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정유·화학업계는 지난 3년간 이어진 ‘슈퍼사이클’(장기호황)의 끝자락에 접어들었다. 미국발 보호무역주의 확산과 글로벌 경기침체로 업황은 둔화됐고, 하반기부터는 국제유가가 50달러 선으로 폭락해 수익성 악화 우려가 커졌다. 2018년 정유·화학 업계를 대표하는 키워드를 되짚어보며 2019년 정유·화학 업황을 살펴본다.
◇국제유가에 울고 웃는 정유·화학업계
올해 정유·화학업계는 오르락내리락하는 국제유가에 냉탕과 온탕을 오갔다. 국제유가가 급등한 상반기에는 재고 평가이익 등으로 이득을 봤지만 올 하반기부터 배럴당 50달러까지 급락한 국제유가에 ‘재고평가손실’ 등으로 영업이익이 크게 감소할 전망이다.
국제 유가는 지난 10월까지만 해도 배럴당 100달러까지 상승할 것이란 전망이 유력했다. 이는 당시 미국의 대(對)이란 제재 재개가 주요인이다. 미국이 제재 의사를 밝힌 이후 원유 공급 감소 우려로 국제 유가는 상승세를 보였었다.
그러나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한 원유 공급과잉으로 국제유가는 이달 들어 50달러까지 급락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저유가’를 통해 자국 내 민간소비 촉진과 궁극적으로는 미국 경제 성장률을 끌어올리려 하고 있다.
이처럼 국내 기업은 물론 한국정부가 통제할 여지가 없는 국제유가의 영향으로 올 4분기 SK이노베이션,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GS칼텍스 등 국내 정유 4사는 저조한 영업익을 거둘 것으로 보인다.
이는 앞서 설명한 재고평가손실 탓이다. 정유사들은 원유를 2∼3개월 전에 구입하고 실제 판매는 그 이후 진행한다. 원유를 구입한 시점보다 판매하는 기간에 유가가 떨어진다면 재고평가손실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국제유가가 지난 10월 배럴당 80달러 선에서 이달 들어 30% 가량 하락한 50달러대를 기록한 이상 4분기 정유업계 영업익이 40~50%까지 주저앉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이에 따라 재고평가손실은 1조원대에 달할 것이란 비관적 전망도 줄을 잇고 있다.
LG화학, 롯데케미칼 등 화학업계도 사정이 좋지 않다. 국제유가의 하락은 이들 기업이 판매하는 주요 석유화학 제품 가격의 하락으로 이어진다. 이는 결국 4분기 실적 감소로 이어질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불황에도 멈추지 않는 ‘신증설’
예고된 불황에도 불구하고 정유·화학업계는 신증설 등 신규 투자에 적극 나서고 있다. 꼭 필요한 분야의 적시 투자만이 수익성을 뒷받침해 장기적 수익 모델 확보가 가능하다는 분석에서 나온 행보다.
2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한화토탈, LG화학, 현대케미칼, 에쓰오일, GS칼텍스, 롯데케미칼 등 정유·화학기업들은 최근 2023년까지 화학사업 설비 신증설에 14조원 이상을 투자한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이들 기업의 투자는 중국 등 아시아 시장에서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폴리프로필렌(PP, Polypropylene) 등 고부가 제품용 합성수지에 집중되고 있다. PP 등 합성수지는 전기전자소재, 자동차 내외장재, 필름 및 포장재, 식품 용기 등 생활 속에 다양하게 사용되는 재료다.
우선 한화토탈은 이달 초 5300억원 규모의 신규 투자안을 공개했다. 한화토탈은 2020년까지 충남 대산 공장에 연간 폴리프로필렌(PP) 40만톤, 에틸렌(ethylene), 산화프로필렌(PO) 4만톤 생산 규모의 설비 증설을 시작했다.
특히 이번 투자를 통해 한화토탈은 3800억원 규모의 폴리프로필렌 공장 건설에 착수한다. 증설이 완료되면 한화토탈의 폴리프로필렌 연간 생산능력은 112만톤으로 증가하여 국내에서 선도적 위치에 서게 된다.
화학업계 맏형 LG화학도 최근 투자협약을 통해 내년부터 2021년까지 ▲여수 산업단지의 납사분해시설(NCC) 등 2조6000억원의 설비투자 ▲지역인재 포함 300여명의 고용 창출을 약속했다.
정유업계 2위 GS칼텍스는 여수지역에 2조7000억원 규모 ‘MFC’(혼합분해시설) 설비 투자와 500명 고용 창출, 현대케미칼은 대산지역 2조7000억원 규모 ‘HPC’(중질유+납사분해시설) 설비 투자 및 300명 고용, 정유업계 3위인 에쓰오일은 울산지역 5조원 규모 ‘NCC’(납사분해시설) 설비 투자 400명 고용 계획을 공표했다.
여수, 대산, 울산 등 3대 국내 석유화학 산업단지에 생산거점을 확보한 전통 화학사 롯데케미칼은 올해 말까지 여수 NCC 에틸렌 20만톤, 미국 ECC(에탄분해시설) 100만톤 신증설을 완료할 방침이다. 특히 향후 5년간 화학사업에만 20조원을 쏫아붓는 다는 통 큰 투자 계획도 내놨다.
◇정유·화학업계 사업 다각화 ‘총력’
올해도 정유·화학업계는 신사업을 통한 대대적인 체질 개선을 진행했다. 국제유가 등 대외변수에 취약해 ‘천수답’(天水畓:빗물에만 의지해 경작하는 논)사업으로 불리는 기존 경영에서 탈피해 신사업을 통해 안정적 수익 구조를 다지려는 방안이다.
종합 에너지·화학사로 변신 중인 SK이노베이션, 화학업계 맏형 LG화학, 한화케미칼 등은 전기차 관련 사업부터 태양광 산업까지 다양한 신사업을 통해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고 있다.
이들 기업이 신사업에 적극 뛰어든 이유는 국제유가 변동 등 외부적 요인에 따라 업황이 좌우되는 정유·화학업계의 ‘천수답 고리’를 끊기 위함이다. 실제 지난 3분기 한화케미칼, LG화학, SK이노베이션 등은 유가상승 등 대외요인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50% 이상 영업익이 급감했다.
먼저 SK이노베이션은 전기차 관련 신사업에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 2025년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 점유율 30%를 목표로 글로벌에서 손꼽히는 유망 시장인 중국 배터리 시장을 비롯한 글로벌 시장에 설비를 구축하고 있다.
지난 10월 착공한 중국 장쑤성 창저우의 전기차 배터리 분리막 생산 공장, 올해 착공해 2022년 완공 예정인 유럽 헝가리 공장, 기존의 중국 창저우 배터리 공장을 합치면 SK이노베이션 배터리 사업의 연간 배터리 생산량은 20GWh까지 증가할 예정이다.
또 지난 11월 미국 조지아주 잭슨 카운티 커머스시(Commerce, Jackson County, GA-US)에 연간 생산량 9.8GWh 규모의 전기차 배터리 공장 건설을 위한 1조1396억원 투자를 결의했다. 미국 공장건설 투자 결정으로 SK이노베이션은 미국 내 생산 거점을 확보해 한국, 중국, 유럽, 미국에 이르는 글로벌 4각 생산 체계를 완성했다.
LG화학은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주행거리 500㎞ 이상인 3세대 전기차 배터리 프로젝트 수주에서 1위를 달성하며 전기차배터리 사업을 자사 포트폴리오에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다.
배터리 공장을 대륙별로 마련해 글로벌 시장 수요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한국·중국·유럽·미국에 4개 전기차 배터리 생산 거점을 보유했고, 지난해 기준 18GWh를 기록한 전기차 배터리 생산 능력을 2020년에는 110GWh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난달 23일에는 생산능력 확대를 위해 중국 남경 빈강(濱江) 경제개발구에 전기차 배터리 제2공장 기공식을 개최하고, 공장 건설에도 돌입한 상태다.
한화케미칼은 자회사 한화큐셀을 통해 글로벌 태양광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미국, 일본, 한국 등 주요 태양광 시장에서 시장 점유율 1위를 달성했다.
최근에는 중국과 유럽 등에서 수요가 높아지고 있는 프리미엄 제품 판매를 확대하는 등 글로벌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또 지난 1일 한화케미칼에 한화큐셀코리아와 한화첨단소재를 합병을 통해 경영 효율화를 이뤘다. 향후 글로벌 판매 네트워크와 연구개발 역량을 태양광 사업에 적용해 향후 강력한 시너지 창출이 기대된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임중권 기자 im918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