3% ▲지방의료원이 6.9%였다.

나영명 정책국장은 “병원이란 곳이 환자의 건강과 안전, 생명을 다루는 곳이기 때문에 감염은 0%가 나와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10% 웃도는 비율이 감염 사례가 나온 것은 매우 심각한 것”이라며 “게다가 보건의료인력의 노동현실이 중증상태인 것이 확인됐다. 이에 노조는 태움, 공짜노동, 속임인증, 비정규직 등 4가지를 완전히 근절하기 위한 ‘환자안전병원·노동존중일터 만들기 4out운동을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유수인 기자 suin92710@kukinews.com

유수인 기자
suin92710@kukinews.com
유수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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