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졸업 후 중등임용시험을 준비하던 이영선씨(28·가명)는 최근 중소기업에 취업했다. 높은 경쟁률로 시험에 번번이 낙방하자, 더 이상 집에 손을 벌릴 수 없어 내린 결정이었다. 이씨는 “회사일 때문에 공부에 전념할 수 없는 환경”이라면서도 “더 이상 부모에게 폐를 끼칠 수 없어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집안 형편이 넉넉한 친구들은 아낌없는 지원을 받으며 시험 준비를 하다 합격까지 하는 것을 보면 답답할 때가 많다”고 토로했다.
부모에게 손을 벌리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주목해야하는 것은 ‘왜 청년이 부모에게 손을 벌릴 수밖에 없는가’이다.
현재의 청년세대는 학업-취업-결혼에 이르는 과정에서 여러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가장 큰 어려움은 경제적인 독립을 하지 못한 것에서 발생된다. 높은 취업 경쟁률은 청년을 옭죈다. 이씨처럼 자의 반, 타의반 자구책을 마련한 경우는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이다. 독립적 생계를 마련하지 못한 청년들은 어쩔 수 없이 부모에 의존하게 되고, 부모의 자녀부양부담이 증가하면서 부모-자녀세대간 갈등을 겪는 일은 더 이상 새롭지 않다.
이처럼 불황과 실업률 등으로 부모에게 손 내미는 청년들의 비율은 점차 늘고 있지만, 정부는 뾰족한 대안을 내놓고 있지 못하다. 대학등록금부터 취업비용, 취업 시까지의 생활비, 결혼 비용 등은 그동안 오롯이 부모세대를 비롯한 가족의 부담으로 여겨져 정책적 보완책이 미비했던 터.
부모와 가족의 계층, 즉 소유한 부에 따라 자녀세대의 지원 차이가 커지고, 이는 다시 경제적 양극화의 대물림을 초래한다. 이렇듯 청년의 문제는, 부모의 문제로, 이는 다시 가족의 문제로 이어진다. 그리고 종국에는 계층 간 갈등으로 심화된다.
◇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 따르면, 2002~2015년 건강보험 가입자 중 부모의 피부양자로 있는 25~34세 청년 비율은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였다. 25~29세가 2002년 25.3%였던 것이 2015년에는 30.0%로 늘어났고, 마찬가지로 30~34세도 9.0%(2002년)에서 12.8%(2015년)로 증가했다.
또한 30세~34세의 남성과 여성 1403명을 대상으로 한 ‘청년자녀에 대한 부모의 경제적 지원 실태 조사 분석’ 결과에서도 이러한 결과는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자녀의 학업·취업·결혼에 요구되는 비용은 대부분 부모가 해결하는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었지만, 부모의 경제적 지위와 자산 규모에 따라 자녀의 경제적 지원 경향은 상이했다.
일단, 청년자녀의 학업시기를 보자. 부모는 청년자녀에게 대학등록금을 지원하고 있고, 전액은 58.0%, 부분지원 28.7%, 지원 없음은 13.3%로 조사됐다. 어학연수 및 교환학생에 드는 비용 역시 대부분 부모가 지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모의 자산과 경제적 지위가 높을수록 자녀에 대한 지원 비율이 더 높았다.
취업 시기를 보면 교육 수준과는 관계없이 청년 10명 중 7명이 취업 시까지 부모에게 생활비 지원을 받고 있었다. 미취업자 중 생활비를 지원받는 기간은 고졸이하가 평균 87개월, 대학 졸업 이상은 51개월로 나타났다. 이 역시도 아버지의 학력, 부모의 재산, 경제적 지위에 따라 취업과 창업 활동을 지원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결혼시기에 있어 여성 자녀에 대한 부모의 지원 비중은 더 높았다. 여성은 75.5%가, 남성은 68.3%가 부모에게 결혼 자금 지원을 받고 있었다. 결혼비용은 남성의 경우, 부모 자산이 밀접한 영향을 미친데 반해, 여성은 부모님 학력과 경제적 지위와의 밀접한 연관성을 보였다. 특히 신혼집 마련에 있어 여성은 75.7%가 남성은 70.5%가 부모의 도움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아울러 2006년 9차 한국노동패널조사에서 2015년 18차 조사까지의 변화를 보면, 청년자녀와 부모 사이의 돈의 흐름에서도 유의미한 결과가 도출된다. 부모가 청년자녀에게 주는 평균 금액은 360.2만원이었고, 자녀가 부모에게 준 평균 금액은 194.5만원이었다. 부모의 경제적 지원은 20대 초반과 30대 초반에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31세 때 가장 많은 금액의 지원을 받는 것은 결혼 관련 자금 지원으로 보인다.
그러나 자녀가 정규직 임금 노동자일 경우 부모와 자녀 모두 돈을 주고받는 비율이 20.6%로 가장 높았다. 자녀는 물론, 부모도 청년자녀가 정규직 노동자임에도 경제적 지원을 하고 있는 것은 이들의 계급적 위치를 강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 소멸하는 청년들
앞선 통계가 말하는 것은 하나다. 우리나라의 청년 실업 및 고용불안정의 문제는 비단 청년에 국한된 것이 아닌, 부모세대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정부도 여러 대안을 마련하고 있기는 하다. 고용노동부와 교육부는 일명 ‘청년 생활비 지원 제도’를, 국토교통부는 ‘신혼 주거비 지원’을, 여성가족부는 ‘중장년기 부모 교육’ 등을 통해 청년 및 부모세대에 대한 나름의 지원책을 추진 중에 있긴 하지만, 정책과 현실간의 간극을 채우려면 넘어야 할 산은 적지 않다. 시일과 예산 등을 차치하더라도 정책 연속성과 인식 제고는 또 다른 문제다.
복지국가여성연대 신필균 대표는 허핑턴포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오늘날의 청년문제와 청년정책의 부재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청년들은) 오늘의 한국을 헬조선이라 부르고, 금수저·흙수저로 사회적 불평등을 희화화하며, 자신들을 N포세대로 규정한다. 청년층의 이러한 불만과 자포자기의 정서가 만연된 지 꽤 오래되었지만 정부나 기성사회는 이를 심각한 사회문제로 보지 못하고 그저 형식적인 언급이나 대응으로만 일관하고 있다.”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