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는 폭염(暴炎)과 혹한(酷寒) 보다 더 근심스러운 존재가 됐다. 그러나 정부와 관계 기관에서는 아직 효과적인 대응책을 내지 못하고 있다. 불안을 견디다 못한 시민들이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미세먼지로부터의 완전한 도피를 지향하는 시민들. 이른바 '피(避)먼지족'의 등장이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미세먼지 농도부터 체크한다”는 회사원 황모씨(26)는 미세먼지 대처에 누구보다 적극적이다. 미세먼지 농도는 세계보건기준을 적용한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확인한다. 국내 미세먼지 기준이 너무 너그럽다는 이유에서다. 알코올 솜으로 외출 소지품도 꼼꼼히 닦는다. 침실에 미세먼지를 흡수한다는 식물을 들여놓기도 했다.
여섯 살배기 아이가 있는 주부 정모씨(33)는 “미세먼지 유입을 막기 위해서 창문을 여는 대신 공기청청기로 환기한다”고 설명했다. 정씨는 전쟁 시 피난용 물품을 저장해두듯, 미세먼지 차단용 마스크를 서랍에 한가득 구비해뒀다. 부득이한 외출 시 마스크 착용은 기본이고, 미세먼지 차단용 스프레이부터 꼼꼼히 뿌린다. 미세먼지 차단 기능이 있다는 방충망도 최근 설치했다. 또 미세먼지에 좋다고 알려진 음식으로 식단을 구성하거나, 영양제도 챙겨 먹는다.
미세먼지에 민감해진 시민들은 ‘바깥공기와의 단절’을 추구한다. 미세먼지를 피해 집을 나서지 않거나, 외출 시에는 동선을 실내로 한정한다. 미세먼지 농도가 '나쁨' 수준이었던 평일 오후, 서울 중구의 한 복합쇼핑몰을 찾았다. 쇼핑몰은 미세먼지를 피하려는 시민들로 북적였다. 내부 휴식 공간마다 사람들이 가득 차 빈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아이와 함께 쇼핑몰로 나들이를 나온 주부 강모씨(35)는 “최고의 미세먼지 대처법은 집에서 나가지 않는 것”이라며 “이날도 아파트 주차장에서 바로 차를 타고 이동했다. 미세먼지가 심한 날이면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아예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강씨는 부득이한 외출 시 장소는 가급적 집과 가깝거나, 이날처럼 실내 활동이 가능한 곳으로 정한다.
“미세먼지를 피해 최대한 실내 위주로 데이트 코스를 짠다”는 대학생 커플 김재현(25)씨와 이수영(26)씨는 식사와 디저트, 영화 관람 등 이날 데이트 일정도 모두 해당 쇼핑몰 내에서 소화했다. 이들은 한 달 전부터 계획해둔 국내 동반 여행을 얼마 전 취소했다. “국내 어딜 가도 미세먼지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어 차라리 돈을 더 모아 해외를 고려 중”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평소에도 영화관에 갔다가 바로 룸카페로 이동하거나, 공기청정기가 설치된 카페나 음식점 등을 찾는다”며 “미세먼지 때문에 비슷한 일상이 반복되는 중”이라고 불편을 호소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미세먼지 경보가 반복될 때마다 야외 상가나 시장, 노점상 등은 썰렁한 분위기를 면치 못하고 있다. 명동 거리에서 노점을 운영하는 이모씨는 “미세민지가 심한 날은 사람도 별로 없는데, 그나마 있는 손님들도 머뭇거리다 그냥 가버리기 일쑤”라고 울상을 지었다.
시민들의 민감한 반응은 미세먼지로부터의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에서 비롯됐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미세먼지에 대한 시민들의 자력구제 시도에 대해 "안전은 생리적인 욕구와 함께 가장 우선적인 욕구에 속한다"며 "정부나 사회기관이 미세먼지의 악영향으로부터 지켜줄 수 있다는 믿음이 깨진 상태에서 무력감과 불안함이 자구책을 부추기는 것"이라고 봤다.
미세먼지 문제에 개인적인 수준의 대처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경남 서울대병원 환경의학과 교수는 “손을 놓고 있을 수 없는 시민 마음을 이해하지만, 미세먼지 대처 용품 같은 개인 차원의 방안은 과학적으로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것이 대다수”라며 “선진국에서는 구조적인 대응을 더 우선시한다. 관계 기관에서도 시민사회에 개인적인 노력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적인 차원에서 배출량을 줄이는 등의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영의 기자 ysyu1015@kukinews.com