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6살인 구민회씨는 배를 타고 대양을 누비는 ‘마도로스’가 꿈이었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그 꿈을 이룰 수가 없게 됐다.
그는 출항한 지 4개월이 지났을 무렵인 지난달 중순께 고국에서 한참이나 멀리 떨어진 망망대해에서,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탔던 배에서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죽기 직전 2장의 유서를 썼다.
1장은 더 이상 너무 힘들다고 삶을 체념하며 어머니에게 사죄하는 내용이었고, 다른 1장은 자신의 상관을 지목하며 저주에 가까운 욕설을 적은 것이었다.
대체 구씨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구씨는 지난해 2월 A해양대학교를 졸업하고 반년가량 교육을 받은 뒤 같은 해 11월 부산의 한 해운회사 소속 2만t급 화학약품운반선에 3등 기관사(3기사)로 승선했다.
대학교 졸업 전 실습 기간에 이 배를 타고 교육을 받았던 적이 있었던 터라 구씨에게 이 배는 낯선 배가 아니었다.
구씨가 다시 이 배를 탔을 때는 실습생이 아닌 군 대체복무제도인 ‘승선근무예비역’ 신분이었다는 것만 달랐다.
이 회사에 소속돼 있으면서 36개월(휴가기간 제외) 동안 배를 탄 경력이 인정되면 현역 복무를 대신할 수 있다.
구씨처럼 해양대를 졸업한 뒤 배를 타는 것을 목표로 하는 남자들이 주로 이를 이용하고 있다.
그런데 마도로스를 꿈꾸며 배에 오른 구씨의 ‘인생 항해’는 시작부터 삐거덕거렸다.
구씨 유족은 구씨가 배를 타고 나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괴로움을 호소했다고 했다.
구씨가 지인과 나눈 SNS에는 ‘상사가 계속 괴롭히고 있다’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구씨는 친구에게 “이제 본격적으로 괴롭힌다. 쉬지도 못 한다” “방금 무릎 꿇고 왔다. 잘못했다고 죄송하다고” “오늘 00 혼났는데, 욕 00 먹고” “진짜 잠도 안 재우고…” 라며 하소연했다.
결국 지난 2월 구씨와 같은 배에 타고 있었던 동료가 배에서 내린 뒤 회사에 이 같은 사실을 알렸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는 건 없었다고 유족은 주장했다.
구씨도 친구에게 “부당한 거 말해봤자, 이미 기관장이나 윗사람들한테 말해봤는데 씨알도 안 먹힌다. 오히려 역정 낸다. 답이 없다. 갈 때까지 버티는 수밖에”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구씨는 “진짜 미쳐야 하나보다. 목매달고 뒤지는 척이라도 하던가, 뛰어 내리던가”라고 호소했다.
그게 구씨의 마지막 항변이었다. 이후 구씨는 친구의 부름에 답할 수 없었다.
지난달 17일 구씨 어머니는 ‘아들이 숨졌다’는 비보를 접했다.
구씨는 전날 새벽 2장의 유서를 남기고 이 배에서 생을 마감했다.
구씨의 죽음이 세상에 알려진 건 그가 죽고 나서 한 달이나 더 지나서였다.
유족은 직장 내 괴롭힘으로 구씨가 숨졌다며 사측에 산업재해 인정을 요구하고 있다.
또 구씨의 죽음을 계기로 사각지대와 다름없는 ‘승선근무예비역’의 실태를 고발하고 제도를 개선해 더는 피해자가 나오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240여 명의 노동전문가‧노무사‧변호사 등으로 구성돼 무료 활동 중인 ‘직장갑질119’는 이와 관련해 24일 보도자료를 내고 이 제도의 허점을 지적했다.
직장갑질119는 “회사가 해고하면 군대를 현역으로 입대해야 하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제기를 할 수 없다”면서 “해사고, 해양대 출신으로 인맥이 좁아 문제제기 시 관련 업계 내에서 ‘블랙리스트’가 나돌아 취업이 힘들어진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민간인 상선에 승선해 세계를 돌아다니는 승선근무예비역은 특히 상사의 갑질과 괴롭힘에 노출되기 쉬운데도 정부의 관리감독이 제대로 미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구씨 누나는 “동생이 가해자로 지목된 선임으로부터 수시로 괴롭힘을 당한다고 주변에 여러 차례 호소했는데 아직 사과 한마디조차 없다”며 “동생의 죽음을 계기로 이런 안타까운 죽음이 더는 없었으면 한다”고 울먹였다.
이와 관련 회사 입장을 듣기 위해 관계자에게 통화와 문자메시지를 남겼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창원=강승우 기자 kkang@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