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의사수를 늘려야 진료현장에서 만연하게 행해지던 ‘3분 진료’를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특히 한국의 의료인력 수가 OECD 평균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나 의과대학 입학 정원을 현재보다 600명 가까이 늘려야 한다는 분석이다.
정현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11일 오전 10시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바람직한 공공보건의료 인력양성 방안 정책토론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정 교수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보건복지인력이 전체 노동 인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8%로, OECD 35개 회원국의 평균인 10.1%에 훨씬 못 미친다. 이는 핀란드나 네덜란드와 같은 스칸디나비아 국가들(15~20%)의 3분의 1 수준이다.
2016년 기준 우리나라의 임상의사수는 인구 1000명당 1.9명으로, OECD 평균 3.4명의 절반을 겨우 넘는다. 국내 의사수는 1990년대 높은 증가율을 보이다가 2002년 의대정원 동결 이후 둔화됐고, 이에 2015년 기준 인구 10만명당 의대 졸업자 수는 한의대를 제외하고 6.0명이다. 이는 OECD 평균 12.1명의 절반 수준이다. 대부분의 OECD 국가들은 고령화 대응 차원에서 2000년대부터 의대 입학 정원을 늘렸고, 이에 인구 10만명당 의대 졸업자 수가 2000년 평균 8.3명에서 2015년 12.1명이 됐다.
반면 연간 의사진찰건수는 한국이 OECD 국가 중 최상위 수준이다. OECD 평균 국민 1인당 연간 의사진찰건수는 6.9회인데, 우리나라는 16회로 가장 많았다. 임상의사 1인당 OECD 평균 진찰건수는 2295건, 한국은 7140건이었다.
이에 정 교수는 ‘의사유인수요 이론’을 의대정원 억제의 논리로 사용하는 의사단체를 지적했다. 의사유인수요 이론은 의사가 환자의 최대의 이익(consumer’s optimal point)을 추구하기 보다는 자신의 경제적인 이익을 위해 환자의 의료서비스 수요에 영향을 주는 것을 말한다. 즉 의사 증가에 따라 ‘의사당 환자수’가 줄어들면 의사는 그들의 ‘목표소득’을 유지하기 위해 가격을 더 올려야 하나, 수가가 통제되는 상황에서는 서비스의 양을 늘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 의사들은 힘들게 열심히 일하지만 환자는 3분진료에 만족하기 힘들다. 그런데 의사협회의 반대를 이유로 오히려 의대 정원 감축 및 동결 정책을 지속해 의료정책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며 “전공의를 채우지 못하는 필수전문 과목이 속출하고 있고, 의료취약지나 지방 오지에는 웬만큼 돈을 지불해서는 의사를 근무하게 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의사 측에서 이 이론을 제기하는 것은 국민과 환자에 대한 협박이 된다”며 “의료정책 담당자들은 의사유인수요 이론이 의사 인력의 양성이 의사 서비스의 정상화를 위한 필요전제임을 인지하고, 의과대학의 인프라에 대한 투자 확대로 교육과 훈련의 여건을 마련하는데 주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2008년부터 의사수 증원 정책을 펼치고 있는 일본의 사례를 들면서 우리나라 의대 입학 정원을 늘려야 한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일본에서는 1980~90년대 의사수 과잉 문제로 의대 입학정원과 신규진입 의사수를 10%씩 삭감했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 일부 지역에서 소아과, 산부인과 등 의사 부족 과목이 발생하자 의대정원을 긴급히 395명 증원했고, 2008년에는 의사수 증원으로 정책을 전환했다. ▲의료의 고도화, 전문화에 따른 1인의사의 담당 영역 축소 ▲여성의사의 증가와 의사 직업 의식의 변화 ▲휴일, 야간 진료를 희망하는 환자 증가 ▲대형병원과 전문의를 희망하는 환자 증가 ▲의사가 기재해야 할 서류나 소송 건의 증가 등의 이유에서다.
그는 “국내 의대 입학정원을 몇 년 내에 현재의 3058명에서 3600명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 이는 최소기준”이라며 “이후의 의대 입학정원은 의사인력의 수급 추이에 대한 객관적이고 전문 적인 연구와 분석을 통해 결정하는 기전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전문 과목별 지역별 수급 불균형 문제는 전체 의사인력의 공급이 원활해지면 상당부분 자동 조정기능에 의해 해결이 될 것이다”라며 “다만, 전문과목간 균형과 지역별 의사 균형 공급을 위한 미시적 정책들은 계속 시도돼야 한다”고 전했다.
유수인 기자 suin92710@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