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3년 12월 코리안드림을 꿈꾸며 한국에 불법으로 체류하던 한 30대 네팔 남성이 병원에 찾았다. 병명은 결핵이었다. 그가 살던 지역에는 네팔인 등 이민자 커뮤니티가 있었고, 한 선교사는 그 남성이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왔다. 그러나 불안정한 근무환경으로 인해 진료비를 낼 수 없었던 그는 치료를 중단했다. 선교사는 치료를 위해 귀국할 것을 제안했지만 그 남성은 연락두절을 택했다.
2년 후인 2015년 12월, 그 남성은 민간병원 응급실에서 다시 볼 수 있었다. 길거리에서 객혈을 하다 쓰러졌기 때문이다.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시행하던 해당 병원은 막대한 진료비 손실을 감당할 수 없었고, 정부의 지원을 받아 결핵환자를 관리하는 ‘결핵안심벨트’ 수행기관에 연락을 취해 서울특별시 서북병원으로 이송했다.
남성은 ‘다내재성 결핵’을 진단받았다. 다내재성 결핵은 2년간 약물을 복용해야 하고, 치료 효과가 떨어져 사망률이 높아지는 중증 결핵이다. 객혈로 질식 위험이 있던 남성은 뇌사에 빠졌고, 온몸은 쪼그라든 상태였다. 욕창과 패혈증도 있었다. 어느 날은 소변에 혈액만 가득 나와 쇼크에 빠지기도 했다. 콧줄로도 음식과 약을 투여하지 못해 주사기로 투여해야 했다. 네팔 국립병원에 연락을 취했지만 “뇌사 환자는 받지만 결핵 환자는 받지 않는다”는 답변이 돌아왔고, 결핵병원에서는 “뇌사 환자는 받을 수 없다”고 답했다.
서해숙 서울시 서북병원 진료부장은 21일 서울시립미술관 지하 1층 세마홀에서 열린 ‘제8회 결핵예방의 날 심포지엄’에서 현재까지 결핵으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는 한 불법체류자 사례를 이야기했다. 그는 최근 국내에서 결핵으로 진단받은 외국인 환자 수가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이들에 대한 대책이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서해숙 진료부장은 “정부에서, 지역사회에서 이 환자에 대해 많은 관심을 주셨지만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처음 결핵을 진단받은 후 길거리에서 쓰러질 때까지 2년간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았고, 그동안 결핵이 악화됐다”고 토로했다.
서 진료부장은 “공사판을 전전하던 남성은 7~8만원의 진료비를 낼 수 없어 치료를 포기했다. 남성의 치료를 돕던 선교사에게도 부담이 되는 금액이었다. 보건소 등의 관에 요청을 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었지만 그들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주민끼리 형성한 관계망에 접근하지 못한 부분이 아쉽다. 네트워크에 접근해서 동료들 연락처만 받았더라면 남성을 챙길 수 있었을 것이다”라며 “현지 사정으로 인해 남성은 자국에서도 보호받지 못했다. 인간의 존엄성, 의학적 판단, 사회적 비용문제 등 불법체류 결핵환자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있어야한다”고 주장했다.
서 진료부장에 따르면 외국인 결핵 신환자 수는 126명에서 2016년에는 2123명으로 급격히 증가했고, 지난해 적발된 불법체류자만 3만명이 넘기 때문에 집계되지 않은 환자 수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특히 치료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불법체류자’들의 여건을 개선을 위해 ▲불법체류라는 법적 신분과 전염성 결핵치료 별개 진행 ▲공공의료기관이 도움을 줄 수 있다는 홍보 채널 작동 ▲전염성 소실 시까지 입원진료비 지원 및 퇴원 후 보건소 연계 ▲결핵 환자 등록 시 다수 연락처 확보, 약물 미복용 등 치료에 비순응하는 환자 관리에 활용 등을 제시했다.
생명에 귀천이 없다지만 건강보험료를 안 내는 외국인에 대해선 인식이 곱지만은 않다. 단기체류 외국인들 건보료 ‘먹튀’ 현상이 거론되면서 우리의 세금으로 외국인까지 치료 혜택을 줘야 하는지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자리에 참석한 김명희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연구원은 “사람은 국경을 넘나들기 위해 신분 증명이 필요하지만, 결핵균은 국경과 체류자격을 가리지 않는다. 또 인간 존엄성 보장 차원에서 이주민의 체류자격에 관계없이 결핵치료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연구원은 “그동안 이주민 결핵 관리 시스템은 결핵 발생률이 높은 ‘본국’으로부터 ‘우리 사회’로 감염 유입을 방지한다는 프레임을 내걸었다”며 “그러나 그들은 병균을 옮기는 숙주가 아니다. 이주민의 결핵은 열악한 근로환경과 주거환경, 의료서비스 접근성 저하와 같은 요인에서 비롯됐다. 치료 장애를 경험하는 이주민 환자에 대해 지원책을 마련하고, 체류 신분과 검진, 치료 서비스를 연계하는 것을 금지해야 한다. 또 그들의 커뮤니티와 의사소통 채널을 확보해 질병에 대한 지식, 대응책 등을 습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미선 질병관리본부 결핵조사과장은 “치료 목적으로 한국에 오는 외국인이 많다는 기사들이 나오고 있다. 현재 법무부와 함께 대책 마련 중에 있다”며 “세금 이용에 국민들이 오해하는 부분이 없도록 세부적인 현황을 분석하겠다. 또 외국인 환자들 간 커뮤니티가 있다고 들었다. 여기에 어떻게 접근할지 고민하겠다”고 밝혔다.
유수인 기자 suin92710@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