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감이 들었습니다. 래퍼 산이가 지난 3일 오후 공개한 신곡 ‘웅앵웅’의 가사를 읽으면서 말입니다. 메갈(메갈리아)과 워마드를 나쁜 페미니스트로 구분 지으며 공격한 그의 발언은 배우 유아인의 과거 ‘애호박 게이트’나, 그룹 슈퍼주니어 김희철의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 가사 논란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먼저 산이의 ‘웅앵웅’ 이야기부터 해볼까요. 산이는 이 노래에서 “메갈과 워마드는 정신병”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합니다. 이들에겐 논리가 없으며, “악한 자가 약한 척하며 가짜 만든 정의뿐”이라는 지적도 덧붙였죠. 어떤 이는 산이에게 열광하고 어떤 이는 분노했습니다. 전자는 대부분 남성이고 후자는 여성입니다. ‘페미니스트’를 발표하면서 “혐오가 불씨가 되어 혐오가 조장되는 상황을 혐오한다”고 했던 그가, 아이러니하게도 성별 대립을 조장하는 모양새가 됐습니다.
‘웅앵웅’은 3일 전 열린 브랜뉴뮤직 합동 콘서트에서 벌어진 일을 담고 있습니다. 당시 산이가 관객들에게 “제가 싫어요?”라고 묻자 관객들 대부분이 그렇다고 답했죠. ‘산이야 추하다’는 내용의 플랜카드와 이 문구를 적은 돼지 인형을 무대 위로 던져 올린 관객도 있습니다. 산이는 욕설을 섞어가며 “여러분이 아무리 공격해도 난 하나도 관심 없다. 나는 정상적인 여성을 지지한다”고 응수했습니다. ‘웅앵웅’의 가사 “메갈과 워마드는 정신병”도 이날 산이의 입에서 처음 나왔습니다. 관객들은 항의했고, 이로 인해 공연이 몇 분 간 중단되는 사태도 벌어졌습니다. 브랜뉴뮤직의 대표인 라이머는 후에 “혹시라도 공연 중에 기분이 상하신 분이 계신다면 이 자리를 빌려서 사과드린다”며 고개 숙였습니다.
또한 산이의 ‘정신병’ 발언은 ‘메갈짓’을 ‘폭도’로 규명하던 유아인과 닮았습니다. “여러분을 사랑으로 대하겠다”는 산이의 말은,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가 논란이 되자 김희철이 SNS에 적은 “서로 사랑하며 살아요 우리”라는 메시지를 떠올리게 하죠. 이들이 지적한 대로 혐오 표현은 지양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혐오’의 불씨가 된 불의를, 분노 없이는 변하지 않던 세상을 외면했다는 점에서 설득력을 잃습니다.
심지어 산이는 남성에 대한 여성들의 혐오 표현은 문제 삼으면서, 그 혐오 표현들이 맞서고자 하는 대상, 즉 실재하는 여성 혐오는 논의에서 지워버립니다. “난 절대 여성 혐오 안 해”라면서, 정작 여성 혐오가 여성에 대한 차별과 대상화를 고착화시킨 구조와 관습의 문제라는 점은 깨닫지 못합니다. 그저 자신을 향한 분노를 메갈과 워마드의 비정상적인 반발로 일축할 뿐이죠. “비판은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던 그에게서, 자기반성의 기미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안타깝습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